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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Aug 21. 2015

건투를 빈다

김어준의 인생돌파 매뉴얼, <건투를 빈다> 


책 선물을 좋아한다. 우선 부담이 없다. 1~2만 원 선에서 마음을 표시할 수 있는 선물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오래간다. 선물은 ‘흔적 남기기’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까, 또 흔적 없이 사라지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뭔가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의 일종이라고 믿고 있다. 책 선물, 정작 받을 때는 별로지만 의외로  오래간다.  


읽어서 생각나는 책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서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다. 농담 삼아 ‘세상 사람은 나한테 책 선물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며, 책 선물을 받은 사람 중에서도 <건투를 빈다>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였다.    


대단히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니다. 어떤 학술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책도 아니다. ‘그런 힐링서는 많지 않느냐’고 따지면 딱히 반박할 여지도 없다. 그런데도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이 책을 주로 했다. <건투를 빈다>가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상당 기간 머무를 수 있었던 것에 0.05% 정도는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1. 자신이 원했던 걸 하라   


정면돌파가 필요했을까? 글쎄다. 이 책에 왜 꽂혔는지 이유는 불분명하다. 책 뒤에 써놓은 메모를 보니 2008년 11월에 구입한 것으로 적혀 있다.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연히 그때도 지금처럼 철들지 못했던 것은 분명할 테고,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좌표와 사람 관계의 모호함으로 부유했을 것이다(어쩌면 이런 방황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우듯 이 책을 ‘먹어(읽어) 치운’ 기억만은 선명하다. 그리고 여러 곳에 밑줄을 그었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문득 두려워지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이루려고 발버둥 치는 일들이, 결국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늦었지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건데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2.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  

 

나 또한 그렇지만 유독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 쓰는 후배가 있었다. 뭔가 그럴듯한 말로 충고(꼰대는 이렇게 만들어진다)해주고 싶었지만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정도가 좀 심했다. 그런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자신을 맞추다 보니 주변의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좋지 않은 얘기가 많이 나왔다.    


“결코 친절해지지 말라는 거.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이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자기 전투를 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어다.”    


멋진 놈(죄송). 바로 이 말이라고 무릎을 쳤다. ‘남의 기대를 저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부모형제, 선후배, 동료 등등 우리는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별로 상관도 없는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작 본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을 잃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 나 또한 그랬다. ‘기대를 저버리라’는 총수의 충고는 계속된다.  


“그러나 이제 누구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한 낭비도 없다.”   


3. '그냥' 그 일을 하라


의지박약에 대한 그의 충고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머뭇거릴 때마다, 주저할 때마다 그의 충고를 상기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은 경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결국 이 방법이 최선이다. 달리 어쩔 방법이 없다. 또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고 해도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 번 들어보시라.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다. 실패를 준비하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토 달지 말고, 그 일을 하는 거, 그게 그 일을 가장 제대로 하는 방법이다.”


그의 말처럼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성공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린다. 일종의 사전조치다. ‘내가 못 나서가 아니라 그 일이 그렇게 어렵기 때문에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찔렸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지금도 여전히, 조금, 그렇다). 다만 대단한 일도 아닌데 망설이고 있으면 스스로 주문을 외는 버릇은 생겼다. “그래,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야.”


4. 지킬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관계의 문제, 혹은 여기서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 있는 윤리의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다. “존재를 질식케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오는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렇다. 모든 관계에서 지킬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런데 정작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남들에게 묻고 평가받기를 원한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의 총수, 그런 현실을 무척이나 개탄스러워 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모르더라. 하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남한테 그렇게들 해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신을 움직이는 게 뭔지, 그 대가로 어디까지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 본원적 질문은 건너뛰고, 그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만 끊임없이 묻는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어떤 선택도 완전할 수 없다. 설사 좋은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성공이나 행복이 반드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김어준은 말한다. ‘잘못된 선택’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하지 않는 것’이 불행한 삶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결국 ‘남’이 아니라 ‘자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이 타인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예의라는 사실.


5. 자기의 삶을 장악하라   


“나는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삶의 공포와 마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여긴다. 난 그렇게 믿는다…그렇게 스스로 삶의 문제들에 맞서 나가겠다는 결의, 자신에게 닥치는 세상만사를 주변의 기준이나 눈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관계대로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 그런 게 바로 삶에 대한 장악력이다. 그게 있는 자, 졸라, 섹시하다.”   


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직장에서, 혹은 사회에서 새로운 삶과 도전을 꿈꾸며 기지개를 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누가 나한테 딱 한 권의 책을 추천하라고 하면(별로 그럴 일은 없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하겠다. 

  

다시 밑줄 친 대목들을 읽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대 몇 안 되는 ‘섹시 가이’임에는 분명하다. 졸라, 부럽다.  

<건투를 빈다> 책 표지. 

<다른 밑줄 친 대목들>


"완전연소. 서로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남김없이 주고받아 더 이상 아무런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정서적 충만에 다다른 연애를 말하는 건데…연애의 절정이란 그런 거야. 시시한 연애 열 번보다 그런 연애 한 번이 백만 배 낫다. 그러니 당신이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해. 그래도 그녀가 떠난다? 그럼 인연이 거기까지인 거야. “


"사랑이란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건만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하는 거다.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든가, 감당할 수 없거든 포기하든가.”


“당사자의 입장과 처지에서 출발하지 않은 일방적 해법은 그것이 설혹 선의라고 하더라도, 결국 폭력이 되고 만다는 걸,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는 야욕을 선의로 포장해도 기꺼이 설득되고 만다.”


"아름답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객관화의 임계점이라는 게 있다. 그랬으면 하는 자기가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의 자신을 덤덤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순간 있다. 자신이 멋지지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서 멋질 수는 결코 없는 법이란 걸 깨닫는. 이거 절로 안 온다. 도달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단한 분량의 용기가 지성과 함께 요구된다. “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거다. 사람들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다…선택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을 비용으로 한다…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럼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거다.”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 자체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기심은 존재의 기본 권리다. 문제는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연 어디서 그 한계를 긋느냐 하는 거다. 그 한계선을 이어 붙이면 그게 곧 자신이다.” 


“남을 기쁘게 하는 데 자기 인생을 다 쓰고 만다는 건, 멍청한 걸 넘어 슬픈 일이다. 그러니 거절하는 걸 두려워 마시라. 그 공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처럼 삶의 낭비도 없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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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사진 출처=김어준 펜카페 '김어준과 지식인들' http://cafe.naver.com/kimeo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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