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바로 퇴사 (뿐만은 아니고)
인연이 다 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른들이 말하기를
세상 모든 일들은 때가 있어서 만나야 할 때는 만천하가 도와주듯 반드시 만나게 되고, 헤어질 때는 만천하가 도와주듯 어찌할 도리 없이 헤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게 바로 인연이 다 한 것이라고.
'나는 어쩌면 인생에 탐색기에 있는 것인지도 몰라.'
이미 다 뜯어져 있는 회사 간식 바구니의 간식들을 딱 한입씩만 종류별로 맛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은 나는 내 인생에서의 어떤 시기, 어떤 인연들의 종착점에 있는지도 몰랐다.
새로운 길을 목전에 둔 채 슬금슬금 보따리를 싸메는 요즘, 나는 종종 나의 만 2년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고는 했다. 나의 하루는 때로는 불행했지만 매일 같이 불행한 건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주 행복하지는 않았다. 뭇사람들이 여느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라고 말하듯이. 참 이상한 일이다. 처음에 나는 분명 무척이나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 다짐들 마저 희미해져 갔다.
불안한 게 당연한, 서른을 앞둔 사회 초년생. 버티기보다는 탈주를 계획하고 있는 나라도 막상 끝을 생각하니 퇴사라는 이름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앞뒤 분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기는 이미 지났다. 나는 다달이 들어오는 고정 소득에 안락함을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2년 차 사회 초년생,
퇴사(예정)
손익계산 쪽으로는 전혀 재능이 없는 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란 걸 해봤다. ‘일을 그만둔다'의 뜻은 무엇일까. 내가 정의한 ‘퇴사’의 의미는, 1년 걸어 놓은 적금을 더 부을 돈이 없어 해약해야 한다는 것이고,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서둘러 잡았을 택시를 한 번 더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고, 내가 얼마만큼의 생활비로 살아야 할지 남은 개월 수와 유학 준비 비용으로 나눠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수첩 위에 1년 치의 계획을 새우며 볼펜 끝을 탁탁두드리다가도 나는 과연 준비가 된 걸까,
아냐, 준비됐다는 시기가 언제 오겠어. 그런 때는 인생에서 다신 오지 않는다.
라며 다시 되새긴다.
해내기 위해서는 잊지 않아야 하니까.
잊지 않아야 해낼 수 있으니까.
간식 바구니에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어떻게 높이를 조절해도 무엇인가 내 자리가 아닌 듯 불편했던 의자와 책상에 손을 올리면서, 기계적으로 들어갈 뿐인 메일에 회사 이메일 주소를 쓰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는 아닐까.
뭐든지 가능할 것만 같았던 내 20대가 지나간다.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은 나는 꼭 30살이 되면 커다란 것이 달라질 것 같은 어린아이다운 불안에 휩싸인다. 19살에 내가 그랬듯이. 이제 39살의 나도 그렇겠지, 올 해가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인 줄 도 모르고.
수많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2019년 인생 처음으로 해외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던 25살의 내가 떠올랐다. 어찌나 그 모든 상황들이 불안하고 힘이 드는지 (물론 유학 준비 외에 다른 이유들도 많았었지만,)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어른들이 좋아하셨던 동그라미 얼굴은 어디 가고 인생에서 처음 갸름한 달걀형이 되었다. 맛있는 걸 찾을 수가 없어 살이 쪽쪽 빠졌던 나의 외모 성수기. 내 멘탈은 최악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잘 먹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기였는데. 인생은 정말 내 뜻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
이왕 나가게 된다면 현명하게 퇴사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떤 것이 현명한 퇴사인지도 잘 모르겠는 저녁이다. 무엇이 맞는 건가.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계속해서 일렁인다.
그리고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이런 나의 고민은 생각과는 아주 다른 방향의 결론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허 참, 인생은 이렇게나 모를 일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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