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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Apr 08. 2016

괴짜 물리학자 vs 삐딱한 법학자

괴짜-삐딱 형제의 본격 공부 논쟁 "우리는 왜 공부하나?"


"장원급제한 선비가 영의정을 꿈꾸는 것처럼 그런 과학자들이 인생의 후반부에 장관, 총리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과학 분야까지도 장인 DNA가 아니라 장원급제 DNA를 가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 -<공부 논쟁> 중에서.


“저도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전형적인 학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에 자리 잡은 후에도 구체적인 법률 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을 인정받기보다는 주로 대중적인 글쓰기로 시민들과 이야기 나누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일반적인 법률가의 길에서 한참 비켜난 삶이지만 의외로 주변에서는 범생이라는 얘기를 자주 해요.”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등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법학자 김두식 교수의 자기소개다. 그리고 형 얘기를 꺼낸다. “형은 저랑 반대입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미국 유학, 27세에 박사학위 취득, 31세에 서울대 교수 부임, 그리고 쭉 연구자로 한길을 걸었죠. 그런데 (형은) 범생이 소리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을 겁니다.”


법학 교수인 동생은 사회성 높은 책과 발언으로 꽤 유명세를 탔지만 ‘범생이’ 소리를 듣고, 서울대를 나와 이른 나이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모교 교수가 된 형(김대식)은 범생이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단다. 형제는 매사에 반대였다. 동생은 지나치게 규범적이었고 형은 일탈자였다. 


동생은 도덕적 감시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 고정되어 있었지만, 형은 수시로 ‘선’을 넘었다. 모범생이었던 동생에게 형은 언제나 시한폭탄 같았다. 동생 김두식 교수의 말처럼 형 김대식 교수는 “전략전술이나 동지도 없었으며, 누구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아무 데나 글을 썼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괴짜 물리학자인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와 삐딱한 법학자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형제의 <공부 논쟁>.  주로 '삐딱한' 동생이 묻고, '괴짜' 형이 답한다.


그런 형제가 함께 쓴 책, 혹은 대담을 나눈 책이 <공부 논쟁>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더 유명한 동생이 형을 끌어들인 것인데,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 눈치챈 것은 <욕망해도 괜찮아>였다. 김두식 교수는 형 얘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 그 형을 언젠가 '커밍아웃'시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동생인 김두식의 글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고, 동생이 소개하는 형은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방법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예 형과 함께 책을 펴낼 줄이야. 


이 책은 괴짜 물리학자로 불리는 김대식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삐딱한 법학자인 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형제의 대담집이다. 주로 '삐딱한' 동생이 묻고, '괴짜' 형이 답한다. 자기 생각은 이미 여러 기회를 통해 밝혔으니 형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동생의 배려가 엿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안 나오는 이유   

  

제목만 보고 공부 잘하는 비결이나 우리 아이 우등생으로 만드는 비법 정도를 기대했다면 책을 그냥 덮는 것이 좋겠다. 그런 내용은 없다. 형제가 확대경을 들이댄 곳은 대학, 특히 이공계와 과학기술계다. 노벨상을 배출할 수 없는 시스템,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대학 사회, 비과학적인 국내 과학 풍토와 영재교육 등을 정면으로 다뤘다. 과학자와 법학자의 간극만큼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지만, 형제가 내린 결론은 같다.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형제는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못하는 이유를 ‘동종교배’의 문화에서 찾는다.


대한민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 '15대 0'(지금은 이 스코어가 더 벌어졌다)이라는 참담한 패배를 안겨준 일본의 비결은 국내 박사를 우대하는 임용 시스템에 있다. 실제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15명 가운데 13명은 일본 내 박사다. 일본은 자기 연구실 출신 박사 가운데 제일 잘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는다. 이른바 '동종교배 (inbreeding)'다. 


형 김대식 교수의 진단은 이렇다. “노벨상 꿈나무니 뭐니 해서 대기업이 학생들을 하버드대로 보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웃기는 거죠. 그 학생들이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우리나라의 결과물인가요? 아니죠. 그보다는 오히려 인도에서 유학 온 학생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한국 인프라로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우리나라 과학자이고 한국의 노벨상인 거죠. 일본은 일찍부터 일본 박사들을 중심으로 일본 인프라를 가지고 자기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학문적 종속이 없어요. 학문적 고립 속의 동종교배가 갖는 힘을 보여준 거죠.


형의 돌직구는 계속된다. "서울대 출신들끼리 똘똘 뭉친 엉터리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결된 제대로 된 동종교배가 필요합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동종교배라는 말이 주로 국내 박사를 교수로 안 뽑는 정당화 근거로 활용됐어요. 학생들을 대학원생으로 뽑아 박사학위는 계속 주면서, 막상 교수 뽑을 때가 되면 해외 유학 박사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해요. 꼬드겼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공계 위기는 '이공계 교수'의 위기     


이공계 위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공계 위기의 핵심은 전교 1등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를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교 1등이 이공계를 지원한다고 훌륭한 과학자나 공학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학생이 아니라 교수가 문제다. 전에는 전교 수석을 신입생으로 받았는데 지금은 그게 안 돼서 교수들이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공부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다. 이공계 위기는 대학 교수의 위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형제의 진단이다. 


이처럼 이공계 위기론에는 자기 명예를 걱정하는 교수의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이공계 위기는 대학교수의 위기, 특히 이공계 교수들의 위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형제의 주장이다. 이것은 인문계도 마찬가지다(인문계 역시 그동안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엘리트주의에 불을 지핀 또 다른 고정관념은 '1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주장이다. 형제는 절대 동감하지 않는다. 발견이나 발명의 일반적인 실상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엘리트주의에 물든 우리의 대표적인 오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우연성에 기초하는 과학에서는 10억 원을 1명에게 몰아주는 것보다 10명에게 1억 원씩 나눠주는 게 더 필요하다. 


책 제목이 그렇듯 대화의 주된 주제는 공부다. 공부라고 하면 연상하기 쉬운 엘리트, 창의성, 탁월성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으로 대화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형제가 생각하는 우리의 공부는 무엇이 문제일까?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가 항상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이과에서 시험 잘 치는 학생들, 의대 갈 성적에서 조금 뒤진 학생들이 과학자가 된다. 그래서 형제는 말한다. 절대 우리나라에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이제 진짜 공부가 필요하다     


형제는 이제 진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장원급제 DNA가 아니라 '장인 DNA'를 가진 사람들이 우대받아야 한다. 김두식 교수는 "장원급제한 선비가 영의정을 꿈꾸는 것처럼 그런 과학자들이 인생의 후반부에 장관, 총리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과학 분야까지도 장인 DNA가 아니라 장원급제 DNA를 가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둘은 다르면서도 꽤 닮았다. 괴짜 과학자인 형 김대식 교수는 젊은 과학자상, 서울대 학술연구상, 한국 과학상을 수상한 동시에 국내 포경수술의 실태를 고발한 논문으로 국제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공직에 출마하는 선배 교수의 휴직 기간 연장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골칫거리 교수다. 


대담을 나누고 있는 형 김대식 교수(왼쪽)와 동생 김두식 교수.


삐딱한 법학자인 동생 김두식 교수는 검사로 임용됐지만, 사표를 던지고 유학 가는 아내를 따라 외국으로 갔다. 한국 법조계의 실상을 파헤친 <헌법의 풍경>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그는 이제 본업보다 글쓰기에 더 열심히다. 둘 다 자기가 속한 곳으로부터의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형제는 이 사회의 철저한 주류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금수저까지는 아니어도 은수저는 물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해외 유학도 다녀왔으며, 무엇보다 대학교수다. 이과와 문과에서 각각 최정상에 길을 밟았다. 뼛속까지 엘리트인 그들이 '엘리트 의식'을 비판하고 나섰으니 누워서 침 뱉기라는 비난도 들을 것 같다.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들은 영락없는 용감한 형제다.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그래도 다른 길이 있다> 등 김두식 교수의 책은 꽤 여러 권 샀다. 읽기도 했지만 주로 선물용이었다. 책을 덮으면 주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공부 논쟁>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이가 오로지 서울대, 혹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는 사람에게 이 책은 무용지물이다. 반면 왜 아이를 공부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 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아주 유용하다.  


p.s : 김두식 교수의 신간을 본 지 꽤 오래다. 따뜻하고 재기 발랄한 글을 빨리 보고 싶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공부 논쟁>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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