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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Oct 04. 2015

그의 일기를 훔쳐 보다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성인이 돼서 남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보려고 해서 본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방이 있었고 옷이 걸려 있었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 이미 그 사람의 자리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았고, 다이어리가 펼쳐져 있었으며, 쓰다 만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읽은 게 아니라 눈에 들어왔다). 


잠시 뒤 그 사람이 들어왔고 뭔가 들킨 사람처럼 일기장을 서둘러 가방에 넣었다. 분위기가 어색했다. 왠지 의심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단코 다른 페이지는 열어보지도 않았고, 쓰다 만 일기도 사실 일기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 내용이 없었다(이렇게 말하고 나니 더 이상하다. 아무 내용이 없었다는 얘기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얘기들이었다는 얘기다. 정말 아무 내용도 없었다). 



이런 일 흔히 있지 않나? 내가 먼저 “다이어리를 보지 않았다”고 얘기해야 하나? 그렇게 숨기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아무리 급한 볼일이 생겨도 덮어놓고 나갔어야 가지 않나? 오히려 내가 따지고 싶었다. 그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다 보니 말이 줄었고 표정이 굳었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할 말이 더 많았겠지만 차마 “너 내가 쓴 거 봤지?”라고 물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결심했다. 절대 남의 일기장은 읽어보라고 눈앞에 들이대도 읽지 말아야겠다고. 물론 그 후로는 그럴 기회도 없었지만. 


◇돈 주고 남의 일기를 훔쳐 보다

그런데 대놓고 자기의 일기장을 읽어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책으로 만들어 돈까지 받는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나? 막상 읽어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일,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다. 누가 볼까 꼭꼭 숨겨놔도 시원치 않을 일기를 책으로 펴내고, 그 책을 돈 주고 사서 읽어보라고 하는 사람의 심리는 도대체 뭘까?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읽는 내내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산문집’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일기장에 가깝다. 아니 그냥 일기장이다(실제로 이석원은 일기처럼 거의 매일 글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한 여자에 대한 얘기가 거의 전부다. 그 여자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귀었으며, 어떻게 헤어졌는지를 쓴 얘기다. 정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언니네 이발관'. 가운데가 이석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다. 남의 일기장 훔쳐보는 기분이 그런 걸까? 이 사람 일기, 은근히 끌린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부터 그렇더니 심지어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도 자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책을 다 덮고서야 깨달았다. 이게 작가와 일반 사람의 차이구나.  

일기를 쓰는 사람이 많다. 일기처럼 매일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 이석원보다 더 많은 사연과 더 애타는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사람도 적지 않다. 나도, 뭐 굳이 추억하자면 잊지 못할 사랑 하나쯤은 있다. 지금도 그 사람만,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지는 그런 사랑 말이다. 하지만 누구는 그것을 책으로 써서, 나 같은 독자가 밑줄 치며 읽게 만든다. 결국은 남의 일기에 밑줄을 그은 것인데 따지고 보면 변태도 이런 변태가 없다. 


어쩌면 그게 이석원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세 권의 책(한 권의 소설과 두 권의 산문집)을 냈을 뿐인데도 그는 무시 못할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첫 책 <보통의 존재>가 나온 지 벌써 몇 년인데 아직도 서점에 가면 이 노란색 표지 책은 늘 눈에 띄는 진열장에 올라 있다. 대형서점은 물론이고 제주도의 몇 평짜리 동네 책방에도 이 책은 꼭 있다. 


주말에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은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니네 이발관’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글을 쓸 때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가 아니라 글 쓰는 작가 이석원으로 쓴 것처럼,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언니네 이발관의 리드 싱어가 아니라 작가 이석원으로 읽는다. 일기 같은 글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이석원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남의 일기장 훔쳐보며 웃었다 울었다 가슴 졸였다 하는 ‘변태’가 된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이석원의 힘이다. 


◇당신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무엇인가요?


다시 말하지만 책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된다. ‘이석원이 한 여자(정신과 의사)를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다 헤어진다(이 부분은 좀 애매하다. 직접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석원은 그 간단한, 아니 간단하다 못해 진부하고, 진부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한 그 ‘뻔한’ 스토리를 읽는 내내 그것이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웃었다 울었다 가슴 졸이게 한다. 그는 청상 글쟁인 것이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소설가란, 혹은 작가란, 누구나 겪는 일을 마치 세상에서 자기만 겪은 일처럼, 일상다반사를 마치 이 세상이 열리고 처음 있었던 일처럼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작가는 ‘타고난 구라쟁이’라고. 동감한다.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이석원이 타고난 뮤지션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임에는 분명하다. 


이석원. <사진 출처=채널예스>

누구나 일기를 쓴다. 하지만 아무나 이석원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新人),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김연수나 이석원처럼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만 그런 일이 벌어지며, 우리는 그들을 작가라고 부른다.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글이란 세상에 없는 일을 지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일을 가장 솔직하게 쓴 내면의 일기라는 사실이다. 이석원은 작가가 되기 오래전, 하이텔 시절부터 꾸준히 어딘가에 무엇인가 썼던 사람이다. 이런 그를 알아본 사람은 황경신이라고. 책을 내자고 권유했고, 용기를 줬으며.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보통의 존재>였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쓴다.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아주 잘 쓴 글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가 아주 솔직히 쓴 글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일기니까). 사랑의 기억이 너무 오래돼 ‘사랑’이란 단어가 화석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에게는 이 책을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사랑의 상처가 아직 덜 아문 사람(이런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에게는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 또 이런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기적처럼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뭐냐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 비슷하지 않겠나. 참고로 이석원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뭐해요?"란다. 묻고 싶다. 당신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무엇이었느냐고.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내가 밑줄 친 문장


앤디 워홀이 그랬던가요.. 기대하지 않는 순간 얻게 된다고. p45


늘 그렇듯, 답이 없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답이겠지요. p51


“사실이지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p125


그러니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고

가르쳐 줄 수도 없으며

가르치려 든다면 오히려 웃길 듯한

하여

결국엔 스스로 터득할 수밖엔 없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 보는 법.

자기 자신과 가능한 불화 없이 함께 잘 살아가는 법. p195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의 질은

100% 내가 결정한 것

누구 탓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좀 더 열심히 살아 보든가. p209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에게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편해진 관계의 엄연한 공범이다. p216


잘 지내, 너랑 영화 볼 때가 제일 재미있었어. p226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p237


쉽게 말해, 바로 이런 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상처에 집중하는 사람 중

나는 어느 쪽일까. p282


아, 나를 네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 일이

바로 너를 갖는 길이라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p300


“만약 네가 지금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면 그 여자는 우주 밖으로 달아나. 명심해. 널 안 좋아해서가 아냐. 사람 마음이 그래. (…) “너 자신에게 집중해.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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