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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21. 2015

모든 예감은 틀린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모든 예감은 틀린다. 인간의 운명 앞에서는 모든 게 그렇지만, 예감은 늘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아니라 <예감은 틀린다>로 정정되어야 한다. 책의 줄거리와도 더 적합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데 누가 의연할 수 있으랴. 모든 이별은 상투적이며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세련되지 못하며 때로는 천박하다. 책의 주인공도 그렇다. 헤어진 애인이 자신의 절친(그것도 늘 열등감을 줬던)과 교제를 시작한다고 하자 짐짓 쿨한 척 허락한다. 하지만 그는 세월이 지나 자기가 그들에게 보낸 또 한 통의 편지를 떠올린다. 그것은 질투이자 분노였으며 저주였다. 그 저주는 그들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다.


"각자의 인간관계에 독처럼 작용하는 고통이 평생 이어지길. 사실 마음 한편으론 너희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고 있어. 이유인즉 내가 시간이 대대손손 이어지며 복수를 가한다는 걸 굳건히 믿는 인간이라 그래."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 멋있게 보내줬다고?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다. 헤어질 때가 됐거나 덜 사랑한 거다. 한없이 '찌질'했던  나도 그랬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 나의 멘트는 이랬다. "언젠가 소설을 쓸 거야. 눈치챘겠지만 소설은 엄청난 비극이야. 주인공은 죽어."


내 능력의 부족에 감사할 일. 소설은 고사하고 매일 잡문도 버거워 씨름하고 있다. 또 시간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 지 그때의 감정은 고사하고 이젠 얼굴마저 흐릿하다(정녕 복수란 영민한 자의 몫이란 말인가!). 


이 책은 질투와 저주, 그리고 운명의 변증법을 다룬 책이다. 이미 숱한 주석들이 나와 있다. 결말을 놓고 아직도 독자들간의 논쟁이 분분하다. 놀라운 사실은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첫 페이지를 열게 된다'는 카피는 과장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책을 덮자마자 허겁지겁 첫 페이지를 열고, 그냥 생각 없이 스쳐지나 갔던 대목들을 다시 찾아 읽었다. 어쩌자고 그 수많은 복선과 암시를 그냥 지나쳤단 말인가. 이 책은 정교하게 짜여진 복선과 암시의 조립품이다. 부디 이 책을 처음 펴든 독자라면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대목이라도 모든 신경을 집중해 읽으시길. 아니면 한번 더 읽을 각오하고 책을 펴시길.


어쩌면 이 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닮았다. 사랑과 질투, 만남과 이별, 기억과 추억, 우연과 필연, 개인과 운명, 그 모든 주제가 녹아있다. 

그리고 등장인물 각자의 시각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접근도 가능하다. 주인공 토니의 1인칭 시점이지만 옛 애인 베로니카, 절친 에이드리언, 그리고 베로니카의 어머니 포드 부인(왜 그녀가 중요한지는 차마 여기서 말할 수 없다)의 시점에서도 충분히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올 법 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기억'이다. 주인공 토니가 그들에게 쏟아부었던 저주의 내용이 아니라, 그런 엄청난 저주를 퍼붓고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되짚어 읽을 때는 이런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저자 줄리언 반스. <사진 출처=다산북스 페이스북>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 않은 법이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분명한 것은 모든 게 혼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남는 것도 혼란뿐이다. 주인공의 저주와 그들의 비극적 운명에는 아무런 개연성도 없다. 사랑도, 이별도, 저주도, 그들의 비극도, 혼란과 혼돈의 결과일 뿐이다. 

삶은 어떤 예감도, 예언도 허락하지 않는 우연과 필연의 혼란일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지독한 반어법이 아니라면, <예감은 틀린다>가 되어야 한다.

내 삶에서도 '혼란이 있었다. 거대한 혼란이.'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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