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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n 23. 2017

그녀(Elle)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영화 <엘르>의 폭행과 상처, 그리고 치유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쓴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섹스 없는 남녀의 우정이 가능한가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섹스 있는 우정이 성립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시오노 나나미의 이 말이 생각났다. 전혀 무관하지도 않다. 영화를 관통하는 한 단어를 말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섹스’라고 말하겠다. 섹스와 관련된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가 가득하다. 상처와 치유로서의, 관계와 단절로서의 섹스.


미셸에게 폭행은 상처인 동시에 주홍글씨다.


◇얽키고설킨 관계, 연결고리는 '섹스'


또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파티’ 장면을 꼽겠다. 주인공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크리스마스 날 자신의 집에서 연 조촐한 파티. 가족과 가까운 이웃만 초대한 그 파티에서는 얽히고설킨 모든 관계가 등장한다. 대화는 가볍고 때론 무겁다. 등장인물은 추하고 때론 관능적이다. 


주인공 미셸을 중심으로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의 면면은 이렇다. 일단 나이 든 엄마와 엄마의 젊은 정부(情夫), 전 남편과 전 남편의 새 애인,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안나와 그녀의 남편(안나는 한때 동성애 직전까지 갔었고, 그녀의 남편은 미셸의 섹스 파트너다), 아들과 동거녀(둘 모두 백인인데 흑인 혼혈아가 태어난다), 이웃집 남자 패트릭과 그의 부인. 미셸은 섹스 파트너가 보는 앞에서 패트릭을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영화는 미셸이 무참히 폭행당하는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지막도 그렇다. 카메라는 폭행에 대처하는 미셸의 태도를 말하려는 듯, 쉼 없이 폭행에 노출된 그녀의 모습을 따라간다. 폭행 전의 미셸, 폭행당하는 미셸, 폭행 후의 미셸, 전 남편과 동료에게 이 사실을 말하는 미셸,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미셸. 


영화는 미셸이 무참히 폭행당하는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지막도 그렇다


미셸에게 폭행은 상처이자 주홍글씨다. 연쇄살인범의 딸, 범행을 저지른 아버지와 태연하게 집을 태우고 있던 딸. 열 살 미셸에게 그 후의 시간은 고통과 지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폴 버호벤 감독은 이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녀가 그동안 어떤 고통과 상처 속에서 살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현재의(50대 초반의?) 미셸이 겪는 고통과 상처만 보여준다. 그것은 낯선 남자로부터의 폭행이다. 폭행에 가까운 주변 남자들의 섹스 요구(안나의 남편)와 범죄에 가까운 성희롱(회사 직원들)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빌리자면 폴 버호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섹스 없는 상처가 가능한가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섹스 있는 치유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있다.” 


◇폭행, 상처인 동시에 주홍글씨 


미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폭행에 대처하고 폭행을 해결한다. 폭행당한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낯선 침입자를 해결하는 장면이 아니라 전 남편과 친구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는 장면이다. 회사에서 성희롱을 통해 권위에 도전한 남자 직원들을 해결하는 장면이다. 남편의 불륜 상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동료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주인공 미셸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것은 곧 미셸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지나치게 냉정하고 이기적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러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상처인데. 드러내고 마주하기. 미셸은 열 살 이후로 상처에 갇혀 살았던 자신을 드러내고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것을 극복한다.  


영화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이며 때론 서늘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다. 따뜻한 위로도 전해진다. 어쩌면 해피엔딩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미셸 역의 이자벨 위페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녀에게 생애 첫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자벨 위페르를 위한 이자벨 위페르에 의한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화 속 그녀(elle) 미셸과 영화 밖 그녀 이자벨 위페르에게 박수를. 


by 책방아저씨



추 1. 오랜만에 영화 감상문을 쓴다. 그동안 본 영화들에게 미안하다. <엘르>보다 좋은 영화도 많았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본 <샤인>처럼. 


추 2.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쓸데없는 논란을 부추길 듯하여),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탁현민 논란이 생각났다. 굳이 내 의견을 묻는다면 조기숙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추 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모든 영화 감상문, 영화 비평, 영화 후기는 스포일러를 포함한다. 둘째 진정한 영화 관객은 스포일러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셋째 영화를 보는데 영향을 줄 정도로 내 글이 영향력이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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