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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n 12. 2016

사랑은, 함께 있어주는 것

<미 비포 유>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오래 전 봤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를 떠올렸다. 여주인공 세라(엘리자베스 슈)가 벤(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선물을 주는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세라가 준비한 선물은 휴대용 술병. 알코올 중독자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술병이라니! 그런데 선물을 받은 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어린 마음에 꽤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사랑 얘기, 영화 얘기가 나오면 이 영화, 이 장면을 언급한다. 더 취하면 말도 안 되는 이런 얘기를 주절 거리기도 한다. “사랑이란 말이지,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휴대용 술병을 선물하는 거야.”  


<미 비포 유>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오마주로 읽힌다. 사진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한 장면.  


‘그게 말이 되냐’, ‘술 취했냐’는 반발에 부딪히곤 하는데 말주변이 부족한 나로서는 논리적인 설명이 쉽지 않다. 기껏해야 이렇게 항변한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봐.” 죽기로 작정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술병을 선물하는 게 왜 사랑인지 설명할 방법은 지금도 딱히 없다. 하지만 안다.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세라는 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죽기로 결심한, 그것도 술 먹고 죽기로 결심한 그를.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오?


사족이 길었다.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오마주로 읽힌다. 여기 죽기로 결심한 한 남자(윌)가 있다. 그의 ‘돌보미’로 일하는 여자(루이자)가 등장한다. 가정형편이 어렵고(이유는 딱히 모르겠는데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단다), 옷차림은 촌스럽다(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오히려 루이자의 패션에 감독은 꽤 공을 들인 듯하다). 둘은 가까워지고 사랑 빠진.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많이 이다. 모든 것을 가진 남자와 아무것도 없는 여자. 영화의 설정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결국 감독의 역량인데, 감독 선택한 전술은 꽤 영특하다.

 

우선 '진지하게 말하기’. 유치한 이야기도 상대방이 진지하게 말하면 대놓고 웃을 수 없는 법이다. 영화 보는 내내 그랬다. 이거 좀 유치한 장면이잖아, 대사가 너무 오그라들잖아,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괜히 진지해진다. 감독이 너무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말하니까. 왠지 슬프다고 느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고 할까? 물론 슬픈 스토리다(어느 죽음이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장면에서는 정말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기도 한다.


영화 <미 비포 유>는 결국 동화같은 사랑이야기다.


감독이 택한 또 하나의 전술은 ‘동화처럼 만들기’. 남자 주인공 윌의 외모부터가 백마 탄 왕자이다. 게다가 그의 배경, 심지어 사는 곳(무려 城이다)은 또 어떤가. 모든 것을 가졌지만,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그래서 죽음을 선택한 남자. 처음에는 별반 매력 없어 보이던 루이자도 갈수록 눈부시게 변한다. 키 작고, 통통하고, 촌스럽던 그녀는 점점 신데렐레가 된다.


감정이입이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 같기도 한 그 경계선을  동화처럼 만들어 흐릿하게 더니  허물어 버린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영화지만, 관객들은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한다. '좋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감독의 전술은 성공했으니까.



◇동화처럼 만든 러브스토리…'존엄사'는 배경


존엄사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영화, 존엄사라는 무거운 주제에 화두를 던진 영화라는 평이 있는데 무시해도 된다. ‘존엄사’ 문제는 그저 이 영화의 배경일뿐이다. 미안하지만 영화는 존엄사에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다만 '그토록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까지 생겼는데, 그런 불행한 일이 닥쳤다고 꼭 죽어야 하느냐'는 통속적인 질문만 남는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존엄사 문제를 ‘돈 많은 사람들의 호사’ 정도로 왜곡할 수 있는 소지도 엿보인다.   


영화 <미 비포 유>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사랑은,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함께 있어주라고 말한다. 우리는 착각한다. 사랑하면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사랑하면 상대방을 바꿀 수 있다고. 영화 속 여주인공도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친구까지 버리고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요즘 유행하는 '아들러'의 철학을 인용하자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그가 선택한 것은 그 사람의 과제다. 내가 할 수 있는 과제는 ‘함께 있어주는 것’ 뿐이다. 할 수 없는 일에 욕심내지 않고 내 과제에 충실한 것, 어쩌면 온전한 사랑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원칙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든 그 사람을 바꾸려 애쓰지 말자. 내가 억지로 바뀔 필요도 없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세라가 벤에게 술병을 준 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루이자가 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로 용기를 낸 것도 사랑이다. 벤도 변하지 않았고, 루이자도 자신의 결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두고, 자신들이 선택한 길(죽음이라는)로 향한다. 윌이 편지를 통해 세라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항상 함께 있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게 사랑이다.      


by 책방아저씨 blade31@hanmail.net  



p.s : <미 비포 유>는 조조 모예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Me before you'는 '널 만나기 전에'라는 뜻이라고. 영화 마지막에서 루이자가 걸었던 다리는 퐁네프인 것 같다. 가장 좋은 장면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그 다리를 다시 한 번 건너보고 싶었다.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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