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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10. 2015

교양이 바닥난 당신을 위한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행복한 책읽기 4.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누군가 말했다. 고전이란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은 책'이라고.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책이기도 하다. 미뤄놓은 숙제 같은 것. 적어도 나에게 고전은 그렇다.  

2012년은 참으로 신산스러운 해였다. 그 해 말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그 영화를 본 한 지인은 "러셀 크로우가 그렇게 비장하게 노래하는 장면만 안 나왔어도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어디 그 장면뿐이랴. 유심히 뜯어보면 어색한 장면, 손 오그라드는 장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그 영화가 좋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가슴이 아팠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가슴이 뛰기도 했다(고백하자면 그때는 사소한 일에도 그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5권짜리 <레미제라블> 세트를 덜컥 주문한 것이다. 다음 얘기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1권 30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레미제라블> 세트는 지금도 책꽂이 한편에서 먼지만 먹고 있다(빅토르 위고 아저씨한테 정말 미안하다). 인문학의 중요성과 고전문학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습관처럼 그쪽을 바라보지만 하지만 다시 책을 빼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직접 읽기 여의치 않으면 이 책을 읽어라"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그렇게 고전을 잘해주지 못하고 방치해 놓은 연인 대하듯하다 작년에 이 책을 만났다. 각설하고, 일단 추천사만 훑어보자. 

"요즘 나는 책 추천을 하지 않는다. 추천사 요청이 너무 많이 온다. 그래도 이 책은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글의 애독자였다(유시민).", "그는 딴지일보 역사를 통틀어 가장 딴지적 글쟁이다(김어준).", "마흔이 넘어 <데미안>을 읽었다. 그 나이에 읽었어도 작품의 의도를 몰랐기에, 이해력이 떨어지는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해준다. 쫄지 마!(서민)", "고전은 직접 달려들어 읽는 게 가장 좋다. 그렇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이 책을 읽어라(고종석).", "이 책은 읽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한 책이다. 하지만 비밀스레 말하건대 나도 읽었다(로쟈 이현우)."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글쓰기의 대가들이 앞다퉈 추천사를 남겼으니 귀 얇은 내가 어찌 이 책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책 제목도 나 같은 얄팍한 지적 허영에 빠진 사람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바로 그 책은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이다.


우선 저자 김용석의 프로필을 잠시 살펴보자(분명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나도 듣보잡이었다). 필명 '너부리'. 2000년 딴지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해 딴지일보의 '각종 편집장'을 맡고 있단다. 2005년부터 너부리라는 필명으로 이 글을 연재했다. 그 전까지 그가 자랑으로 삼았던 일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고유영 화백의 <삼국지>가 대거 삭제된 채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작가를 설득해 다시 무삭제로 복원한 일, 또 하나는 성인 정당인 남로당(남녀불꽃노동당)을 창당한 일. 그리고 자랑할 일이 하나 추가됐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을 쓴 일이란다.  


◆방어적·공격적·생계형·오독의 읽은 척  

영화 <분노의 포도>. 

이제부터 본격적인 책 얘기. 저자는 고전문학 얘기에 앞서 '읽은 척'의 의미를 정의한다. 그가 말하는 '읽은 척'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유형 1-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방어적 읽은 척’, 유형 2-오히려 한술 더 뜨는 ‘공격적 읽은 척’, 유형 3-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계형 읽은 척’. 유형 4-진짜로 읽었어도 재앙을 불러오는 ‘오독의 읽은 척’. 

이렇게까지 읽은 척해야 하는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이 네 가지 유형을 모두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네 가지 유형에 모두 해당되기도 하는데 딱 내가 그렇다. 안 읽은 책 얘기가 혹시라도 나오면 유형 1에 속하는 동시에 그게 자존심 상해 유형 2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더 이상 이렇게 밀리면 안 되겠다 싶어 유형 3을 선택하기도 하고, 분명히 읽은 책인데도 막상 얘기가 나오면 유형 4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의 쓴 취지를 밝히는데 그 이유가 제법 거창하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챌 수 있듯, 이 책은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고전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뷔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 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고전은 모두 13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밀란 쿤데라의 <농담>, 조지 오웰의 <1984>,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카뮈의 <이방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읽은 책도 있지만 일단 제목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그런 책이 상당수다. 읽었지만 도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정말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혹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읽은 척’ 하고 싶은 고전들이다. 결국 이 책은 이런 얄팍한 욕망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욕망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드러내고, 쓸데없이 고상한 척 폼 잡지 말고, ‘당신이나 나나 안 읽은 것은 마찬가지니 이 책이라도 읽어보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결국은 '고전문학 제대로 읽기 매뉴얼'  

영화 <위대한 개츠비>. 영화를 보고 이 책도 바로 샀고, 다행히 읽었다. 

눈 밝은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읽은 척 매뉴얼'이라고 해서 이 책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읽은 척하기 좋도록 요약 정리하고 핵심 주제를 도출해 설명해준다고 ‘겸손’을 떨고 있지만, 저자까지 '읽은 척'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각각의 책을 완독하고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독자에게는 이 책으로 ‘읽은 척이라도 하자’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꼼꼼하게 텍스트를 읽은 흔적이 곳곳에 베어 있다. 또 그 누구보다 고전을 사랑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전은 재밌다. 어렵고 진부할 것 같지만 단언컨대 고전은 재밌다. 재미없는 책이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읽는 고전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재밌는 고전을 가장 재밌게 소개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전의 재미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고전빠’든, 아예 고전이 뭔지도 모르는 속칭 ‘고알못’이든 고전문학을 읽지 않고는 ‘읽은 척’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고전문학을 읽어 보자고(아니 꼭 읽어 보라고) 권유하는 책이다. 

<레미제라블>이 개봉한 이듬해, 그러니까 2013년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국내에서 개봉됐다. 고백하건대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 책이 어떤 스토리인지도 몰랐고, 왜 개츠비가 위대한 지도 몰랐다. 2012년의 후유증이 계속됐던 걸까? 영화를 본 뒤 역시 책을 샀다. 다행히 <레미제라블>처럼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장편소설 치고는 얇았다. 덕분에 <위대한 개츠비>는 완독 할 수 있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대게 그렇지만 책이 영화보다 다섯 배는 좋았던 것 같다. 

책은 읽었지만 여전히 '읽은 척'할 엄두를 못 낸다. 그저 개츠비의 '찌질함', 데이지의 '뻔뻔함'과 속물근성을 몇 번 성토하는데(데이지를 언급할 때는 욕을 섞기도 했다) 그쳤다. 아마 <고전문학의 읽은 척 매뉴얼>을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읽은 척 생색낼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알았다. 읽은 척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읽었다고 생색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고전은 그저 내가 읽은 만큼 내가 감동받은 만큼 느끼고,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삶에 적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은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이라고 제목을 썼지만, ‘고전문학 제대로 읽기 매뉴얼’로 읽힌다. 혹은 '고전문학 읽은 척하지 말고 제대로 읽기 매뉴얼'이든지. 결국 제목에 속았지만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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