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방아저씨 Jul 07. 2015

끔찍한 재앙을 가져올 이 책의 흔한 질문

랜들 먼로 <위험한 과학책>

지난 4월 네팔을 강타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8에 육박했다. 현재까지 공식 집계로만 이미 8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고, 에베레스트산의 고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11년 리히터 규모 9의 동일본 지진으로 2만 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 지구의 자전축이 약 10cm 이동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리히터 규모 15, 혹은 20의 지진이 미국, 뉴욕을 덮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메이저리그 출신의 박찬호는 미국 진출 초기 최대 161km의 빠른 공을 던졌다. 일본 최고의 강속구 투수 오타니 쇼헤이는 현재 170km에 도전 중이다. 신시내티 레즈의 아롤디스 채프먼은 2011년 170.6km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신체조건이 우수한 메이저리그에서도 100마일(161km)은 꿈의 구속으로 불린다. 빛처럼 빠른 공을 던진다고 해서 이들을 흔히 ‘광속구 투수’라고 부른다. 그런데 만약 투수가 진짜 ‘광속구’를 던진다면?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상상하기도 힘든 이런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랜들 먼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던 그는 현재 코믹 웹툰 ‘xkcd’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공학도에서 웹툰 작가로 변신했지만 과학이나 수학에 대한 관심은 줄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와 딱 맞는 일을 찾는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상하고, 때로는 걱정스럽기까지 한 질문들에 답변을 쓰는 것. <위험한 과학책>은 그런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모은 책이다. 

<위험한 과학책>의 저자 랜들 먼로. <사진 출처=시공사>

질문이 엉뚱하다고 대충 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학자들이라면 미치광이의 질문이거나 장난전화로 생각했겠지만 저자는 기상천외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기밀 해제된 군사 연구자료를 뒤지는 것은 기본이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수영을 하면 어떻게 되든지 답을 찾기 위해 원자로가 있는 연구시설에서 일하는 친구와 직접 통화하고,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요다의 파워를 계산하기 위해 영화 속 장면의 시간을 재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가장 쉽고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을 제공한다. 


물론 답은 간단하다. 리히터 규모 15 이상의 지진이 도시를 덮치면 “공중에 있는 티끌 하나가 테이블 위해 내려앉는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투수가 진짜 야구공을 광속으로 던지면? 거대한 섬광이 번쩍이며 반경 수 km 내의 모든 것이 초토화된다. 


이렇게 답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에 온갖 과학적 지식과 상식이 등장한다. 리히터 규모 15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방출하는 에너지 양은 지구의 중력 결합에너지와 맞먹고, 규모 20의 지진이 일어나면 지구만 한 크기의 수소 폭탄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정도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광속구를 던졌을 경우 공이 투수에서 홈플레이트를 거치며 발생하는 일들을 나노 초 단위로 설명한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이런 질문도 있다.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 일단 거의 모든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지구가 멈추고 공기는 멈추지 않는다면 시속 1,600km의 강풍이 몰아친다. 강풍은 열 폭풍으로 바뀌어 육지는 타는 듯이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은 지역은 지구를 삼킬 듯한 천둥 번개가 친다. 파도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구 전체를 휩쓸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의 모든 해안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만약 투수가 정말로 광속구를 던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과학자처럼 심각해졌다가 개그맨처럼 웃겼다가 

이런 과학적 지식을 소개하면서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는 이 책을 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다. 저자는 광속구를 던졌을 때 발생하는 온갖 끔찍한 상황과 재앙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뒤 “메이저리그 야구 규칙에 따르면, 이런 경우 ‘몸에 맞는 공’으로 봐야 할 테니 타자는 1루까지 진루할 자격이 생긴다”고 태연하게 결론을 내리는 식이다. 또 태양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묻는 질문에는 “결론적으로 태양이 꺼지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다양한 혜택이 있다. 다만 이 시나리오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 모두 얼어 죽는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수영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설명한 후에는 “친구에게 방사능 차폐 수조에서 누군가가 수영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봤는데요.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금방 죽을 거 같은데? 아마 물에 닿기도 전에 죽을 거야. 총 맞아서’”라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이처럼 때로는 과학자처럼 심각해졌다가 때로는 개그맨처럼 웃겼다가를 반복하는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400쪽이 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사실 많은 질문들은 실제 일어날 경우 매우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진과 광속구를 묻는 질문은 차라리 점잖은 편에 속한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수영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구와 지구 상의 모든 물체가 갑자기 자전을 멈췄는데 대기는 여전히 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주기율표에 있는 각 원소로 정육면체 모양의 벽돌을 만들어 주기율표 위치 그대로 배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만약 누군가의 몸에서 DNA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질문은 위험한 정도를 넘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말로 책을 시작한다. “이 책에 나오는 어떤 내용도 절대로 집에서 시도하지 마세요. 저자는 코믹 웹툰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의학 전문가나 안전 전문가가 아니에요. 저자는 불이 붙거나 무언가 폭발하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안전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겠죠? 출판사와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정보로 인한 그 어떤 직·간접적 부작용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책 속의 질문 대부분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이다.

◇빌 게이츠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 

물론 위험하고 엽기적인 질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무릎을 치는 유쾌한 질문도 적지 않다. 어떤 독자가 물었다. “레고 블록으로 런던에서 뉴욕까지 차가 다닐 수 있게 다리를 건설하려면 레고 블록이 몇 개나 필요할까요?” 다른 질문처럼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답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태도로 진지하게 임한다. 


결론은 이렇다. 일단 만들 수는 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데 3억 5,000만 개의 블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먼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고, 북대서양의 폭풍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계산해서 추가로 몇 개의 레고가 필요한 지 계산한다. 그래서 내린 최종 결론. “가장 간단한 설계로 (레고) 다리를 만든다고 해도 5조 달러 이상이 소요될 거예요. 우리가 런던에 있는 모든 부동산(2조 1000억 달러)을 사서 조각을 내고 뉴욕으로 싣고 가도 레고 다리의 건설 비용만큼은 들지 않는다는 얘기지요.” 


독서광으로 유명한 빌 케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 여름휴가 때 읽을 만한 7권의 책’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 7권의 목록에 랜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과 <xkcd>, 2권이 포함됐다. 빌 게이츠는 그의 책에 대해 “저자의 답변이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인 근거가 충실하고 정확하다”고 평했다. 


과학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어렵다. 심지어 어떤 과학자는 “과학을 쉽게 설명한다는 말 자체가 과학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먼로의 책을 평한 것처럼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인 근거가 충실하고 정확한’ 책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다. 과학을 쉽게 설명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과학은 쉽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랜들 먼로의 이 말은 답을 찾는데 유용한 힌트가 될 것 같다. 


“멍청한 질문은 (답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에요. 멍청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에는 꽤나 흥미로운 곳에 도달할 때가 있더라고요.” 


by 책방아저씨


<위험한 과학책>


매거진의 이전글 실수하는 우리는 모두 보통의 존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