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의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세상은 참 이상하다. 옷 색깔을 놓고도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레스 색깔’ 논란. 어떤 사람에게는 ‘금색 하얀색’, 또 어떤 사람에게는 ‘검은색 파란색’으로 보이는 이 드레스를 두고 그야말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급기야 전문가들까지 왜 색깔이 달라 보이는지 점잖게 설명하고 나섰다. 물론 결론은 없다.
이 정도 이상한 일은 그래도 양호하다. IS가 유럽인 1명을 참수하는 장면에는 온 세상이 분개한다. 그들의 야만성을 목놓아 성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슬람 정부군 100명을 한꺼번에 처형했다는 소식에는 무덤덤하다. 심지어 300명에 가까운 꽃다운 아이들이, 그것도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보는 앞에서 수장된 일에는 “이제 그만 좀 하자”고 짜증까지 낸다.
이상한 일은 인간관계나 회사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평소 소통을 그렇게 강조하던 사장이나 직장 상사에게 정작 문제점을 얘기하면 화를 낸다.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까지 뺏어가며 그렇게 소통하자고 귀찮게 하더니, 제대로 된 소통을 해보자고 하니 ‘건방지다’는 말만 돌아온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중에야 “아 저 사람이 소통하자는 것은 자기 말만 들으라는 얘기였구나’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온통 ‘이상한 일’로 가득한 ‘이상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지 않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우리가 한 번도 배우지 못 했던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면에서 요즘 가장 바빠진 분야는 ‘뇌과학’이다. 이 세상을 내 힘으로 바꾸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해석하면서는 살아야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뇌과학으로 바라본 ‘이상한 세상’
뇌과학이 바빠지면 당연히 뇌과학자들도 바빠진다. 김대식 KAIST 교수 역시 최근 가장 바쁜 뇌과학자 중의 한 명이다. 온라인 오프라인, 책과 방송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은 전작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좀 더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시키되 <김대식의 빅퀘스천>보다는 훨씬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쓴 책이다.
김 교수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은 뇌과학자가 바라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같은 질문들에 대한 뇌과학적 고민이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냥 이상한 나라에 사는 이상한 뇌과학자의 이상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이상한 이야기가 원래 재미있는 법.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전문적인 뇌과학 용어는(많이 언급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도 된다. 뇌과학적인 분석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철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넘나드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흥미롭다. 그렇게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놀란다. 세상과 나의 관계는? 죽음이란? 행복이란? 등의 철학적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드레스 색깔’ 논란에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을 발견한다. 일단 이 논란을 바라보기에 앞서 전제할 것이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 아니라는 사실. 김 교수는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에는 언제나 뇌의 수많은 과거 경험과 미래 희망, 현재 가설이 포함되어 있다. 즉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인풋이 아니라 뇌의 해석을 거친 아웃풋”이라고 말한다.
결국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드레스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신기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르게 보는 세상을 같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신기할 뿐”이다. 다른 사회적 이슈, 현상도 마찬가지다. 동성애, 인종, 사상, 종교 등의 문제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도 이 관점에서 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제대로 소통하려면 조금씩 멀어져야 한다
소통의 문제도 뇌과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원인과 해법이 명료하다.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뇌도 공감에 욕망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정보 교환을 위한 소통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 할 뿐이다. 그건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런 공감의 본능이 관심과 배려로 나타나 각박한 이 세상을 그나마 따뜻하게 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인간의 공감 본능이 조직, 기업, 정부 차원으로 확대될 때 발생한다. 결국 소통하자는 사장이나 직장 상사의 요구(강요)는 주관적이며 형식적인 공감이다. 배려와 관심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관심과 참견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들과 딸, 직원, 부하, 제자를 객관적이고 독립된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선 조금씩 멀어져야 한다. 그것이 서로 진정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길이다.
인간과 우주, 삶과 죽음의 우주의 문제로 시야를 넓혀 보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동안 대략 지구라는 별에 1000억 명의 사람이 발을 디뎠지만 1000억 명 모두 예외 없이 죽었다.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할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들은 존재하긴 했던 걸까? 저자에 따르면 ‘나’는 죽지만 나의 ‘유전자’는 살아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유전자가 잠시 머물다가는 일시적인 정거장에 불과하다.
이런 인간의 역사에 행복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수백만 명의 프랑스와 러시아, 독일, 영국의 청년들은 전쟁터로 향했다. 그들은 웃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꽃을 뿌리며 환호했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확신했으며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전장은 지옥이었다. 팔짱을 낀 채 줄지어 적진으로 행진했고 1916년 치러진 ‘솜 전투’에서만 무려 100만 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 가난, 학살, 쓰나미, 세월호, 고문, 테러, 성폭행, 자식의 죽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이다. 뇌가 예측하지 못한 경험들이다. 이러 경험은 끝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트라우마는 시간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뇌의 예측과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만큼 천천히 다시 뇌의 예측과 현실이 일치하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적 마인드(?)’
이처럼 죽음과 고통스러운 역사와 경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결국 세상은 항상 ‘갑’이고 개인은 세상이라는 갑에 맞춰 살아야 하는 ‘을’일 뿐‘인데 죽음을 늦추고 고통스러운 역사와 경험보다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완전한 행복은(그런 게 존재하지도 않지만) 불가능하지만 저자의 말에서 하나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미래의 내가 과거를 떠올릴 때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면 집중과 몰입을 하자.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이 평생 나에게 괴로운 기억과 아픔을 줄 것 같다면 최대한 집중을 하지 말자. 집중한 순간은 기억에서 늘어나지만, 집중하지 않은 순간의 기억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아무리 세상이 갑이고 인간은 을이라지만, 집중과 선택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기억에 남는 우리의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
끝으로 저자는 우리나라에 지금 절실한 것은 ‘제국적 마인드’라고 말한다. 약한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가 아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나와 나의 감정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역사, 종교, 정치, 경제, 사회, 과학적인 변수들을 ‘동시에 고려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이 결국 이 책의 목표이기도 하다.
뇌과학, 혹은 뇌과학자가 바빠지는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적 시스템으로, 상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물론 뇌과학을 통한 분석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실천으로 옮겨진다면 이 말은 기우에 불과하다. 이 점만 고려한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뇌과학은 물론 인문교양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유쾌한 여행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독일 화가 에드가 엔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아버지가 바로 에드가 엔데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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