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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Sep 21. 2015

삶을 바꾼 글쓰기의 힘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서민 교수의 <서민적 글쓰기>


비아그라가 한의원의 위기를 불러오고 한의학과 커트라인을 낮췄다는 분석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의원 수입의 절대적인 비중을 ‘보약’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아그라(그리고 셀 수 없이 많아진 유사한 알약들)가 개발되면서 한의원을 찾는 발걸음이 줄었다. 한 달 이상 먹어야 효과가 나타나는 보약과 달리 한 알만 톡 털어 넣으면 그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데 누가 한의원을 찾겠냐는 것이다. 매우 지엽적인 분석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글쓰기에도 비아그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알만 먹어도 글쓰기의 힘이 샘솟고, 내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그 순간(?)만이라도 자유자재로 글로 옮길 수 있는 그런 알약 말이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서민 교수를 흉내 내 웃자고 하는 말도 아니다. 정말 그런 ‘힘’을 간절히 원할 때가 있다.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간단한 독후감을 쓰는 쓰는 지금도 그렇다. 정해진 기간 동안 글쓰기의 결과물을 내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보약 말고 비아그라!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4개월 만의 신작, 비아그라를 먹은 게 분명하다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가 최근 <서민적 글쓰기>를 펴냈다. 전작 <집 나간 책>을 출간한 지 4개월 만이다. 아무리 써놓은 글이 많아도 이건 놀라운 일이다. 비아그라를 먹지 않았나 매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매우 실망스럽게도) 그가 비아그라를 먹었다거나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먹는 신비의 보약 같은 걸 갖고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 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10년 동안에 걸친 ‘지옥훈련’의 결과라고 하니 나처럼 순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글쓰기의 묘약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덮는 것이 좋겠다. 

그는 의대 교수다. <사진=단국대 블로그>.

다만 그의 책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비밀스럽게(정말 나만 알고 싶었지만) 얘기해주고 싶다. 전작에는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라는 부제가, 이번 책에는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나도 한 번 써볼까? 제목만 봐도 일단 불끈 의욕이 솟는다. 이어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한 번 써보자’, ‘나도 쓸 수 있겠는걸?’ 자꾸 자신감을 세운다. 효과도 빠르고 꽤 오래 지속된다.

  

글쓰기로 인생과 삶이 바뀐 대표적인 인물이 서민 교수다. 그는 글을 잘 쓰지 못 했다. 그의 말대로 “글쓰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서른이 넘겨서야 비로소 실천으로 옮긴 지각생이다.” 블로그로 시작한 그의 글쓰기는 이제 신문 칼럼과 서평, 글쓰기 노하우 책,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평정했다. 그의 칼럼은 지금도 인터넷과 SNS를 타고 무한 공유 중이다. 경향신문에 실렸던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글은 칼럼의 백미다. 가슴이 답답하면 지금도 이 글을 찾아 읽는다.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나오고 가슴이 뻥 뚫린다. 글 덕분에 그 외모(?)로 TV까지 고정 출연했다. 글쓰기가 그의 삶을 바꾼 것이다. 


“글을 잘 쓰지 못 했다. 글쓰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서른이 넘겨서야 비로소 실천으로 옮긴 지각생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서른 이후부터 10년 넘게 하루 두 편씩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책도 남부럽지 않게 많이 읽었다. 그리고 소중한 결실을 하나 맺었다. 2009년부터 쓰기 시작한 <경향신문> 칼럼이 다행히도 대중에게 호평을 바꾼 것이다. 그 인정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글쓰기는 아주 조금씩 좋아졌다. 더불어 어린 시절 그늘진 생각들은 글쓰기의 좋은 소재로 바뀌어갔다. 글쓰기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p27 

이번 책에는 그의 다양한 포즈가 실려 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진=출판사 블로그>

◇글쟁이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레가 되어 있었고, 누구는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었다지만 서민 교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모든 글쟁이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첫 책인 <소설 마태우스>는 본인조차 가장 창피한 책이 되었고, 처음 칼럼니스트로 활약한 <한겨레신문>에서는 1년 만에 잘린다(본인은 자기가 그만 쓰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극구 말하지만 그만 쓰겠다고 했을 때 편집자가 반가워하더라는 그의 전언에 따르면 사실상 잘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서른에 시작해서 마흔에 완성한 서민 교수의 좌충우돌 글쓰기 분투기”라는 홍보 문구는 빈말이 아니다.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우선 노트와 연필을 끼고 살았다. 그는 폴 오스터의 일화를 소개하며 글을 잘 쓰기 위해 노트와 필기도구를 갖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세월은 나에게 이것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었다.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폴 오스터의 <왜 쓰는가> 중에서).”


그리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드림위즈로 시작해 알라딘 서재에 둥지를 틀었고 하루 두세 편씩 글을 썼다. 처음에는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나 첫 댓글이 실렸고 5개월 정도 지나 서재 포인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의 표현처럼 드디어 “알라딘을 정복한 것”이다. 그 비결은 이렇다(이 글을 읽는 중에 블로거가 많을 테니 이 대목은 꼭 읽어주시길).  

서민 교수는 "글쓰기로 삶이 바뀌었다"고 말핬다. <사진=책 표지에서>


<사진=책 본문 중에서>


첫째, 하루에 두 편 이상 글쓰기. “완성도 높은 글이 아닐지라도 꾸준히 올리다 보니 블로그가 풍성해 보였다. 읽을거리가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둘째, 쉬운 글쓰기. “예나 지금이나 난 어려운 글을 쓰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글은 아예 쓰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인데, 심형래 식으로 표현하자면 ‘못 쓰니까 안 쓰는 거지 안 써서 못 쓰는 게 아니다.” 셋째, 유머러스하게 쓰기. “책벌레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그분들의 글은 논리 정연하고 날카롭긴 해도, 유머가 부족하다. 반면 글에 유머를 넣는 훈련을 줄기차게 해온 나는 어느 정도 유머러스한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그의 글은 쉽다. 칼럼에도 어려운 용어나 단어가 별로 없다. 책도 그렇다. 이게 필자에 대한 칭찬일지 욕일지 모르겠으나 <집 나간 책>은 이틀(총 읽은 시간으로 치면 9시간 정도), <서민적 글쓰기>는 반나절(4시간 정도)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나보다 더 책 읽기 고수들이 많으니 대부분 3~4시간 이면 밑줄까지 치면서도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서민에게 글쓰기란? 나에게 글쓰기란?

그가 이렇게 쉬운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중요한 대목이니 스포일러라는 욕을 먹더라도 또 비결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해 못하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 말자. 둘째, 문장은 짧을수록 좋다. 셋째, 적절한 비유를 활용하자. 넷째, 대화체를 이용하자. 다섯째,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를 쓰자. 이렇게 쉽게 비결을 말했지만 물론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다. 결국 무한 반복과 연습이 뒤따라야 한다. 한화 야구식 용어를 쓰자면 특타와 펑고를 매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재기차기에 능했다. 한 번에 2500개가 넘기도 했다. <출처=출판사 블로그>

결론은 이렇다. “쉽게 쓰자.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두렵겠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 방면의 진정한 고수라는 것을.”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글쓰기란 솔직함이다. 간결함이다. 꾸준함이다. 비유하기다. 돌려까기다. 웃기기다. 정확함이다. 삐딱함이다. 그리고 지옥훈련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에게 글쓰기란? 딱히 폼나게 답할 말이 없다면 서민 교수의 이 말을 무단 사용해도 될 것 같다.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일면식도 없지만 ‘나에게 글쓰기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무단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저작료를 요구할 만큼 속 좁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보장할 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글쓰기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물론 그런 수준까지 가려면 멀었다. 흉내라도 비슷하게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서민적 글쓰기> 책 표지. 

처음에는 서민 교수를 보고 웃었다(정말 못생겼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그 비웃음은 질투로 바뀌었다. 어찌 됐든 의대 교수이고, 여기 저기서 본인이 자랑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를 아내로” 맞았으며, 무엇보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맛깔난 글을 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느새 그의 팬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게 모두 그의 글쓰기 때문이다. 과연 글쓰기는 그의 삶을 바꾼 것이 분명하다. 

  

글쓰기에서 비아그라는 없다. 보약도 없다.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서민 교수는 10년의 지옥훈련을 거친 끝에 지금의 자리에 왔다. 그는 “나에게 왜 쓰냐고 묻는다면 ‘너무 못생겨서’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글은 “누군가에게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자,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다만 이런 글쓰기의 욕망을 시도 때도 없이 일깨우고 ‘나도 써볼까?’, ‘나도 쓸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서민 교수의 글은 비아그라를 닮았다. 잠자리에서 비아그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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