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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26. 2015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

나는 왜 아들러에 빠졌었나  <미움받을 용기>

부동의 1위였다. <미움받을 용기>는 몇 주째 베스트셀러 목록 최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 않지만 궁금했다. 도대체 아들러, 혹은 아들러의 심리학이 뭐길래 이렇게 난리지?. 결국 호기심이 거부감을 눌렀다.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대화체로 정리한 <미움받을 용기>, 역시 기시미 이치로가 쓴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버텨내는 용기>.  <미움받을 용기>가 출간 3개월 만에 10만 부를 돌파하자 아들러 관련 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본문 이미지는 나름대로 정리한 아들러의 6가지 충고입니다>

겨우 책 세 권 읽고 아들러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처 몰랐지만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구스타프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아무리 쉽다지만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제야 겨우 맛(그것도 아주 조금) 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여기서 아들러를 얘기하는 이유는 뭔지 모를 ‘찝찝함’ 때문이다. 읽는 내내, 읽고 나서 영 찝찝했다. 물론 그것은 불쾌하거나 불편한 찝찝함(그렇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무리 포장해도 출간된 아들러 서적은 자기계발서나 힐링서에 가깝다. 이런 책들을 무조건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들이 인문서로 포장되는 데는 강력히 반대한다. 그런데도 그런 부류의 책들과 분명 다른 지점이 읽힌다. 그렇다고 인문서인가? 심리학이나 철학을 다뤘으니 분명 인문서이겠만, ‘변할 수 있다. 변해야 한다’고 무조건 강요하는 다른 자기계발서와의 유사점도 엿보인다. 그래서 찝찝한 거다. 이건 뭐지?


◆읽을수록 찝찝하다, 그런데 또 읽게 되는 아들러


분명한 것은 싫든좋든 나 또한 아들러에 빠진 ‘또 한 명의 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인정한다. 읽으면서 힘도 조금 얻었고 희망도 봤다. 당장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되진 않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젠장, 다른 자기계발서도 읽을 때는 마찬가지잖아!).


뭐니 뭐니 해도 아들러 관련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쉽다’는 점이다. <미움받을 용기>의 경우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글도 쉽지만 아들러의 주장도 쉽다. 1주일 동안 두 권을 읽었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게으름의 고백에 가깝다. 겨우 두 권? 그럴 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쉽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읽기 쉽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한다.

또 중요한 대목은 열등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러의 심리학은 ‘열등감 극복 프로젝트’에 가깝다. 다른 자기계발서나 힐링서의 경우 읽을 때는 빠져들다 덮고 나면 허무한 이유는 ‘내 얘기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다른 세상 사람들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특히 고전을 읽었더니 부자가 됐더라,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는 정말이지 책을 덮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다. 열등감에 벗어나고자 읽었는데 오히려 힘이 빠진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오히려 자존심을 살려준다. ‘그래,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는 없어’, ‘그래,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하는 거야’ , ‘중요한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야(젠장 이 역시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도 많이 본 대목 아닌가!).’


<미움받을 용기>의 감수를 맡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글이 아들러의 심리학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꿈과 목적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다가 만약 미래의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도 던진다.”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하는 우리가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 '용기'


아들러가 말하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도 마음에 든다.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하나도 결여되어서는 안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자기 수용), 다른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믿어야 하며(타자 신뢰), 스스로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것(타자 공헌)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들러의 심리학 역시 종전의 다른 자기계발서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다”라는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목 아닌가? 차이점은 이것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아들러의 충고는 단순하고 쉽다.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자는 거다.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열광한다(나도 이 대목에 굵은 밑줄을 그었다).

결국 모든 것은 ‘관계의 문제’라는 그의 말도 동감한다. ‘사람의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거기서 열등감이 파생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나와 다른 사람의 과제를 분리’하는 것. 다시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다른 나를 어떻게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미움받을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인정한다. 나도 이런 용기가 부족했다. 이것만 극복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아들러의 ‘찝찝함’은 계속될 것이다. 그 찝찝함이 해소(아니면 포기하든지) 될 때까지 당분간 아들러 읽기도 계속될 것 같다. 100% 실천은 어렵더라도 이 과정에서 내가 미움받을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를 조금이라도 더 가졌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알프레드 아들러는?


1870년 빈 근교의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동생이 디프테리아에 걸려 사망한다. 본인은 다섯 살 무렵에 폐렴으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1910년 정신과 의사가 된다. 한 때 사회주의에 빠져 모임에서 부인을 만난다. 아들러는 프로이트를 만나 정신분석학회 핵심 회원으로 활약했지만 프로이트의 제자는 아니었다 1912년 프로이트 곁을 떠난 그는 1912년 자유정신분석학회를 설립하고 '개인심리학회'로 명칭을 바꿨다. 1953년 5월, 강연을 위해 방문한 스코틀랜드 아바딘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켜 돌연 사망한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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