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과학자들의 숨겨진 역사 <과학자들의 대결>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작 뉴턴은 가장 시비 걸기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도 진심으로 겸손하게 과학을 대하는 고귀하고 우아한 태도를 함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땅딸막한 적을 향해 빈정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과학은 치사할까? 이렇게 긴 논쟁의 역사가 과학의 본성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의 대결> 본문 중에서.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는 이렇게 묻는다. "진실이 먼저인가, 국익이 먼저인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은 그 접점에 있었다. 실제 사건에서도, 영화에서도 국익을 앞세워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와 음모, 협박이 계속된다. 영화는 답한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익이다." 그렇게 진실은 밝혀지고 신화도 막을 내린다.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신화의 메뉴는 역시 줄기세포였다.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젊은 여성 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가 만능세포로 평가받는 '자극야기 다능성 획득(STAP) 세포' 제조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과정은 황우석 사건과 비슷하다.
◇과학은 분쟁의 역사, 배신의 역사였다
과학은 분쟁의 역사다. 우리가 잘 몰랐을 뿐이다. 진실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투쟁, 과학자들의 실수(혹은 의도된 조작), 오해와 배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 조금 더 가지려는 사람의 욕망은 과학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학은 무조건 '과학적'이고 진실될 것이라는 신화에 갇혀 있지는 않았을까? 이 신화를 깨지 않으면 과학은 종교가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류는 과학을 '과학'으로 증명해 왔다는 점이다. 가끔 그 증명의 역할을 정치나 여론이 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과학적 증명을 통해서만 과학은 스스로의 진실을 입증했다. 줄기세포 역시 마찬가지다. 황우석 사건이나 하루코 사건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연구는 결국 진보할 것이다. 더욱 철저한 실험과 검증을 통해서. 그게 과학의 역사다.
과학과 역사 작가이자 기자인 조엘 레비가 쓴 <과학자들의 대결>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은밀하고 복잡한 과학의 역사를 들려준다. 책에서는 과학기술의 역사와 근대 과학이 태동하던 무렵부터 최근의 유전체학과 인간 진화 등의 분야에 이르기까지 25건 이상의 논쟁을 소개한다(황우석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하얀 실험가운 뒤에 숨어 있는 천재들의 뒷이야기를 통해 과학 역시 약점, 불안정성, 실수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목격한다.
◇분쟁의 시작, 연금술과 마술
과학은 태생부터 그랬다. 그 뿌리는 연금술과 마술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연금술사와 마술사는 서로 협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밀을 고수하고 타인의 노고를 폄하하며 오직 자신의 성과에만 집중했다. 현자의 돌, 납을 금으로 바꾸는 비법, 불로장생의 영약, 고대 지혜의 복원을 거머쥐는 최초의 1인이 되기를 희망하며 홀로 고군분투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이론과 실험과 증명이 중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라이벌끼리 벌였던 자존심 대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치열했다. 때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트 아들러(요즘 국내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 아들러다)의 볼성사나운 다툼이었다. 처음에는 학문적 견해차로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심리학 이론에서 성욕, 특히 소아 성욕의 중추적 역할을 확고하게 강조했다. 아들러는 인격 형서의 일차적인 동기유발 인자는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등감 콤플렉스'라는 이론을 구상 중이었다. 둘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학문적 견해차로 시작된 그들의 자존심 대결은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만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연구에 대해 한 친구에게 "강탈과 절취와 학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낡은 술책들을 자행하는데만 바쁜 것 같네"라고 적어 보냈다. 또 자신이 프로이트의 제자였다는 얘기가 나오면 불같이 화를 냈으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추잡하고 똥 같다"고 폄하했다. 프로이트도 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아들러의 편지는 너무나 그 다우며 그의 원한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고 있소. 아들러는 역겨운 사람이오." 아들러가 죽은 뒤에도 프로이트의 독설은 계속됐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싸움의 대가였던 뉴턴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자초한 과학자는 뉴턴이었다. 그는 누가 자신의 이론을 반박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싫어했다. 심지어 호전적이고 포악하기까지 했다. 뉴턴은 당시 왕립협회의 실험 책임자였던 로버트 훅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뉴턴이 훅에게 보낸 편지의 이 문구는 지금도 과학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데카르트는 훌륭한 발판을 닦아놓았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훨씬 많은 측면에서 보강했지요. 만약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겸손으로 들리지만 비아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후학들의 견해다. 중간 키에 구부정했던 로버트 훅의 외모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싸움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은 자존심 건 내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4년 스티븐 호킹은 물리학자 킵 손과의 내기에 참여했다. 내기의 주제는 백조자리 'X-1'에 블랙홀이 있는가였다. 호킹은 이 내기를 일종의 분산 투자로 이용하고, 백조자리에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80퍼센트 확신한다면서 손에게 4대 1의 배당률을 제시했다. 블랙홀은 정말로 있었고 호킹은 상품을 거머쥐었다. 이 내기는 호킹의 천재성과 함께 그에 버금가는 천재적 직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호킹의 전기작가 쓴 크리스틴 라르센은 '틀림없이 전설이 될 친선 내기'라고 표현했다.
이밖에도 책에서는 지구 나이를 놓고 벌인 켈빈과 헉슬리의 논쟁, 대륙 이동설을 둘러싼 베게너와 제프리스의 갈등, 인간의 계보에 대한 헉슬리와 윌버포스의 분쟁, 안전한 소아마비 백신을 찾아 나선 세이빈과 소크의 싸움, DNA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경쟁에서 벌어진 프랭클린과 윌킨스의 충돌 등이 펼쳐진다.
과학자들은 상대방의 연구성과를 무시하고 비아냥거렸다. 심지어 조롱했으며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왜 이렇게 과학은 치사할까? 이렇게 긴 논쟁의 역사가 과학의 본성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무엇보다 갈등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과학의 본성이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과학도 사실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들을 또 다른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다. 가설이 증명되면 그것은 이론, 즉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실제' 모델이 된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이론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수정되거나 뒤집힐 수 있다. 어쩌면 자연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끊이지 않는 생존경쟁에서 상황에 가장 잘 들어맞는 아이디어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피해야 할 것은 싸움이 아니라 맹신
아들러는 프로이트를 향해 '강탈과 절취와 학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낡은 술책을 자행했다'고 비난했다. 뉴턴은 외모까지 조롱하며 상대를 폄하했다. 하지만 이러한 '막가파식' 논쟁이 때로는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과학자들의 자존심 건 경쟁이 있었기에 지구와 우주의 비밀, 생명과 인체의 신비가 더 빨리 풀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최동원과 선동렬의 명승부가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를 높이고,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자존심 경쟁이 세계 축구의 판도를 바꾼 것과 같다.
문제는 과학계가 아니라 우리 사회다. '과학적인 사고'는 결국 논쟁을 인정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회'는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새로운 이론이 증명되면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문제는 논쟁과 싸움 자체가 아니라 증거로 증명된 주장이 나와도 '여전히 내가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것은 싸움이 아니다. 맹신이다. 과학의 대척점에 있는 그것을 우리는 종교라 부른다. 무조건적인 맹신과 추종을 요구하는 사람을 우리는 사이비 종교인, 혹은 무당이라 부른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