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막무가내' 책 출간기
소박한 꿈이 있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 책을 읽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마치 옷과 같다. 이 책은 이 사람에게 어울리고, 그 책은 그 사람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하는 사람이 가장 반갑다.
거창한 꿈도 있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쓴 책’을 선물하는 일이다. 한때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의 책무라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하며 그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 꿈을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나의 글솜씨 때문이다. 누가 볼까 두려워해도 시원찮은 글인데 선물을 한다고? 언감생심이다.
허황된 꿈까지 있었다. 아예 ‘그 사람만을 위한 책’을 써서 선물하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을 위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쓴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그 사람만을 위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쓴다(언제가 술자리에서 지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쓰기도 어려울 텐데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쓸 시간이 있겠느냐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글은 접기로 했다). 그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 한 권의 책.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진 일이다. 이 꿈 역시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여전히 보류 중이다.
왜 과학 관련 책이냐고 누가 물었다. 달리 할 말이 없다. 과학 분야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했으면서 무슨 음악이나 미술 관련 책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소 실망스럽더라도 넉넉하게 이해해주시길. 일부 고전으로 불리는 책도 있지만 소개한 과학 책 대부분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유명하다고 유용한 게 아니듯 덜 유명하다고 덜 유용한 건 아니라고 믿는다. 책은 특히 그렇다.
책 언저리에 언급했듯 잘 쓴 과학책은 인문서에 가깝다. 유명한 이론가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학과 인문, 과학과 예술은 어느 지점에선가 반드시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나는 지점은 아마도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과학 관련 책이 아니라 인문서라는 생각으로 읽고 썼다.
영화를 좋아한다. SF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이 책을 처음 정리하기 시작할 무렵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개봉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당분간 <그래비티> 이상을 만나기 어렵다고 봤는데 꼭 1년 만에 <인터스텔라>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 <마션>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학책을 좀 더 열심히 읽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 책에서 소개된 <빛의 물리학>, <태양계 연대기> 정도라도 꼼꼼히 읽었다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SF 영화를 조금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라도 과학책을 열심히 볼 생각이다. 이유가 고작 영화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냐고? 그거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한없이 도망치고 한없이 저항한다. 아니 도망치기 위해서, 저항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것. 만약에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즐겁지 않았다면, 당신은 제대로 도망가지도, 저항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건 당신이 변변찮다는 얘기다. 그러니 책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악착같이 즐겁게 읽을 필요가 있다(이현우 <로쟈의 인문학 서재> 중에서).”
나는 책 읽기에 관한 한 로쟈 이현우의 이 말을 맹신한다.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세상을 보고 분석하기 위해 과학책을 읽겠지만 나는 영화 한 편 더 즐겁게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렵고 고리타분하며 딱딱한 과학 책조차 ‘무조건, 절대적으로, 악착같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니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읽고 싶어 지더라.
지난해 여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밑줄을 그으며 <코스모스>를 읽고 <총, 균, 쇠>를 읽었다.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보겠노라고 창업을 했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던 때였다. 수입은 없고, 사람도 없던 시간이었다. 앞날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책, 그것도 과학 책이었다. 도망치듯 책 속으로 숨어들었지만, 그 도피는 유쾌하고 행복했다. 심심하고 외로울 때 주로 소설을 읽었지만, 과학책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라는 제목은 이런 경험의 소산이다.
1장부터 3장까지는 30개의 과학 서평을 실었다. 일부는 과학 전문 매체에 다니던 시절 썼던 글을 새로 다듬었고, 일부는 올해부터 월간지에 기고하기 시작한 글을 다시 정리했다. 그동안 브런치에 올리고 업그레이드했던 글들이다. 4장에 실린 22 꼭지의 과학 단상은 월간지 <잇츠 대전>에 연재한 글이다.
눈치챘겠지만, 이 글은 분명 자랑질이다. 노골적으로 표현은 못했지만 책 좀 한 권 사 달라고 보채는 글이다. 쑥스럽지만 용기를 냈다(못마땅해도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핑계는 있다. 나도 이렇게 책을 냈으니 모두 용기를 갖자고. 그렇다. 나도 낼 정도면 누구나 책을 출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주변에서 가끔 묻는다. 왜 책을 냈느냐고.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냥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때로는 막무가내 정신이 필요한 것 같다. 답답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좌충우돌 독서기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는 이렇게 빛을 보게 됐다.
by 책방아저씨 https://facebook.com/booksbo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