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보다 퇴사가 더 힘들다는 아이러니
퇴사 디 마이너스 이일.
퇴근 후 하루종일 긴장으로 지친 몸을 침대에 널브러 놓은 채 유튜브를 보며 히히덕거리다 나는 순간 뭐됐음을 깨달았다. 이건 일종에 직감 같은 거였다. 곧 퇴사라니.
와 씨, 어쩌냐.
나는 이제 곧 퇴사한다.
퇴사를 거치는 일 년의 과정들을 내 욕심만큼 낯낯이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의도대로 흘러가는 일들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면접을 두 번 더 보는 게 낫지. 체감상 입사보다 두 배는 족히 더 힘든 것 같았다. 아, 이직을 하는 사람들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퇴사와 입사를 동시에 라니. 이건 몇 배의 고통인가.
사수에게 말하고, 팀장님에게 말하고, 이사님에게 말하고, 인사팀이랑 미팅하는 과정들은 생각보다는 어려웠고 또 생각보다는 쉬웠다. 그 길다면 긴 과정에서 내 결심이 흔들릴 만큼의 정은 사실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팀원이지만 이제는 팀원이 아닌 사람들 속에서 몇 주를 더 함께하는 건 엄밀하게는 고통과 인내에 가까웠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놈의 회사 때려치워!‘라는 말을 현실로 실현되게 하려면 어머 무시하게 똥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것. 즉, 가슴속에 고이, 이전에는 한 낯 꿈처럼 품은 사직서를 현실로 재등장시키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생계와 직결되는 이러저러한 고통이 수반되기에.
나를 그만두게 했던 일은 멀리 보면 커다란 사건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로 인해 쌓여있던 둑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그냥 좀 많이 참은 탓이다. 내가 이 회사에 맞는지 고민이 들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꿈이 있었고, 때마침 순풍을 만난 탓이다.
그동안 내가 쌓아 올렸고 또 무너져 내렸던 나의 모든 짐을 깔끔히 정리하고 나오는 길, 나는 깨달았다.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