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창 열풍이 바람직하기도 한 이유
몸은 하나의 큰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가진 복합이고 전쟁이며. 평화이고 양떼이며 목자인 것이다. ... 네가 정신이라 부르는 너의 작은 이성 역시, 나의 형제여, 네 몸의 도구이다. 네가 정신이라 부르는 것은 너의 몸인 큰 이성의 작은 도구이며 노리개인 것이다. ... 너는 '자아'라고 말을 하며 그 말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한결 위대한 것은 ㅡ 너는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ㅡ 네 자신의 몸이며, 네 몸의 큰 이성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현대 철학의 거장 중 한 명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몸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작은 이성'이라고 말하고, 몸을 '큰 이성'이라고 말했다. 정신은 몸의 도구일뿐이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 사유와 관념을 다루는 철학자가 말하기에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주장했다. 정신보다 위대한 것은 몸이라고. 당신에게는 어떠한지 물어보고 싶다. 당신 생각에는, 몸이 더 위대한가, 정신이 더 위대한가.
영혼을 강인하게 단련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내 입장에서 보자면, 몸은 분명 탁월한 측면이 있다. 내가 쭉 적어오는 자기상담의 핵심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자각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이든, 인간중심상담이든, 인지행동치료이든 결국 상담의 핵심은 그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것. 그게 첫걸음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이게 힘들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해보면, 여기서 비로소 몸의 탁월성이 드러난다. 몸은, 그냥 노력하지 않아도 직면이 된다! 내 두둑한 뱃살은 거울에 고스란히 비쳐서 내게 돌아온다. 5키로 아령을 들지 못하는 나의 이두박근은 적나라하게 내 몸의 상태를 보여준다. 직면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계'를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이기 싫은 건 강점이라기보다 한계일테니까. 그런 면에서 몸은 상담을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핵심요소를 언제나 거의 즉각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해준다. 즉, 있는 그대로를 직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 몸은 그 점에서는 확실히 정신에 비해 황당하리만큼 탁월하다.
또다른 몸의 탁월성은 우리가 몸을 단련하는 일이 금방 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강력한 힘에 있다. 우리는 안다. 다이어트도 금방 되지 않고, 질병의 치료도 금방 되지 않고, 상처의 회복도, 복근이 나오는 일도 금방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몸은 놀랍도록 탁월하게 우리가 그 사실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 마음이나 정신은 한 순간 결심만 딱 하면 오랜 노력과 단련없이 그냥 환골탈태하리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다분히 설득력의 차이다. 몸과 정신의 설득력의 차이. 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의 한계가 우리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모호성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헬스장으로 가서 바벨봉에 플레이트를 좌우 50키로씩만 꽂아두고 120키로 중량의 스쿼트를 해보면 안다. 금방 안 되겠구나. 허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위기감과 공포, 그리고 온 몸이 쑤시는 통증. 몸의 설득력은 가히 강력하다. '금방 안 돼 그거 ㅋㅋ 알잖아.'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내일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야겠다는 강한 결심이 내 정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버린 것이지!! 그런데 일주일 뒤부터 슬슬 기상시간이 늦어진다. 우리는 그러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뭐지? 왜 또 늘어지지? 그냥 일어나면 되는데..!' 괜히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을까. 마음을 단련해서 강인하게 만드는 데도 분명히 그에 합당한 시간과 노력과 실패가 필요하다. 근데 우리는 그걸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갑자기 우리가 300키로 데드리프트를 할 순 없어도, 사는 내내 근면하고 날카롭게 갈고닦아온 정신은 금방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근데, 그거 쉬운 거 아니다. 절대.
몸이 우리 정신보다 더 위대한 부분이 또 있다. 그건 바로,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하는 '현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우리 몸은, 우리를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저곳도 아니고 그곳도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게 한다. 우리 인생이 죽을 때까지 '지금 여기'로서만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몸은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인생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정신은 다르다. 여러분이 오늘 일어나서 여러분의 삶을 '지금 이순간'에 충실하게 누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눈을 뜨자마자 지각할까봐 불안과 조급함에 휩싸여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샤워하면서 오늘 오전에 끝내야 할 일을 생각하며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퇴근하고서는 오후에 임원 보고에서 박살났던 그 순간을 곱씹으며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 예전 과거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온갖 상상들을 펼치며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정신은, 우리를 지금 여기에 존재하도록 잡아두지 못하고, 이는 곧 우리가 우리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몸은, 우리를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 걱정이나 미래 걱정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온전히 만끽하고 누릴 수 있게 해준다. 가령 달리기를 하면, 잡생각이 점점 머리에서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 내 감각만이 내 삶에 남는다. 내 심박과 땀과 온몸을 휘감는 내 온기와 발바닥과 땅이 닿을 때의 촉감을 매 순간순간 느낀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대학을 합격하기도 전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꽤 경력이 긴 셈이다. 내가 과외를 하러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아이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학습상태인지를 가급적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이 친구가 약한 부분과 강한 부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과외를 진행할 때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게 공부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 거 같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근력과 지구력과 영양섭취, 휴식시간, 생활패턴 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동플랜을 짜야 가장 효과적으로 다이어트든 근력 향상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상담 ㅡ 타인을 상담하는 '상담'도 물론 동일하다. ㅡ 도 마찬가지다. 우선 내담자의 생각과 감정, 반응양상, 대상관계 등 많은 것들의 현재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내 마음을 조금씩 단련해나갈 수 있다. 근데 몸은 사실 어느 정도 그게 눈에 바로 보인다. 헬스장 가면 바로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폐활량이 부족한지는, 런닝머신 30분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마음을 단련하는 일인 자기상담은 몸을 단련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내 취약한 부분과 단련되지 않는 유약한 부분을 어떻게든 왜곡하고 숨겨서 우리가 직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우리 마음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서 차분히 알아가야 한다. 이게 다, 몸만큼 정신이 탁월하지 못해서다. 헬스장 가서 무게별로 덤벨 들어보면 답 나오듯이, 우리 마음도 그렇게 쉽게 현재 상태가 직면되는 것이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