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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an 06. 2017

공포와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되는가

혜성과 매듭이라는 상징으로 본 <너의 이름은.>


집단과 개인의 공포는 어떻게 조우하는가. 또 집단과 개인의 상처는 어떻게 충돌하고 치유되는가. 책 한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 이 묵직한 주제를 한 편의 영화가 던진다. 그것도 그냥 영화가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진 말자. 그래도 영화는 영화,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니까. 다만, <너의 이름은.>을 보기 전 어느 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많은 영화니까.


물음표가 많은 이유는 부비트랩처럼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아니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과 은유 때문이다. 당연히 그 상징과 은유의 매듭을 풀어야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텐데, 그 매듭을 풀기가 쉽지 않다. 그 ‘매듭’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츠하의 할머니는 이런 주문 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끈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무스비는 우리말로 이어짐, 혹은 매듭을 뜻한다고. 그래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상징은 어쩌면 매듭, 혹은 미츠하가 타키에게 줬던 매듭 끈일지도 모른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가운데).


또 하나 비중 있는 상징과 은유는 당연히 혜성이다. <너의 이름은.>에서 혜성은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이자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브다. 영화 속 혜성은 이중적이다. 1,200년 만에 지구와 가장 가까워진다는 혜성은 신비와 대장관의 대상이자 공포와 파괴의 대상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차라리 명료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관객과 만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대지진(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일본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도 바뀌었고, 관객도 바뀌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었다면’, ‘내가 만약 지진의 피해자였다면’과 같은 생각을 모두가 함께 공유한 시간이었다. 그러한 경험 위해 픽션을 덧붙인 다음 당시의 바람과 기도를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대부분 희생자는 미츠하가 사는 이토모리처럼 소도시와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죽거나 다쳤고, 모든 것을 잃었다. 이제 그 아름다운 마을은 꿈속에서, 혹은 타키가 그린 그림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 공포와 상처는 변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타키가 사는 도쿄와 같은 대도시 사람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잊지 못할 거대한 공포와 상처. 그것을 고스란히 경험하거나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영화는 이어짐(혹은 매듭)에 주목한다. 그것을 사랑(그저 로맨틱한 이성 아니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인연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떻게든  공포와 상처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몸이 뒤바뀔 정도의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인내해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자꾸 묻는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너의 이름은?” 그리고 또 반복한다. “끈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연결하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혜성과 함께 이 영화의 가장 큰 상징과 은유는 매듭, 매듭 끈이다.


매듭 끈과 혜성 말고도 할머니의 제의나 사케처럼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영화에서는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것의 답을 찾는 것에만 열중하면 자칫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놓칠 수 있다. 일본어 가사가 몰입을 방해하지만, 주제가도 꽤 감미롭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사와 서정, 실사와 만화적 기법이 절묘하게 뒤섞인 ‘그림’이다. 스토리를 ‘보여’ 주는 것이 영화다. 애니메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토모리라는 곳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으니 작화 역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얼마 전 후배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전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시큰둥했다. 하지만 개봉 첫날 <너의 이름은.>을 보고 나오면서 2016년 첫 영화가 이 영화라는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졌다(그 후배에게도 행운을). 참 영화 제목이 <너의 이름은>이 아니라 <너의 이름은.>이라는 점에도 주목하자. 마침표가 들어간다. 없어도 되는 마침표를 굳이 제목에 넣은 이유도 궁금하지만, 말줄임표(…)나 물음표(?)가 아니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말하지 않았나. 이 영화는 온통 상징과 은유 투성이라고.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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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되는 미츠하의 시골마을 이토모리와 타키가 사는 대도시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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