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더러운 사람이 겪는 누군가의 '죽음'에 관하여

임상심리사인 내가 하루에 1번 이상 죽음을 생각하는 걸 권하는 이유

by 대장장이 휴

목격한 죽음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들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지 못했음을 자백한다.

물론 나도 차마 뭐라 말할 수 없이 슬펐다.

나는 사촌, 외사촌 통틀어 맏이였고, 그들은 나를 이뻐하고 좋아해주었으니까.

나 또한 그분들을 좋아했고.


하지만 나는 동네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효놈이었고, 그래서 손주로서보다는 아들로서 그 곳에 존재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하염없이 우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보기 드물게 자기 잇속만 챙기는 데 익숙하던 자신의 형제들이 펑펑 우는 것과 달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화장터에 우두커니 서있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는 내내 늘 아빠만 찾곤 하던 할머니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살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의 죽음을 보게 될 일이 점점 많이 생겼다. 내 주위의 누군가는 부모를 먼저 떠나보내기도, 어떨 때는 자신의 형제나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기도 했다. 나는 상담심리대학원을 다니면서 애도상담에 대해 세미나도 가고 수업도 들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말한다. 평균적인 애도기간이 얼마이며, 그 표준적인(?!) 기간에서 너무 많이 동떨어진 기간 동안 계속 일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 문제가 된다고. 거기에 각 정도와 수준에 따라 명칭도 붙여뒀고, 나는 학생이니까 그걸 필기하고 정리하고 외우기도 했다.


물론 수업을 듣는 그 당시에도 궁금하긴 했다. 과연 이게 어떻게 나온 통계이고 수치인가. 각 개인은 각각 하나의 우주와도 같다는 한 시인의 구절이 늘 내 마음속에 머무는 내 입장에선, 궁금했다. 의아하기도 하고.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나같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잠시 궁금해할뿐이다. 그러고 넘어간다. 내 삶에 당장 중요하지도 않고, 뭐 어련히 알아서 잘들 해놨겠지 하고 넘기는 게 다반사니까.


내가 직접 경험한 죽음


나도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죽음을 경험하기 전의 나를 잠시 설명해보자면.

나는 심약했고, 그래서 아빠가 처음 쓰러졌던 날을 기점으로 반년을 버티지 못하고 실려갔고, 처음 공황증세가 있는 것 같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약도 받아봤고, 그 약을 집어던지고 길길이 날뛰던 나는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라는 걸 받아봤고, 그렇게 나는 전혀 믿지 않았지만 관심이 가던 그 '심리상담'이라는 영역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뭐, 원래도 애늙었던 내 입장에선 크게 어려울 건 없었지만 어렵고 쉽고를 논하기 전에 좋았다.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걸 배우고 고민해보고 그렇게 훈련한 것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재밌어하며 노니는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내가 점점 아빠의 투병에 알게모르게 익숙해져가던 그 때 아빠는 그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났다. 심약한 큰 아들이 너무 놀라지 않게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아빠가 쓰러진 후 덩달아 쓰러지고 심리상담을 받게 된 당시, 나를 처음 상담했던 상담사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길 해주었는데, 요지는 그랬다.


'나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일도 분명 생길텐데 어쩌려고 이러세요. 걱정됨 ㅇㅇ'


물론 저것보다 훨씬 따스한 말투로 말했다. 요지는 명확히 저거였고.


처음엔 뭐 그런 생각도 못했다. 사실 아빠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고, 결국 다시 심장수술을 받고 그 후 의식이 없는 시기를 상당기간 보내기도 하면서. 나는 애초에 세상이 너무 낯설었다. 마치 내 팔을 만졌는데 내 살갗이 아닌 느낌처럼.


모두가 각자 자신의 걱정거리와 일상을 서로 이야기나누고 식후혈당을 높이지 않기 위해 점심식사 후 거리를 산책하는 모든 풍경들이 너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외계인이 된 것처럼. (뭐, 심리상담사의 걱정이 얼쭈 맞았던 셈이다 어느 정도는.)


그랬으니, 내가 아빠를 떠나보내고 얼마나 상태가 위태로웠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빤하지.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이라서, 그냥 출근해서 앉아서 내 자리에 할당되는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이 생계활동을 반복하면서 차라리 고통을 잊게 되는 그런 메커니즘이 일반인들에겐 주어지는 것인데.


내게도 그게 약효가 있나싶었다. 그냥 앉아서 차라리 해야할 일을 처리하고 보고서를 쓰고 하는 게 잠시나마 슬픔의 늪에서 고개를 빼꼼 들어서 숨을 쉬는 도피처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결국 애도상담에서 가르쳐준 애도기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와 함께, 한가지 생각지 않았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결론이란, '성격이 더러운 인간일수록,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잘 들어맞는 게 있구나!'


라는거다.



성격이 더러운 인간


나는 그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을 어릴 때부터 싫어했다. 그런 친구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던건데. 쓸데없는 허례허식과 남들에게 체면을 차려야 하는 온갖 것들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옭아매는 쥐덫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으로 조선시대였으면, 하는 황당한 생각을 했다.

3년상이 너무 너무 치르고 싶었던 것이다.

어릴 때는 교과서에서 보고 친구들과 '아니 3년을 가만히 머리도 안 깎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으면 못참고 답답해서 어떻게 버팀? ㅇㅇ' 이랬는데.


실제 겪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내 슬픔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먹는 밥과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 것, 담소를 나누고 웃기도 하고 그러는 모든 것들이 자기혐오, 환멸감, 죄책감 같은 것들로 다가왔다. 그럴 필요가 있지 않으나, 인간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해서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나.


희안한 게 꿈도 한 번을 안 꿨다 제대로. 임종도 못 지키고, 그렇게 사무치게 틈만 나면 괴롭고 고통스러운데도 그 긴 밤을 누워 자는데 제대로 꿈에서 만나보질 못했다.


그것도 극초반엔 몇 번 아빠가 나타날만한 상황이었지만, 먼발치서 아빠를 보자마자 내가 울부짖는 바람에 되려 잠에서 늘 아빠를 못 만나고 깨버리곤 했다.



내가 아빠에 대한 애도를 하고 있었을까? 아닌 거 같다. 애도는 지연된다. 애도기간이 길어지면 뭐 지연된 애도다 어떻다 하고 마는데 애도 상담이론을 보면.


결국 상담심리나 이런 류의 학문들이 질적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이런 데서 나온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겪는 모든 사별은 각기 다르다. 내 경우를 보면, 애도할 시간적, 환경적 여유가 있지 않으면 정신분석에서 어떤 욕구가 지연되듯이 지연이 되는 거 같다.


나는 아빠꿈을 꾸는 대신 급격히 흰머리가 늘어났다. 사실 아빠의 건강이 극히 안 좋아진 마지막 1년간도 주위에서 유독 '왜이리 흰머리가 많이 늘었냐'고 한번씩 말하곤 했다. 나는 그냥 '나 중딩 때부터 흰머리 1등이었음 ㅇㅇ' 이러고 말았는데.


아빠 돌아가시고 난 후 보는 사람들이 점점 내게 '아니, 흰머리가 왜 이리 갑자기 많이 늘었냐'고 말하는 걸 보고 조금씩 응?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 흰머리가 원래도 많았지만 몰라보게 많아졌다는 걸 부인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신 후 1년 정도 지나서 나는 휴직을 하게 되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내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늘 힘겨워하고 한번씩 허덕이는 걸 보면서 잠시 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준 덕분인데.


그 1년간의 휴직이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애도를 시작했다고 나는 믿는다.


처음엔 마냥 좋았다. 마음껏 아빠를 떠올리고 생각하고 울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두달이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빠가 꿈에 나오기 시작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정말 하루 걸러 하루 아빠 꿈을 꿨다.


나는 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했다. 아빠의 지키지 못했던 임종을 지키고, 다시 아팠던 시절의 아빠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듣고. 내가 못했던 말을 해드리고.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위로를 건네고. (정신분석에서 꿈은 해소하지 못한 욕망을 채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것이 궁금하면 댓글로 물어봐도 좋고, 구글링해도 좋다.)


그런 밤들을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보낸건지 잘 계산이 안 된다. 다만 그런 시간들이 정말 길게도 이어졌고, 나는 점점 내가 정신적으로 추스려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 힘들다고 휴직을 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세상에서, 아내가 사려깊다는 배부른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처럼 성격이 좀 더러운 사람일수록, 애도가 지연될 수도 있고 어떤 우여곡절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조금 그 죽음에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 성격 더러운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사실 나는 신체적인 컨디션도 상당히 심각하게 계속 안좋아진다는 걸 느꼈는데, 그 또한 꽤 많이 회복되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뭐가 엄청 망가진 건 아니었지만,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 여러 가지 컨디션과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반대로 말하면, 정말 상태가 영 그랬다는거다.



죽음을 늘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


삶의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자신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늘 잊고 산다. 그걸 늘 염두에 두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해야 할 일은 정반대다. 내가 책 '자발적 진화'에서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이상적인 심리적 상태에 관해 적어놓은 챕터가 있다.(아마.. Lv17인가? 그런 거 같다.) 책에서는 물론 가장 '나다운 나'를 발견하기 위해 먼저 터득해야 하는 단계로 적어두긴 했지만, 결국 삶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니 모두에게 통용되는 말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반드시 '죽음'을 곁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죽음'은 곧 모든 것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순 없다는 자각이고 깨달음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사함'을 자아낸다. 나처럼 도덕시간만 되면 엎드려 자던 놈도 진심으로 '감사함'을 삶의 매순간 절절하게 느끼게 하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죽음', 즉 유한함이다. 이걸 늘 곁에 품고 살아야만 우리는 우리가 잊고 사는, 당연하게 여기며 고마운 줄 모르는 많은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의미있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늘 죽음과, 사별과, 애도를 남의 것으로 치워두지 말고 늘 마음 한 켠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늘 고맙고 감사한 일에 제때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후회가 없을수야 있겠냐만은, 우리가 할 일은 언제나. '죽음'(그게 나의 것이든, 내가 사랑하는 이의 것이든)까지 다다르는 그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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