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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Apr 30. 2023

나는 다시 가고 싶은데요,

사회 초년생 패션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아, 내 선택의 대책 없고도 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도박의 베팅에 표현될 법한 일들을 종종 맞닥뜨린다. 물론 나는 아직 새파랗게 젊지만 (사실은) 조금 낡은 상태인데, 나의 이 짧은 생 안에서도 그런 일들은 꽤나 자주 벌어졌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자 하면 수시 5개를 국어국문과로 쓰고, 후회하는 건 질색이라 아쉬움에 몰래 써본 패션디자인과 1개만 덜컥 붙어버린다던가 하는 일이다. 그건 바로 수능을 마친 고3의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와 운명이구나, 순진한 고3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 패션디자이너라는 길에 온 나는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거진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내내 과제의 지옥이었고, 대학원생 1년 과정에서는 난생처음 코피를 흘렸고, 인턴 하는 3개월 내내 막노동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던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나는 옷이 좋았다. 그냥 예쁘고 재밌었다. 다른 것들은 잘 모르겠다. 만들고 싶었던 건 그냥 옷 아니면 그림, 때로는 지금처럼 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가볍지만 끈적한 마음을 가지고 이 업계에 뛰어든 것은 참으로 경기도 오산, 바스러지는 쿠쿠다스, 퐁신거리는 카스텔라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아 고생할 길이 훤한 것도 모르고. 일복이 이렇게 터질 줄도 모르고, 아이고 나 자신아!


 "엄마말을 들을 것 그랬어. 개고생이라고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현생에 치여 오랜만에 만난 같은 과 후배 동생에게 카페에 멍하니 앉아 어제 한 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1분 1초를 쪼개 쓰듯이 바빠도 화장실은 갈 수 있을 정도라도 되게 바쁘고, 기타 복지는 없어도 좋으니 저녁 8시 전에는 퇴근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정말이지 치열하고 전쟁터 같은 일상이 당연해진 하루하루이다.


"그럼에도 여기 붙어있는 거 보면은 말 다했죠 뭐. 저희는 글렀어요 (웃음)"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는 같은 성격의 나란히 앉은 두 명의 사람들이 웃었다. 맞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그냥 예쁘고 재밌는데. 하루하루 새로운 디자인을 만나고 만드는 과정들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로 그리는 게 눈으로 보이는 세계라니. 너무나 힘들고도 참 매력적이다.


아무튼,

그건 그런데


사실 문제는 내가 또다시 대학원을 가는 건 이 일이 힘들다는 것 외의 또 다른, 내 커리어패스 상에서 참으로 애매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일이다. 학력이 전부가 아닌 직종이다. 중요 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가 그러하듯. 그러나 정의하기는 어렵다)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한 건 틀림없는데, 내 경우에는 해외경험도 무척이나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니 일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취직도 한, 이제 진짜 곧 30살인 내가 해외경험을 쌓으러 다시 가는 게 맞는 거냐, 그건 또 아니라는 거다.


아, 왜 또 나는 고생길을 사서 가나.

알고 있지 않은가. 대학원생이었던 시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떠난 런던 여행길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다가 코피를 쏟았다는 걸.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집 떠나면 멍멍고생이다.


그래 맞는 게 어디 있겠어.


이 선택이 옳고 틀리고는 지금의 내가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닐 것이다. 사실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면서. 맨날 하기 전까지 내내 고민하는 게 습관이다. 내 선택이 맞다는 건, 혹은 틀리다는 건 시간이 더 지나야 꺠달을 수 있겠지. 지난날의 내가 그러했듯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어찌 됐든 경력이 있고, 회사와 병행을 하기에 (일단 아직은. 퇴사의 욕구는 늘 넘실거리기 때문에 장담은 못하겠다) 내가 원한다면 준비를 중단하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이고, 설사 이후 학교를 다니다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아시안인이라는 커다란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외 취업에 실패한 뒤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재취업을 노려본다 해도 (와 씨 글도 이렇게 긴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물론 걱정으로) 나이 때문에 조금 (많이) 어려울 수는 있을지언정 결단코 불가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어려울지언정 다른 선택지 역시도 가지고 있다는 것. 선택을 내릴 때 가장 경계했던 '배수의 진'은 아니라는 거다.


사실 이렇게 호언장담해도 열에 일곱 정도는 괜찮겠냐고 물을 선택이다. 그 일곱 명의 같은 업계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돈 낭비 경력 낭비가 될 것이라 분명하고도 따끔한 조언을 나에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사실이라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내 간직해 왔던, 나의 오랜 꿈을 이번에는 이뤄보고 싶다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몇 년 전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리고, 미숙했던 (그러나 그것이 그때는 최선이었던) 그 시기에 미처 이뤄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나의 한을 이번 기회에는 꼭 풀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때 고생을 덜했다는 뜻이지 뭐. 고생을 더 했다면 학을 떼고 안가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제 막 시작한 여정의 길. 솔직히 매일이 혼란의 연속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또 길을 잃고, 굳게 먹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혼란은 목표점을 정해 놓고 가는 미로이다. 그러니 두렵지 않다. 가는 길이 미로일 뿐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어디가 목표지점인지 나는 알 고 있으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휘뚜루마뚜루 지나갔으나 그래도 한 번은 해본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 나도 작게나마 배운 것이 분명 있다는 것.


자 해보자,

우선은 걸어가야 알 수 있다.

뭐든지, 써보며 시작.


시작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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