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말은 줄이고 마음속으로 가정의 安慰만을 빌어라.
요즘 흔히들 쉽게 말하는 라때시절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참으로 말도 안 되게 엄한 가정교육 아니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지금 표현이라서 이처럼 예쁘게 포장해서 단어를 선택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 일방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그것도 즉흥적으로 혼나면서 쩔쩔맸거나 회초리로 얻어맞는 것이 훈육이고 가정교육의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여기저기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해서도 안 되는 엄격한 상하관계의 틀에 박혀 있어서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깨달아야 했으며, 어쩌면 단지 얻어터지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고 주의를 기울여서 사회를 배워가면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잘못된 훈육 방법은 부단 가정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훈육 방식을 결코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도 매 한 가지였다. 매가 없이 학교 교육 또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집과 가정 모든 장소가 다 아이와 어른, 자식과 부모, 선생님과 제자 등의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훈육이 모두 똑 같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해야 하는 제일 중요한 것이 농사 보다도 자식교육이지만, 당시 상황은 자식교육 보다도 우선은 먹고사는 문제가 더 큰 일이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식교육은 본인도 모르게 잠시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자식 스스로가 배우면서 헤처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자랐지만 크게 삐뚤어지지 않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 잘 적응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이 넓은 세상의 치열한 경쟁사회 속 어디에선가 한 영역을 담당하는 일꾼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다.
그처럼 치열하게 성장한 자식들은 다시 본인들이 부모가 되는 시점에는 세상이 급속도로 변해있어 적응하는데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제 내 자식을 누구보다 더 나은 오로지 최고의 자식을 만들기 위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했지만, 자식들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독불장군 같은 성격을 소유한 이기주의 즉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일원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다고 기존의 부모들은 본인의 주권을 주장하거나 보답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식들의 자식들까지 떠맡아 키워 주어야 하는 아이러니 한 세상으로 변했고 여기에 부모의 입장은 전혀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자식에서 손주로 바로 이어지면서 암암리에 희생을 강요받게 되고 자식들은 본인들의 사생활을 위해 그들의 부모들에게 일방적으로 본인 자식들을 떠 맡기면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지만, 부모들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전형적인 개인주의 신세대 구성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을 모두 받아 주면서 한마디 불평불만도 하지 않지만, 부모들은 이미 자식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의견을 좁힐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아무런 말도 대응도 하지 않고 현실 그 자체의 모든 것들을 부모세대 스스로가 떠안고 운명인양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이제 손주들도 어느 정도 성장을 해서 자기들의 주장을 할 정도가 되면 그들은 그들 대로의 삶의 방식을 선택해 자기들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자식세대와 손주세대 사이에는 그래도 자식세대와 부모세대보다는 간극이 좁은 세대차였기에 조금은 수월하게 자기들끼리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정해지는 것 같다.
부모와 손주의 세대 거리감은, 자식과 부모 사이의 거리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가 벌어 저서 도저히 융화를 할 수가 없는 별도의 세대가 되어 각자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3대 4대가 한집에 모여 살아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하면서 그때를 그리워 하지만 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感想일뿐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부모님들이 가정운영의 방향키를 본인 중심으로 돌려 보려고도 욕심을 부려도 보지만 그 방향키는 본인의 의지 일뿐 현실에는 전혀 먹히지 않으며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무용지물의 방향키가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한숨을 쉬게 되고, 이는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있다.
그만큼 세상은 급속도로 많이 변했고 이는 文物들만이 변한 것이 아닌 우리네 사회 풍습부터 교육 방식 전달방식 수용 능력 등 모든 것들의 간극차가 너무도 멀리 많이 벌어 저 버린 세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식을 이끌고 가려는 부모로 대부분이 변하지만, 그것보다는 이제는 최대한 말을 줄이고 조용히 침묵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가정의 安慰만을 빌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