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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May 02. 2016

JIFF에서 그 영화를 만나다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세 편의 영화


언젠가부터 썰렁해진 느낌이다.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국제'라는 단어는 다소 민망하다. 여기서 국제는 국제적, 세계적이라는 의미와 거리가 멀다.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상영된다는 의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역시 축소, 혹은 파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JIFF의 위상 추락은 안타깝다. 밋밋한 영화팬도 이럴진대, 두 영화제 열렬팬들의 심정은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면 된다. 단 한 편의 영화, 한 곳의 장소, 하나의 추억, 한 명의 사람, 그것으로 족하다. 1박 2일, 길어야 2박 3일을 넘기기 어려운 영화제 투어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기도 하다. 


늘 그랬다. BIFF든 JIFF든(물론 부천영화제와 제천영화제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제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떠날 때의 만족감은 도착했을 때의 실망감을 압도했다. 돌이켜보면 다 좋았던 게 아니다. 딱 하나면 족했다. 물론 그것은 영화일 때가 많았다.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징 조형물. 


<비스타리, 히말라야>, <소년, 장기왕 되다>, <마돈나의 댄서들>.  


2016년 JIFF에서 만난 세 편의 영화다. 이번에도 개막작은 보지 못했다. 화제작도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최선(늘 표가 없다)이 아니라 차선으로 고른 영화들이다. 다행히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비스타리, 히말라야>는 그동안 영화제에서 만났던 어떤 다큐 영화보다 수작이었다. 2016년 JIFF는 그래서 이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면 됐다. 


◇비스타리, 히말라야


씨없는수박  김대중, 손지연, 태히언, 최민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네 명의 뮤지션들이 네팔 여행을 떠난다. 가까운 히말라야 트래킹까지가 이들의 목적. 하지만 이런 의도는 출발부터 삐걱거린다. 포크 가수 손지연은 다른 사람과 뭔가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하다. 씨없는수박 김대중은 정작 네팔에 도착하면서부터 기타 치는 것도 노래 부르는 것도 귀찮다. 레게 가수 태히언과 재즈 국악을 하는 최민지가 기타와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지만, 이들도 힘들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 결국 다큐는 미완으로 끝난다. 


영화는 네 명의 노래로 시작한다. 영화 내내 이들은 노래한다. 영화가 끝난 후 GV를 위해 무대 앞에서 선 박정훈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의 노래를 편집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너무 아까웠다." 그랬을 것 같다. 음악과 네팔의 도시와 사람,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관객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그들이 바라보는 풍광과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다큐의 목적은 실패했지만, 이런 점에서 이 다큐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가끔, 이들의 노래를 찾아서 듣게 될 것 같다. 물론, 네팔 여행을 꿈꾸며. 


참, 비스타리는 느리게, 혹은 천천히라는 뜻의 네팔어라고. 

 

다큐 영화 <비스타리, 히말라야>. 다큐에서 이 지점까지 도착한 인물은 한 명 뿐이다. 
다큐 영화 <비스타리, 히말라야>에서 네팔의 거리에서 노래하고 있는 태히언. 


◇소년, 장기왕 되다    


청년 두수는 가락시장에서 일한다. 두수가 일하는 가게의 사장 양씨는 내기 장기에 빠져 있는데, 어느 날 두수의 장기 실력을 발견한다. 두수는 시장의 악덕 조합장을 누르고, 탑골공원 장기판을 평정하는 임무까지 맡게 된다. 그리고 노숙자센터를 없애려는 탑골공원 큰손과 일전을 겨룬다. 


영화의 큰 줄기는 이렇다. 이 줄기만 가져갔으면 이 영화는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것 같다. 그런데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청년 실업, 노인 실업, 노숙자, 직장 내 성희롱, 철거민, 여기에 풋풋한 첫사랑까지. 모든 것을 다 넣는 것은 쉽다. 오히려 하나만 남기고 다 빼는 게 어렵다. 이 지점에서 실패한 영화다. 물론 그동안 영화제에서 만났던 신인 감독의 영화로는 눈에 띄는 작품이다.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의제를 결합하려는 패기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영화 <소년, 장기왕 되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했다. 


◇마돈나의 댄서들  


팝 가수 마돈나는 1990년 ‘블론드 앰비션’ 월드 투어에 나선다. 이 다큐 영화는 당시 무수한 지원자들 중에 마돈나와 월드 투어를 함께 백댄서들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투어에서 마돈나는 동성애와 에이즈 등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여섯 명의 백댄서들이 당시의 기억을 들려준다.  


그들은 대부분 '게이'였다. 일부는 에이즈 환자였다. 또 일부는 그 병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이민자였다. 북유럽, 아시아, 남미..... 소수자였던 그들은 마돈나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정체성을 찾는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던 '커밍 아웃', 이로 인한 마돈나와의 소송, 그리고 HIV.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사고 있다. 여전히 게이로, 여전히 댄서로. 무엇보다 남들과 다름없는 한 인간으로. 


다큐 영화 <마돈나의 댄서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실제 마돈나의 백댄서들이었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2017년 JIFF의 몇 가지 풍경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만난 공연에서 옥상달빛을 만났다. 
이제 크고작은 행사에서 동네라디오, 마을라디오는 대세로 자리 잡은 듯. 전주 영화의 거리에 마련된 오픈형 스튜디오. 
<비스타리, 히말라야> 상영후 마련된 GV에 참석한 감독(맨우측)과 출연진들. 
JIFF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100개의 포스터. 
옿해 JIFF는 더 많이 축소됐지만, 영화 초이스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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