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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May 17. 2016

당신이 <곡성>이라는 미끼를 물었을 때

영화 <곡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당신은 미끼를 물었다. 영화 <곡성. 哭聲>이라는 미끼를. 그래도 너무 현혹되진 말자.


지난 주말에 이 영화를 다는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럼 아빠(곽도원을 말하는 듯하다)가 안 믿어서 다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일본 외지인이 성경 구절을 말하는 대목은 뭘 의미하는 거야?”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몰라.”     


영화평론가 허지웅의 말처럼 <곡성>은 믿음에 관한 영화일까? 가장 근접한 해석으로 보인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믿지 못해 생긴 비극은 주인공 종구(곽도원)와 동료 경찰뿐이다. 곡성에서 벌어진 다른 참극의 원인은 모호하다. 다만 무명(천우희)이 “굿을 해서 그런 일을 당(영화 볼 때 이 대사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 영화를 본 후배가 말해줘서 알았다)”고 독백처럼 말하는 대목에서 그들도 믿지 못해 그런 일을 당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영화 <곡성>의 포스터. '절대 현혹되지 마라', '미끼를 물었다'는 카피의 의미가 궁금했다.


◇'믿음'에 관한 영화?


도대체 <곡성>은 무슨, 어떤 영화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포스터에 있는 카피를 다시 봤다(우등생은 교과서에 충실한 법이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뭔 말인가. 악마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 하긴 종구는 악마의 말에 현혹돼 결국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그런데 또 안 믿어서 그렇게 된 거란다. 이율배반이다. 다음은 ‘미끼를 물었다’. 뭐가 미끼였지? 영화 전체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미끼 무는 장면, 혹은 스토리는 기억에 없다. 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절대 현혹되지 마라’, ‘미끼를 물었다’ 등의 영화 카피는 혹시 영화의 메시지가 아니라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영화 속 종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영화에 현혹되고, 미끼를 물었으니까.      


혹시 <곡성>은 그냥 죽음에 관한 영화는 아닐까? 알 수 없는 죽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어쩌면 감독은 그냥 ‘죽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악마든 귀신이든, 그 존재를 믿든 안 믿든, 걔네들의 말을 믿는 안 믿든 상관없이. 그냥 이런 건 감독이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장치에 불과하고,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죽음의 모습, 혹은 살인의 현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보여줄 것인가, 감독은 오로지 이것만 고민하지 않았을까?  


영화 <곡성>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장면은 시체, 혹은 시체가 발견된 장소다.


실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혹은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시체들, 시체가 발견된 장소, 혹은 시체 사진들이 쌓여 있는 외지인(쿠나무라 준)의 집이다. 그렇게 참혹한 시체가 발견되지만, 카메라 앵글은 참혹한 현장만 보여줄 뿐 살해하는 과정(그렇더라도 관객은 상상할 테니까)은 보여주지 않는다. 깊은 산 속, 비가 내리고, 한 집에서 의문의 시체들이 발견되고, 그들을 죽인 살인범이 넋 나간 채 앉아 있는 첫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럽지만,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죽음'에 관한 영화!


여기서  복기 해보자.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 2008>에서도 연쇄살인범은 특별한 동기가 없다(물론 범인은 동기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게 그토록 불편했던 이유는 오로지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를 납치하고 죽이는 장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황해. 2010>는 또 어떤가. 물론 한국에서 연락이 끊긴 아내를 찾기 위해 살인청부를 한다는 나름대로의 모티브와 내러티브는 있지만 영화는 오직 폭력, 그것도 아주 잔인한 폭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살인(추격자), 폭력(황해), 그리고 죽음(곡성). 어떤 의미에서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통해 ‘죽음의 3부작’을 완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곡성>은 기이한 죽음, 아니 그냥 죽음을 다룬 영화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 곡성에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악마와 귀신이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 기이한 죽음을 다룬 영화 <곡성>이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보다 더 기이한 일인지도 모른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감독의 말을 무시한 결과다. 그리고  ‘미끼를 물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죽음만 늘어놨을 뿐인데.      


현혹된지 알면서, 미끼를 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재밌는 영화, 좋은 영화를 논하기 전에 이렇게 잘 만든 영화(그것도 한국 공포영화)를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영화관 불이 켜지면, 당신은 분명 함께 영화를 본 사람에게 질문을 쏟아낼 것이다. 답을 찾지 못해도 답답해하거나 불쾌해하지는 말자. 어쩌면 감독은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미 물더라도 너무 현혹되지는 말자.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영화 촬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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