받아들이는 일의 힘겨움

by 대장장이 휴

내가 20대 내내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들고다녔던 책들이 있다. 전공서적들과 교양서적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사서 열심히 밑줄 긋고 필기하며 책장을 넘기던 많은 책들. 나는 작년 겨울 그 책들을 모두 스캔하고 실물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내 밑줄과 필기가 빼곡히 담긴 책들을 한권 한권 스캔하고 버릴 때마다 왠지 모를 시원섭섭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아닌가. 수십권의 책들을 비좁은 자취방에 계속 쟁여두기에는 내게 주어진 물건과 짐들이 너무 많았다. 배낭의 무게가 곧 여행의 무게고, 움켜쥐고 있는 짐들의 무게가 곧 인생의 무게라고 했던가. 그 멋져보이는 말에 힘입어 나는 책들을 모두 스캔으로 파일화한 후에 버렸다.


문제는 내가 그 스캔파일들을 내 메일로 보내놓고는 데스크탑에 저장해야지 해야지 하던 게, 바쁘게 지내다보니 깜빡했다는 사실이다. 두세달 지나서야 문득 내가 책 스캔파일을 집에 있는 컴퓨터에 다운로드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급히 메일함에 들어가봤지만 이미 대용량 첨부파일 다운로드 기간은 지나고 내 파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20대 내내 수십권에 책들에 쟁여놓았던 내 메모와 추억들을 잃었다.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던지. 혹시나 해서 온갖 인터넷 글들을 뒤져가며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대용량 첨부파일은 자동으로 30일이 지나면 서버에서 삭제되기 때문에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화가 났다. 그걸 깜빡한 스스로가 미웠고,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책을 모두 버려버린 내 아둔함이 원망스러웠다. 신경이 곤두서고 순간 막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분노와 좌절감이 뱃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하지만 도리가 있나. 어차피 지나가버린 일인 걸. 파닥거리는 내 심정은 아랑곳않고 그 날도 해는 저물었고 그와 함께 내 화도 차츰 저물어가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20대 중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내가 10대때부터 모아온 사진들과 일기들을 모두 노트북에 담은 채 여행을 떠났다. 백업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설마 노트북을 잃어버리는 '멍청한 일'이 생길까 싶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멍청한 일'을 저질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멍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고 있던 참이었다. 그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유럽여행을 위해 모았던 통장의 모든 돈을 주고 내 노트북을 다시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몇날며칠 밤마다 했다. 그 때는 나의 그 모든 사진과 일기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이번 스캔파일은, 한 2주 걸렸으려나. 이번 사건도 받아들이는 데는 참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스무살 중반의 나에 비하면 받아들이기 위한 고통의 시간이 좀 줄어든 것 같기는 하다.


세계 3대 영적 스승 중 한 명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자신의 저서 'The Power of Now'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부정적인 정서는 저항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저항은 무의식적이다.'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내가 내 소중한 필기와 메모를 잃고서 느꼈던 강렬한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실 저항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미리 이런 사고가 생길 걸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내 소중한 필기와 메모들을 잃어버렸다는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수용할 수 없는 데서 화와 원망, 좌절감 등이 피어난다. 그리고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처럼, 이 저항은 꽤나 무의식적이라서 이렇게 말로 풀지 않고서는 명료하게 자각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내려놓음을 필요로 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내가 무의식 중에라도 기대하고 바라는 상황과 실재하는 현재의 상황이 같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예상하고, 기대한 어떤 상황이 있는데 실제 세상이 그대로 펼쳐지지 않다니! 이 문제는 비단 내가 겪은 '필기와 메모의 상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자신조차 있는 그대로, 생겨먹은대로 수용하기를 힘들어한다. 내가 그리고 기대하는 내 삶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있는데, 지금 현재 나의 실제 모습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언제나 다들 바쁘다. 얼른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멋진 내 모습으로 삶을 바꿔나가야 하니까. 이 혼란스러울 지경의 괴리와 고통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일단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받아들이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라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일은 참 어렵다.


P.S) 그러니, 본인의 '잘 받아들이지 못함'을 그냥 받아들여보자. 더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채근하고 질타하는 대신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열심히 안간힘을 쓸 때보다 그저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쉽게 변화하곤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데, 내가 보기에 자꾸 칭찬해대면 고래는 마음이 점점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칭찬하는만큼 기대받는만큼 자꾸 잘해야 될 거 같아서. 우리 스스로에게는 칭찬 말고, 그냥 받아들여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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