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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Apr 10. 2016

사과, 리더의 언어

사과는 어떻게 루저에서 리더의 언어로 부상했나


사과는 실수와 용서를 이어주는 다리다. 내가 한 실수나 잘못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 훌륭한 사과란 사과를 하는 사람이 피해자 혹은 대중들에게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많은 사람들은 자아도취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시작하지 못한다.” -<쿨하게 사과하라> 중에서


폴란드 바르샤바에는 비가 내렸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바닥은 젖어 있었다. 1970년 12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를 방문해 추모비 앞에 헌화했다. 거기까지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갑자기 빌리 브란트가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이자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는 조국 독일에 빚진 것도 없었고, 자기가 그렇게까지 사과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대신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헌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사과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는 물론 유대인도 이런 독일 총리의 모습에 감동했다. 전 세계도 독일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들였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나는 독일보다 독일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성공했고, 많은 역사가는 이런 동방정책이 결국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진정한 사과는 위대한 리더의 언어다. 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고 바르샤바의 유태인 저항 기념비를 참배하고 있다. 


진정한 사과 한마디는 이렇게 역사를 바꾼다. 개인의 삶도 바꾼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듣고 싶은 것은 단 한 마디다. 책임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진정한 사과. 그 사과가 진실 규명의 시작이자 끝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눈을 감기 전 듣고 싶었던 것도 단 한 마디다. 

 

이 글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 지금,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있다. 유가족들은 말한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이제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싶다고. 제발 묻게 해 달라고. 그래도 요지부동이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가 없으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리 없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침몰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 침몰 중이다. 


그래도 모두가 미안해한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피하거나, 마지못해 하는데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이 미안해한다. 모두가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하는데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고개를 돌리는 이 상황은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만큼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들이 듣고 싶은 단 한마디 미안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쿨하게 사과하라>는 과학 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경영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서에 가깝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사과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과학 콘서트>의 저자 정재승 KAIST 교수와 한국 유일의(책이 나올 당시에는) 설득 심리학 코치인 김호는 이 책을 통해 쿨(Cool)한 사과의 힘과 과학적 가이드를 제시한다. 


사과의 숨겨진 힘을 신경과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바탕으로 접근했다. 동료와 부하 직원과의 갈등에서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기업의 회생에 이르기까지, 잘못과 실수를 은폐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간관계의 법칙을 알려준다. 그 숨겨진 인간관계의 법칙이란 다름 아닌 사과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과, 19세기와 20세기 루저(loser)의 언어에서 21세기 리더(leader)의 언어로 부상하다."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그것을 가르는 강력한 수단은 사과였다.


그런데 21세기 리더의 언어라는 사과(그것도 진심 어린)는 여전히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누구나 알고 있다. 실수나 잘못을 범했을 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자 규범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사과를 주저한다. 직책이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권위가 심할수록 사과에 인색하다. 


저자들은 그것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사과하는 동시에 권위를 잃거나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다는 기억이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거짓말과 변명만 늘어간다. 권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불필요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사과를 주저하게 만든다. 


여기 한 사례가 있다. 40년 경력의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병원 의사인 다스 굽타는 2006년 최대 위기를 맞는다.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낸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환자의 가족을 찾아갔다. "저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환자분께 큰 해를 끼쳤습니다." 


환자의 가족은 굽타를 고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에 게재되면서 전말이 알려진다. 책 속에 소개된 이 사례는 즉각적이고도 솔직한 사과가 어떻게 피해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잘한 사과로 흥하고잘못한 사과로 망하고


사과와 용서의 함수관계를 실제 실험을 통해 입증한 사례도 있다. 이스라엘의 하렐리와 아시시코비츠 박사는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실험했다. 친구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하고, 그날 저녁 사과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실험은 명확하고 일관된 결과를 도출했다. 사과할 때 가해자가 느끼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함께 표현할 때 피해자들의 용서 의향이 높았다. 피해자들의 분노 역시 크게 줄었다. 이 실험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동정심이다. 가해자가 사과하면서 동정심을 표현할 때는 오히려 용서 의향이 눈에 띄게 줄더라는 것이다. 


사과를 하고도 더 욕을 먹는 사례를 자주 목격한다. 


물론 실패의 사례가 더 많다. KFC는 새로 나온 메뉴를 홍보하기 위해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인터넷 무료 쿠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프로모션에 필요한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료 쿠폰을 받을 수 있는 사이트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고 매장과의 협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만이 폭주했다. 당시 KFC 사장은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 사과를 했다. 그런데 이 프로모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사과가 아니라 신메뉴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사과는 했지만, 더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사과와 용서의 과학이 전하는 교훈은 간단하다. 사과는 감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 감정이 동반된 진심 어린 사과가 상대방의 분노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자신의 상태를 피해자의 상태로 낮추는 역할을 한다. 반면 어설픈 동정심의 표현은 역작용을 불러온다. 쉽게 말해 변명하지 말라는 거다. 


사과하고도 욕을 듣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운전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경비원에게 폭언을 가했던 '갑질' 회장님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말한다. 단순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고. 


결국,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실 누구나 사과를 하면서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다. 자존심일 수도 있고, 권위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직책에서 오는 책임감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변명과 은폐로 점철된 사과나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하나를 지키려다 전부를 잃는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사과는 패자가 아니라 승자의 언어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저자들은 그것을 가르는 강력한 수단이 사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어떤 사과는 사람들을 움직이고, 어떤 사과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단언한다. "사과는 결코 패자의 언어가 아니라 승자의 언어이며,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리더의 언어다." 


<쿨하게 사과하라> 책 표지. 


이 책을 4년 전에 구입했다. 그때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기억은 불분명하다. 사과할 일이 있었던 것인지, 사과받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이 흐릿하다. 다만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몇 가지 일들, 순간들을 떠올렸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 책을 읽으며 이런 대목에 밑줄에 그었다. "진심을 담아 용기 있게 사과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분노와 상처를 떠올리고 공감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 없이 진심 어린 사과는 나오지 않는다.”


책장을 다시 넘기며 이번에는 이런 대목에 별표를 그렸다. "사과는 실수와 용서를 이어주는 다리다. 내가 한 실수나 잘못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 훌륭한 사과란 사과를 하는 사람이 피해자 혹은 대중들에게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많은 사람들은 자아도취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시작하지 못한다.” 


또 이 대목에서는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거만한 사과는 모욕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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