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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경우

굳이 꼭 써야 하는 걸까.

< 이미지는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달리3)에서 생성한 결과물입니다 >

저는 번역투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원래 언어라는 것이 가까운 지역을 넘나 들면서 더 정교해지고 다채로워집니다. 애초에 교류가 없는 언어가 존재하기는 할까요?

번역투를 무조건 눈엣가시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알고 써야 합니다.

어떤 것들이 번역투인가 궁금하시면 인터넷에 검색만 하셔도 많이 나옵니다.

이런 입장인 저조차 이 표현만큼은 좀 안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경우'입니다.

 

그래서 쓰지 말라고?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입니다. 다만 오남용에 주의하자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또한 이런 경향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주시면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본래는 경우가 있다/없다는 표현을 제외하면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흔한 사례 3가지만 보여드리겠습니다.

1) 비가 올 경우 ->비가 오면 or 비가 올 때는

2) 제 경우에는 -> 제 경험으로는 or 제 생각으로는 or 제가 생각하기에는

3) 그럴 경우는 ->그럴 때는 or 그런 상황에서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1)은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2)과 3)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경우로 통일한 결과, 읽는 사람이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죠.


혹시 누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비가 올 경우에 집에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 저는 비가 오면 보통 집에 있습니다.


조연 배우의 경우 작품에 겹치기로 출연하는 경우가 잦다.

→ 조연 배우는 작품에 겹치기로 출연하는 일이 잦다.


예전에 스포츠 선수들 인터뷰 영상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거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여유를 가지려고 중간중간 ~~ 경우하고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나가고는 했었죠.

일본 드라마나 영화, 유학 경험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인 특유의 화법을 떠오르지 않습니까?

~~~~場合 하고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장면들 말입니다. 아니면 말을 꺼내면서 아노, 소노 이런 식으로 잠시 끊어가고는 하잖아요.


길 가는데 누가 갑자기 마이크를 내밀고, 어디 어디 뉴스입니다. 혹시 비가 많이 오는 날을 무엇을 하고 보내시나요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어버버버 말을 쏟아냅니다.


"어...... 저 같은 경우...... 비, 비가 오면, 올 경우에...... 집에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엉성한 답변을 하는 내 친구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다면,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겠죠.


비슷하게 '그 사람 같은 경우는 말이죠' 같은 식의 말도 합니다.

그냥 '그 사람은'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이것도 가령 전화통화를 하면서 누가 그 사람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당장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경우는 말이죠라고 하면서 잠시 여유를 가지려는 것이겠죠. 

대화에서는 허용이 가능해도 문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특히 실용서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표현이 됩니다.


만약 생생한 경험을 전달하고 싶고 내가 말하는 스타일이 저렇다면 오히려 써야 할 테고,  간결하게 꼭 필요한 내용만 쓰고 싶다면 빼는 것이 맞겠죠.

소설을 쓴다면 대사에 경우가 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많이 쓰는 사람과 간혹 쓰는 사람의 차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미 들어와서 익숙하게 쓰는 표현을 쓰라, 마라 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특정 표현을 습관처럼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에 '-(으)로부터'가 있는데,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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