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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Nov 06. 2024

집 나갈 핑계가 필요했다!

육아 중이지만 건축사는 도전하고 싶어

"If opportunity doesn't knock, build a door."
-Milton Berle-


내 몸은 천근만근, 그저 축 늘어져 있었다.

몽롱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하루하루가 어찌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4살, 5살 아이들 먹이고 재우고 씻기를 반복하는 일상, 여느 엄마가 다 하는 이 육아가 세상 제일 힘든 일일 줄이야! 집, 놀이터, 소아과 병원을 오가는 반복된 발걸음에 문득, 나의 세상이 이렇게 좁았나 싶었다.


머릿속엔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한참 바삐 차곡차곡 경력을 쌓고 있는 그들에게 육아 이야기를 하겠다고 연락을 건네기가 머뭇거려진다.

나만 혼자 그리워하며, 그때 그 시절 인연으로 남겨 두는 게 맞겠지.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나의 세상은 작고 작은 놀이터처럼 네모지고, 좁아지고 있었다.


5월 어느 날,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하늘에서 나를 구해줄 줄 동아줄이 내려왔다!

아이들을 겨우 어린이집 보내고, 개운치 않은 몸을 깨우려고 집 앞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던,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로운 시간. 바로 그때,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나를 깨웠다.

시험 규정이 바뀌어 1년에 두 번 시험이 생겼고, 6월 건축사 시작반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한때 힘든 건축 일을 뒤로하고 떠났는데…

나를 다시 일으켜 줄 합당한 동아줄이 건축이라니, 아이러니했다.


그 짧은 순간, 물음표와 느낌표가 가득 찼다.

“어? 할까? 하자~ 나 하루 쉬고 싶어!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나는 외쳤고,

“어우 야~ 나 이제 복직해서 힘들어! 애들은 어쩌고.. 아침 9시부터 6시까지야!”

현실을 빠르게 판단하는 혜윤이는 이미 걱정이 한가득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어~ 지금이 가장 좋을 때야!”


 드디어 집 나갈 핑계가 생겼다! 




이 얼마나 근사한 핑계인가! 설렘이 가득 차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들썩인다.

하지만 설렘만큼 고민도 밀려온다.

남편은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육아도 힘들다고 툴툴대는 내가 이렇게 갑자기 공부한다고 하면?

주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시간을 온전히 비워야 하는데, 아이들을 맡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신혼 때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손이 느리다고 만류했던 기억이 있어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꼭 도전해보고 싶다. 나의 삶에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이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아, 그동안 수많은 육아책에서 봤지.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고. 그렇다면, 엄마인 나에게는 이보다 더 훌륭한 핑계가 또 있을까?

맞다, 맞다! 어렸을 땐 집이 조금 어수선해도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육아와 공부를 병행해도 되는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준비한 이유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남편은 쉬운 공부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게다가 본인이 건축사 자격이 있으니, 나에게 굳이 지금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고.

어쩌면 나의 딴마음을 이미 눈치챈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 보자. 사실 아이들은 커가는데, 아직도 매번 요리할 때마다 검색을 해봐야 할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집안은 이제 아이들 물건으로 가득 차서 발길에 차인다. 잘해야 재미가 붙는데, 살림과 육아는 내 체질이 아닌 듯하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도 하루쯤은 집 밖으로 나가고 싶고, 이 시험을 통해 자존감도 회복하고 싶다고.

오빠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이렇게 말하니 남편은 나를 측은하게 여긴 듯,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말했다.

아이 둘을 두고 남편에게 인사한다. “공부하고 올게!”


아이들이 달려와 중문 유리창에 매달린다!

오구~ 오구… 이쁜 것들! 하지만, “안녕!” 하고 외친다.

‘친구들이랑 점심은 뭘 먹을까? 커피도 사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쳐 간다.



나! 드디어 집 나간다!!



@Pixabay.com


-그때는 몰랐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걸. 

나의 일탈은 거무튀튀한 다크서클이 장착될 예정이었다.-





현실 엄마의 별거 아닌 팁_ 1. 공부시간 끌어모으기


연년생 아이들이지만 서로 다른 성향과 발달을 고려해 어린이집, 유치원 등 같은 기관에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시간이 빠듯하고 내 두 발은 바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기관에 머무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고, 나에게는 오전 9:30- 오후 2:30분까지, 총 5시간이었다.


절대! 아이들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

집이 어질러 있으니 치우고 하겠다는 생각은 금물!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커피 마시고, 필요한 쇼핑을 하면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흘러가기 쉬운 시간을 모아 꾸준히 투자하기

무조건 아이들 등원시킬 때 무조건 미니 제도판을 챙겨 나와 바로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

건축사 시험은 3시간씩 총 9시간으로 진행되는데, 이 중 한 과목 시험 시간에 맞춰 매일 3시간 동안 집중해서 자리에 앉는다. 가능한 한 문제 풀고 바로 답을 체크하면서 효율을 높인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안일은 빠르게 정리하며 남은 자투리 시간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오후의 미션은 온전히 육아에 집중하기

아이들이 어릴 때는 미디어 시청을 최소화했었기 때문에, DVD로 영상을 보여 줄 수 있는 40분 동안 후다닥 저녁을 준비한다. 그뿐 아니라. 취침 시간은 9시로 고정하고 어떻게든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 내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최소 30분-1시간 더 끌어모아본다. 

오전에 풀었던 과제의 답안과 내 답안을 비교해 보고,

과년도 문제와 풀이가 담긴 프린트물을 확인한 후에야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매일 4시간, 길게는 5시간까지 꾸준히 공부 시간을 확보해 나갔던 나날들이었다.

                       

스터디 카페에서 @검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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