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ed scarf & movie star
네 명의 팀원들과 마주 앉았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고 그들에게 다들 인터넷 서치를 해보았느냐 물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을 10여 년 하면서 늘 곡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같았다. 대개 내가 영감을 어디선가 얻고 그에 대한 디자인을 제시하면 그에 보충되는 음악적 요소들을 팀원들이 메꾸곤 했다. 나는 때문에 늘 새로운 예술적 자극을 찾아다녀야만 했고, 가끔은 그 피로감에 짓눌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작업하면 곡들의 방향과 테마가 일관된다는 점은 좋을 수 있었다. 솔직히 모두들 그렇게 곡을 만들어내는 줄 알았고, 방향도 일관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다. 꽤 괜찮은 대학교를 다녀본 덕분에 체험할 수 있었던 토론문화를 접목하고 싶었고, 이로 인해 일어날 음악적 시너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일련의 이미지들을 음표와 박자가 아닌, 더 깊은 미적 교감으로 빚어내보고 싶었다. 그 첫 시도가 바로 그날이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정규앨범(통상 7개 이상의 트랙이 포함되어 있는 앨범)을 작업하기로 했고, 첫 곡으로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미제사건 [블랙 달리아]였다.
이 사건은 배우 지망생이었던 엘리자베스 쇼트가 의문의 죽음을 겪은 사건으로, 잔혹한 살해현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반신과 상반신이 분리된 채로 대로변 풀숲에서 발견된 그녀는 잔혹하게 훼손된 시체로 인해 처음에는 다들 몰라볼 정도였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이 사건으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은 이가 없다고 하며, 어쩌면 이제는 모든 물증을 갖춘다고 한들 처벌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토론을 해보고자 했던 메인 주제는 바로 [죽은 후에야 유명해지는 예술은 의미가 있는가]였다.
살아생전 누리지 못 한 명예와 영광이 죽어서 후대에 길게 남는다면, 그리고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녀는 과연 지금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모습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나는 곡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단순 토론주제뿐 아니라 어떤 성향의 음악이었는지까지도 의견이 오가면서 우린 그 자리에서 악기 하나 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누아르'의 분위기를 담은 메탈을 만들게 되었다. 그 사건이 벌어졌었던 1947년도의 분위기와 그녀가 겪었을 감정들을 담아내기에 제격이었다. 보통의 메탈과 같이 빠른 템포에 시끄러운 느낌이 아닌, 어떤 무희가 슬픈 발레를 추는 모습을 자아내고 싶었는데, 그에 걸맞은 악기로 나는 솔로 바이올린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트랙 [Red Scarf]를 만들기 시작했다. 슬픈 멜로디의 바이올린 뒤에 Pizzcato로 이어지는 첼로와 비올라의 소리는 그녀를 살해하는 현장에서 흘렀을 공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 후 이어지는 불규칙한 피아노연주. 나는 이 부분을 일부러 한 손으로 연주했는데, 이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겪었을 그녀의 감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아노의 멜로디는 좀 전에 흐른 바이올린과는 조금 다른 멜로디를 걷는다.
그와 함께 깔리는 비트로 마지막엔 협주가 이어지는데, 다시 한번 반복되는 멜로디에 이번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며 같은 멜로디를 걷게 되는데, 이는 감지 못한 두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줌아웃 되는 이미지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현장을 떠나는 범인. 그녀의 목에 둘러져있던 붉은 스카프가 저 멀리 바람을 타고 도망간다.
그리고 시작되는 타이틀 곡 [Movie Star].
타고난 재능의 보컬을 둔 덕에,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이 전달될 수 있었다. 그녀는 때로는 범인의 심정으로, 때로는 엘리자베스의 심정으로 노랫말을 써 내려갔고, 나는 다중적으로 표현된 가사가 참 마음에 들었다.
They don't know what you've been through.
but now people loves you in the pity showcase.
그들은 네가 무얼 겪었는지 몰라.
하지만 이젠 모두가 처량한 쇼케이스에 담긴 널 사랑하네.
는 시니컬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다. 작사에는 방향만 상의할 뿐 표현 하나하나 얘기를 나누지 않는 편인데 확실히 내가 함께하고 있는 보컬의 표현방식은 대단한 부분이 있다.
이번 앨범은 이후 나올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로, 미리 선공개차원으로 발매하고자 했다. 앞서 서술했듯이, 기존의 나는 앨범 전체의 콘셉트이나 곡들의 통일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눈치 봐왔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말, 우리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무언지 거름망 없이 쏟아내보려 한다. 실제로 이 후로 진행할 또 다음 앨범은 웨스턴 카우보이 분위기가 어떠냐는 농을 주고받을 정도다.
현재 이 앨범은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 벅스, 지니 등)에서는 들을 수 없다. 이런 유통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때문에 아래 사이트에서 우리의 음악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기존 메탈이라는 틀에 박히지 않은 음악이 궁금하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거라 자부한다.
https://vampirehotel.bandcamp.com/album/movie-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