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 비평 -감독: 피터 위어
영화 개봉 이후 피터 위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트루먼 쇼>가 미디어에 대한 비판으로 보아도 좋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고, 1997년 교통사고로 죽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따라다니던 파파라치를 비난하며 미디어를 통한 대중들의 관음증을 비판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 가던 20세기 말, 피터 위어 감독은 영화<트루먼 쇼>를 통해 인간의 관음증적 욕구와 이를 이용하여 돈을 벌기 위해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상품화하는 대중 매체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1998년도에 개봉된 영화 <트루먼 쇼>는 2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면 볼수록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이다. 그리고 고전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시대가 변할 때마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정보사회’로 접어들어 현대 미디어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겪은만큼 2020년대의 <트루먼 쇼>는 1998년도와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트루먼 쇼>는 트루먼이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24시간 생중계하는 리얼리티 TV프로그램에 대한 영화이다. <트루먼 쇼>의 전반부에서는 크리스토프와 연출진들에 의해 트루먼이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트루먼은 어릴 적 모험가를 꿈꾸었다. 수업 시간 선생님에게 마젤란같은 모험가가 되고 싶다고 발표하고, 해수욕장의 돌무더기 경계를 넘어가려다 아버지에게 붙잡히기도 하고 아버지를 졸라 돛단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을 ‘씨헤이븐’에 잡아두려고 그의 모험가적 성향을 누르기 위한 일종의 세뇌작업을 한다. 선생님은 세계지도를 보이며 더 이상 탐험할 곳이 남아 있지 않다고 교육하고, 외딴 길에 무서운 개가 길을 지나려는 트루먼에게 짖으며 공격하려 들게 하고, 기꺼이 바다를 모험하던 트루먼 부자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 아버지를 잃게 만들어 트루먼에게 헤어나 올 수 없는 트라우마를 새기기까지 한다. 가족과 친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도 크리스토프에 의한 연출이다. 이처럼 인간은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생각한다.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하면 생각, 행동, 취향까지도 조작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유도된 행동과 선택을 자신이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선택한다고 착각한다. 이 점이 미디어를 통한 가스라이팅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트루먼 쇼>가 개봉한 지 24년이 지났다. 과거에는 몇몇 거대 방송국과 신문사에 미디어의 권력이 집중되었다. ‘정보사회’라 불리는 현재는 기술과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점차 미디어 영향력의 탈중앙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SNS와 유튜브에 소비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개인 컨텐츠를 생산하는 ‘인플루언서’에게로 영향력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달리 본질은 ‘메타(페이스북)’와 ‘구글’같은 빅테크 기업에게 미디어 권력이 옮겨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트루먼이 무엇을 보고 듣게 될지 크리스토프의 연출이 결정했듯이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뉴스피드에 어떤 컨텐츠를 보여줄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컨텐츠가 자주 노출되고 이용자들은 이러한 컨텐츠를 소비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확증편향에 의해 생각이나 이념이 점차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세계적으로 정치·이념 양극화 현상이 날로 증가하고 서로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이념 갈등이 잦아지는 추세도 현대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현대 미디어의 약영향에 대해 페이스북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였던 ‘프랜시스 하우건’은 "분노와 증오는 페이스북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상습범들은 알고리즘을 갖고 노는 법과 페이스북을 최적화하는 법을 알고 있다"라며 영국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진실을 깨닫고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나서기 전까지 트루먼은 거짓된 세상에 속았다. 전세계 시청자들이 자신을 지켜보았고 제작자는 트루먼이 보고 듣는 모든 정보와 사건을 조작하여 그의 행동과 생각을 실시간으로 컨트롤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가 트루먼이 되었다. 인터넷 이용자의 모든 행위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데이터화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위력은 데이터의 양과 비례하는 만큼 많은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과 입지는 ‘디지털 빅브라더’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디지털 빅브라더는 트루먼이 되어버린 이용자들의 모든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용자들이 소비하는 컨텐츠를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다. 현재 디지털 빅브라더는 자신들의 권력을 광고 수익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에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의 권력이 정치적으로 악이용된다면 그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막대할 것이다. 전체주의적 목적으로 현대 미디어가 이용되어 대중을 세뇌한다면 가장 무서운 점은 전체주의 세력의 선전과 세뇌가 ‘자유의지’로 포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여 소비한 컨텐츠를 통해 점진적으로 세뇌되기 때문에 전체주의의 윤리적 문제의 하나인 자유에 대한 비판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다. 영화 속 트루먼은 거짓된 세상을 나와 진실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트루먼인 전체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진실을 깨닫는다면 <멋진 신세계>의 등장인물 ‘야만인 존’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을까.
<트루먼 쇼>는 미디어를 통한 가스라이팅의 위력과 영향력이 커진 현대 미디어의 위험 요소까지 고민해보게 한다. 모든 사람이 트루먼일 수도 있는 세상에서 트루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트루먼 쇼>의 마지막 부분 크리스토프와 트루먼의 대화에서 트루먼은 크리스토프에게 “Who am I?”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대사는 시청자에게 ‘자신이 정말로 원하여 선택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아마 이 메시지를 전하려고 모두의 기억에 수많은 명장면을 각인 시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피터 위어 감독이 1998년도 영화 <트루먼 쇼>로 대중들에게 돌아온 이유일 것이다. 미디어와 광고에 의해 조작된 취향과 이상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되돌아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개인이 늘어나는 사회일수록 현대 미디어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