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말하는 '고독' 생존법
호모 헌드레드(100세)' 시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게 됐다. 개인은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바로 '고독'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외로움과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평가절하된 글쟁이가 적지 않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대표적이다. 그의 이미지 때문이다. 연상되는 이미지는 웃기다, 가볍다, 깊이가 없다 등이다. 선입견이다. 본인의 책임도 적지 않다. 스스로 고백하듯 외모에서부터 '가벼움'이 풍긴다. 방송인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그의 튀는 캐릭터도 이런 선입견에 한몫했다.
이런 선입견을 걷어내고 보면 그처럼 초지일관 하나의 철학을 펼치는 사람도 드물다. 주장은 단순하다. 잘 쉬고 잘 놀아야 성공한다는 것. 일과 삶의 균형이다. 또 무슨 일을 하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재미있지도 않은 일을 붙잡고 있느라 다들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고생한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국내에서 '휴(休) 테크'란 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데 이건 믿거나 말거나다.
이런 철학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이니 글도 당연히 쉽다. 잘 쉬고 잘 놀고 재밌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폼 잡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괜히 폼 잡는 사람, 권위에 찌든 사람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글도 그렇다. 아는 척, 뭔가 심오한 철학을 갖고 있는 척 어렵게 쓰는 거, 그게 다 폼 잡으려고 그러는 거란다. 그러니 본인은 쉽게 쓸 수밖에. 그의 글이 평가절하된 또 따른 이유다.
◇교수에서 전문대생으로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에디톨로지>에 이어 신작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다섯 번째 접한 그의 책이다. 그의 직함은 '교수'였다. 나름 실력도 인정받고 인기도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돌연 그는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 유학길을 택한다. 다시 공부하기 위해서다.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대학교수를 거쳐 화가가 된 것이다.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거쳐 일본 단기대학부 수료. 전문대학 졸업이 최종 학력이 됐다.
나이 50에 그가 시작한 공부는 다름 아닌 그림이다. 원래는 만화를 배우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는데, 만화 말고 그림(일본화)을 배워보라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한다. 재기 발랄하고 아이디어 번득이는 그의 그림을(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림이 매우 그럴듯하다)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김정운 특유의 유머도 여전하다.
그림 공부를 시작한 연유는 이렇다. 만 50세가 되던 새해 첫날, '나는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선언한다. 지난 50년은 어쩔 수 없이 밀려 살았지만, 나머지 50년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단다. 하고 싶은 일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쓰기 싫은 원고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 더. '하고 싶지 않은 강의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대학 교수직을 그만둔다.
◇"고독 저항'의 시대, 더 외로워질 것
혼자 일본 유학길에 오른 작가는 외로움과 맞서 싸우며 외로움의 본질과 외로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 책을 썼다. 그가 터득한 진리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외로운 시간을 피하려고 한다.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적을 만든다.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모임에 나가고, 저녁마다 술자리를 만들고,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고, 자신의 글에 얼마나 많은 '좋아요'가 눌렸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불행하게도 이럴수록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더 외로워지는 것뿐이다. 외로움의 역설이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것입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게 된 각 개인은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바로 고독이다. 인류 최초로 100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생존법은 다름 아닌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그리고 조금 더 그리워하기로 하자
지난해 말 이 책을 읽었다. "그림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저자가 부러웠다. 고립을 통해 몰입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을 느끼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나도 그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 '관계'에 집착했다. 관계가 단절되거나 지속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저자는 거꾸로 말한다. 오히려 어설픈 '관계'를 통해 외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그때는 몰랐다.
1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다. 2016년에도 정신없이 달리게 될 것이다. 바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다(지금 내가 또 그렇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외로움과 고독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한다(일하는 척한다). 그러면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올해 조금 더 외로워지기로 하자. 그리고 조금 더 그리워하기로 하자.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맙고 감사한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기는 거다."
by 책방아저씨 https://facebook.com/booksbo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