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책] Axt와 스켑틱, 그리고 유홍준과 정운영
무작정 책을 사지 말고 뭔가 의미(?) 있게 사 보자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의미 있게 책을 산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게 아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아주 불순한 생각으로 창간호를 모아보기로 한 것이다.
의도가 좋지 않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성실하지도 못 했다. 창간호 사보겠다고 헌 책방 몇 곳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헌 책방은 갈수록 줄고, 그나마 남은 몇 곳도 대부분의 품목이 참고서나 교과서 위주였다. 게다가 내가 창간호를 산 잡지나 계간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폐간하기 일쑤였다. <리뷰>나 <이다>, <이프>등이 대표적이다. 1997년 창간했다가 2006년 폐간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최근 팟캐스트로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만에 창간호에 눈길을 돌렸다. 이제 그런 ‘불순한’ 의도는 없다. 소설가들을 위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잡지를 표방하는 <악스트(Axt)>와 과학전문 잡지로는 이례적으로 창간호부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스켑틱(SKEPTIC)> 창간호를 주문했다. 문득 창간호를 다시 모아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악스트(Axt)
소설(가) 전문잡지다. 격월로 나오는데 창간호에 이어 두 번째 9·10월 호가 나왔다. 악스트는 독일어로 '도끼'라는 뜻. 카프카의 문장에서 따왔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인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소설 시장의 위기와 침체가 어느덧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지금, 소설 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깨고자” 만들어었단다. 창간호의 커버스토리는 천명관, 2호는 박민규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착한 가격이다. 2,900원. 오랫동안 꽁꽁 얼어있는 나의 ‘‘소설 읽기의 즐거움(국내 소설을 읽은 지가 언제더라?)’을 이 책이 깨 줬으면 좋겠다.
◇스켑틱(SKEPTIC)
스켑틱(SKEPTIC)은 ‘회의적인’이라는 뜻이란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의 저자 마이클 셔머가 1992년 창간한 교양과학잡지. 국내 대형 출판사가 론칭하면서 창간호부터 꽤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세 권이 나왔다. <총, 균, 쇠>의 저나 제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편집위원이나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니 콘텐츠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셈이다. 그것은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가격. 1만 5000원이다. 출판사에서는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억울해하겠지만, 하여간 마음에 안 든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솔직히 당장 읽으려고 산 것은 아니다. 언제 읽을지도 모른다. 정말 3권까지는 다음 책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가,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소개된 곳 일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더라? 일본 편으로 넘어가면서부터였던 것 같은데(일본 얘기를 너무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조금 시들해졌다. 나의 관심이 여전하고 안 하고, 읽고 안 읽고를 떠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또 얼마나 남았을까? 북한은? 일본도 했으니 만주는?
◇정운영의 <시선>
“무엇보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의 심장은 왼쪽에서 뛰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 몇 편을 끄적거리다 정운영에 대해 쓰며 이렇게 글을 맺은 적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사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유고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이후 거의 10년 만에 나온 그의 책이다.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새 글이 실렸을 리 없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그동안 나왔던 글들을 다시 모아서 낸 책일 텐데 그래도 싫지 않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드디어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부지런히 읽고 있다. 예약판매 이벤트 선물인 라면 냄비와 신라면 한 봉지가 함께 도착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냄비에 꼭 라면을 끓여먹으리라 마음먹고 있다. 지난번 <내가 산 책>에서 이미 썼으니 여기서는 앞 부분 한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대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의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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