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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17. 2017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그림 같은 어떤 예술가의 삶과 사랑 <내 사랑>



“개를 더 많이 키워.”  


영화를 통틀어 가장 울컥한 대사는 이 한 마디였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주인공 모드 루이스(샐리 호킨스)가 남편 에버렛 루이스(에단 호크)가 남긴 말이다. 자신이 없을 때 남편이 느낄 상실감, 고독감이 얼마나 클지 누구보다 잘 아는 모드였기에 “개를 더 많이 키우라”고 말한다. 


모든 장면이 좋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가장 좋았다. 표지판을 치우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어둠.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사랑도 그렇다. 아무리 절절한 사랑을 나눈 사이라 하더라도 언젠가 헤어지는 법(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더라도). 그 뒤에 남는 것은? 깊은 침묵과 어둠뿐이다.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인내하는 것, 결국 마지막에 남는 일은 그것뿐이다. 영화가 그렇게 끝나서 정말 좋았다. 


영화 제목이 잘못됐다. 원제 ‘모드(Maudie)’가 맞다. 신파조의 ‘내 사랑’으로 번역한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오로지 ‘사랑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영화 제목만큼이나 오역(誤譯)이다. 영화는 오히려 ‘예술(가) 이야기’에 가깝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모드가 정규 미술교육 한 번 받지 않고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지 과정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영화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 모드  


모드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했다. 무엇보다 그림을 사랑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도 붓만 들면 행복하게 만드는 그 그림을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모드의 삶과 사랑과 예술의 관한 이야기다. ‘내 사랑’이라는 제목은 부차적이며, 주변적이다. 그런 삶을 산 모드에게 준 일종의 선물일 뿐이다(하긴 선물은 소중하다). 


모드는 누구보다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임을 실천한 인물이다. 예술 세계의 중심도 자신이다.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으니 정해진 틀이 없다. 자신이 본 것, 느낀 것 그대로를 작은 화폭에 옮길 뿐이다.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을 화려한 꽃으로 수놓는다. 무뚝뚝하고 지저분하며 폭력적이기도 한 남편의 모습조차 그림에서는 멋진 사나이로 변신한다. 그녀의 눈에는 남편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온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해석할 수 있다. 오갈 데 없는 모드가 마치 도망치듯 에버렛의 집으로 왔지만, 그녀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에게 당당히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조금도 친절하지 않은 남편이 자신을 아껴주는 행동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모드가 남편 에버렛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드는 억지로 남편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자신에게 맞추도록 강요하지도 않는다. 변화를 강요하지 않되 그럴 수밖에 없는 남편을 이해한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고, 대화보다 호통이 앞섰던 남편이 원래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한다. 변화시키려 하는 대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경험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느끼도록 해준다. 집을 바꾸고 환경을 바꿔서 에버렛이 행복을 맛볼 수 있도록 한다. 에버렛은 그 행복을 경험하고 느낀다. 그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에버렛은 서서히 고분고분한 남자가 되어 간다. 앗 이게 변한 게 아니고 뭐지? 하여간 변화시키려고 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모드는 정말로, 많이, 에버렛을 사랑한 것 같다. 


영화는 모드의 그림 같다. 모드가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한 폭의 인물화다. 깨끗하게 치워놓은 집(헛간 같은)의 벽면은 한 폭의 정물화다. 눈 쌓인 평원과 마을은 한 폭의 풍경화다. 홍보용으로 만든 영화 포스터와 스틸컷조차 이처럼 아름다운 영화는 드물다. 모드와 에버렛은 실존 인물이다. 모드는 서른다섯에 열 살 연상의 어부 에버렛을 만나 30년 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그들의 사랑도 그림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사랑한다면, 우리처럼.”  


by 책방아저씨  

영화 속 모드 루이스와 에버렛 루이스의 집. 


<실제 모드 루이스의 그림>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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