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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Feb 05. 2017

우리가 그들을 만났을 때

영화 '컨택트'를 보는 세 가지 관전 포인트



우선 기존 SF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자. 화면 가득한 볼거리는 없다. 외계인이 잠시 등장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형체는 뚜렷하지 않다. 화려한 특수효과를 앞세운 블록버스터급 액션도 없다. 대신 영화 내내 머리를 써야 한다.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지적인 고민과 해석을 요구하는 SF 영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다르다.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세 가지 포인트를 꼽아 봤다. 


1. 콘택트 vs 컨택트, 조디 포스터는 잊어라  


왜 원제 '어라이벌(Arrival)'을 쓰지 않고 굳이 ‘컨택트’라고 했을까? 영화의 주제를 더 잘 드러내기 때문에? 어감이 좋아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영화는 1997년 개봉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Contact)’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가 콘택트의 리메이크판이거나 속편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물론 유사점도 있다. 일단 주인공이 여성(그것도 가족을 잃은)이고,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다뤘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혹은 SF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1997년 콘택트는 칼 세이건의 동명소설, 2017년 컨택트는 중국계 미국인 SF 소설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이다. 하지만 두 영화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다. 두 영화를 비교한 영화평이나 리뷰가 많다. 오히려 이런 비교가 컨택트의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러니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는 잊고 보는 것이 좋다. 


1997년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왼쪽)'과 2017년 에이미 아담스 주연의 '컨택트'. 두 영화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2. 시카리오 vs 컨택트, 드니 빌뇌브 감독의 두 영화   


오히려 비교하면서 보면 좋을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여성이다. 감독은 여주인공을 남자들의 세계에 툭 던져놓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감독은 다 보여주지 않고, 꼭 보여줄 것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시카리오’의 경우 동종의 다른 영화에 비해 스케일이 크지 않지만, 멕시코 마약 소굴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고속도로에서의 총격신은 압권이다.    


컨택트 역시 비슷한 문법을 따른다.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러 가기까지 30분 정도 분량은 어떤 SF 영화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영화 보러 가기 전, 혹은 보고 난 후 꼭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 ‘시카리오’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두 영화가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두 영화가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왼쪽)'과 '컨택트'는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3. 언어학자 vs 물리학자,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발사된 NASA의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는 금박을 씌운 레코드판이 붙어 있다. 일명 ‘골든 레코드’. 이 레코드판에는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과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한국말도 있다), 지구 사진 118장 등이 담겨 있다. 혹시 우주 어딘가에 외계 문명이 있고, 이들이 보이저호를 발견했을 때 지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일종의 ‘지구인 자기소개서’인 셈이다. 과연 외계인은 이것을 보고 지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 ‘컨택트’를 보면,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 주인공 루이스는 언어학자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이안(제레미 레너)은 물리학자. 이 영화에서는 물리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어느 날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에게 ‘당신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것은 언어학자 루이스의 몫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영화에서는 “언어가 모든 생명체의 사고를 규정한다”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언어학자, 이안은 물리학자다. 영화에서 물리학자는 큰 역할이 없다. 


감독 드니 빌뇌브는 좋건 나쁘건 인간이라는 종이 지배하고 있는 지구에 낯선 문명이 찾아왔을 때 첫 번째로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성공했다. 볼만한 SF 영화, 재미있는 SF 영화는 많지만, 좋은 SF 영화는 드물다. 컨택트는 좋은 영화다. 영화를 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것이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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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는 다 보여주지 않은 채 긴장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재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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