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내가 산 다섯 권의 책]
조금 무리했다. 무엇보다 가을이라는 계절적 이유가 크다. 책을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더 사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하고도 이런 무리수를 뒀다. 그래도 어쩌랴.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선선해지고 그렇게 파랗던 나무들이 조금씩 파란색을 벗기 시작하고 마음 한구석 원인모를 신산스러움이 밀려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예약판매 중인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배송 중이라는 메일이 먼저 도착했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와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지난주 제주도 출장길에 잠시 들렀던 제주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에서 구입했다.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책이 4권이나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소심한 책방’을 다녀온 후 더 소심해진 걸까? 아직도 현찰이 아니라 카드로 산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책방 옆 공방에서 카드가 안돼 마음에 들었던 찻잔(술잔이었던가?)을 결국 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작은 동네를 갈 일 있으면 앞으로는 약간의 현찰을 남겨 둘 일이다.
이번에 산 책은 에세이가 많다. 가을이니까.
◇김훈 <라면을 끓이며>
김훈의 산문집을 읽은 지 꽤 오래다. 물론 그의 소설을 읽은 지도 오래다(소설보다는 그의 산문을 더 좋아한다). 예약판매로 주문하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훈의 글을 읽으면 우선 좌절감이 밀려온다. 글은 역시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빼놓지 않고 읽는 심사는 일종의 자학이다. 추석 전에 도착해야 한다. 연휴 때 읽을 책으로 오래전에 점 찍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의 산문집도 오랜만이다. 물론 <보통의 존재> 이후 첫 산문집이다. 그는 신비한 사람이다. 이석원이라는 인물도 신비롭지만 <보통의 존재>라는 책이 그토록 사랑받는 것도 신비롭다. 몇 권이 팔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서점을 가도 그의 책은 진열대 좋은 자리에 늘 자리를 잡고 있다. 노란색책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책이 도착한 후 앞 몇 페이지를 보니 어떤 여인과 만났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무엇일까? 대강 짐작은 가지만 궁금하다.
◇서민 <서민적 글쓰기>
책이 도착하고 맞는 첫 주말, 거의 반나절 만에 다 읽어 버렸다. 그의 글쓰기 모토는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책은 쉽고, 재미있다. 가볍게 느껴질 정도지만 그의 말처럼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쉽게 쓰는 것이 더 어렵다. 폼 잡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을 너무 쉽게, 항상 실천하는 그의 내공이 놀랍다.
◇김범준 <세상 물정의 물리학>
일 때문에 산 책이다(한 달에 최소한 한 권은 과학 분야 책을 사야 한다). ‘일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과학 책은 또 다른 책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에세이나 소설, 인문서와는 분명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쩌면 지적 허영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과학 책 읽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읽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과학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즐겁다. <세상 물정의 물리학>을 읽으면 세상 물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잘 안 되겠지만.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이후 그의 책은 두 번째다. 그의 필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읽을 때마다 놀란다. 김훈이나 김영민을 닮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색채가 묻어난다. 왜 느낌의 공동체일까? 눈치챌 수 있는 한 구절을 여기에 또 옮긴다. “아마도 그것은(사랑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중략) 그렇게 느낌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출간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공지영의 책을 빼놓지 않고 사서 읽으면서도 이 책을 빠뜨렸던 것은 ‘한겨레 21’에 연재할 당시부터 이 글을 빼놓지 않고 읽었기 때문이다. 연재할 때 읽고, 그것이 책으로 나오면 또 사서 읽는 것이야말로 덕후의 올바른 자세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이번에는 조금 망설여졌다(공지영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이라면 참 슬플 것 같다). <소심한 책방>에서 나의 소심함을 책망하며 산 책이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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