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기 위해 잠을 더 자기로 했다/ 원서 읽기 앱 추천 / 무급인턴
영국은 어느새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웃풍이 쉽게 들이닥치는 낡은 집이 많은 영국에서 산다는 것은, 겨울이 되면 양말과 약간 두꺼운 옷을 껴입고 방안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에서 삼십 년을 살은 나는 두꺼운 옷들을 방 안에서 입고 있는다는 것이 약간 속이 터지기는 한다). 그리고 서늘한 방 안에서 곁들이는 커피나 차 한 잔. 따뜻한 음료와 함께하면 이 서늘한 방안 공기도 제법 견딜 만하게 느껴진다. 풍수지리라는 개념이 없는(듯한) 영국은 북향의 방도 꽤나 많다. 왜 여기서 오랜 시간 동안 아이스커피를 찾기가 어려웠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몇 주 내내 흐린 날이 계속돼서 그런지, 혹은 내 마음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과 마음이 괜찮아졌다가 불안해졌다를 반복하는 요즘. 사실 나에게 있어 어떤 일이 뜸해졌다는 것은 마음이 불안해졌다는 것을 종종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를 위한 처방전 같은 개념으로 잠을 좀 더 자기 위해 늘 일정하게 세워두었던 알람을 한두 시간 정도 미뤘다.
계획을 재정비하고 또 세우는 것은 너무 그 안에 갇혀 매달리지만 않으면 가끔은 좋은 습관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놓은 어떤 루틴 같은 것에 변화를 주려고 시도했던, 며칠마다 찾아오는 쉬는 날의 오늘. 그동안에 경험으로 봤을 때 나는 조급해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예민도가 올라가고 스트레스가 쌓여 개복치 상태가 되고 마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하려는 일의 계획은 언감생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과식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하루를 불편하게 보내버리기 일 수다.
- 그렇다, 이번 주 내내 그 상태였다는 거다.
영어 공부는 이제 조금은 습관 같은 것이 되어서 아무리 힘든 와중이라도 거기까지는 (즉, 아침의 계획까지는) 해내고는 하지만, 퇴근을 하거나 점심이 넘은 오후가 되기 시작하면 자그마한 스트레스조차도 견디지 못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유튜브나 보는 것을 반복했던 이번 주. 그리고 찾아오는 어떤 자괴감 같은 것들.
예민해지기 시작하면 자꾸만 나를 끝에 몰아넣고는 한다. 나쁜 습관 같은 마음들은 사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으나 다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한 후로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들이 잊을만하면 밀려오길래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두 개 세 개씩 적어놨던 계획 같은 것들을 정리하고, 하루에 하나씩만으로 바꾼 오늘 투 두 리스트의 단편.
애정하는 동생들과 언니가 추천해 줘서 사용하기 시작한 'todo mate' 앱, 아직까지 너무나 잘 쓰고 있다 :)
혹시 나와 같은 투 두 리스트 중독자가 있다면 추천을!
1. 원서 읽기 앱 추천
BOOKMORY
별건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 영국 생활의 로망 같은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원서 읽기! 소소하지만 나의 작은 꿈들을 몇 개 나열하자면
1. 영국식 브렉퍼스트
2. 피시 앤 칩스 먹어보는 거
3. 영국 유명한 마켓 가보기 - 버로우 마켓, 포토벨로 마켓 등
4. 박물관 미술관 투어 -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등
5. 1달에 1권은 도서관에서 책 빌려서 원서 읽기
6. 밋업 가보기
정도가 될 수 있겠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원서를 뚝딱하고 읽어낼 수 있는 멋진 어른이가 되고 싶다는 꿈은 아직도 건재했는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영국 워홀 초반에 바로 '파친코'를 구매했더랬다! 그리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짬짬이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충 읽었다는 생각만으로 흐지부지 끝나지 않도록 시간 기록을 하고 싶어 찾아보던 도중 발견한 보물 같은 앱이 있어 공유해 볼까 한다. 바로 이름은 'BOOKMORY'
이 앱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찾았던 기능이 모두 있기 때문이었다.
1. 읽은 시간을 타이머로 기록할 수 있다.
2. 책의 장 수와, 그것을 얼마큼 읽었는지 표시가 된다.
3. 독서 시간 목표를 세울 수 있다.
4. 목표가 얼마큼 달성했는지 기록이 된다.
5.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아카이빙이 가능하다.
6. (가장 귀여운 점) 어떤 요일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림으로 표시가 된다!
출퇴근길 초반 20분 정도는 아주 열심히 걸어야 하고 또 지하철을 타서 십몇 분 정도는 서있어서, 사실 제대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오고 가며 1시간이 좀 안 된다. 그래도 꾸준히 읽었다는 것이 표시가 되니 굉장히 보람찬 기분이 들었다. 욕심은 몇 시간이고 읽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지만, 작게나마 꾸준히 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요즘. 이제 보니 새삼 깨달은 것이 있는데, 나는 하나를 앉아서 진득하게 하는 것보다는 사소한 여러 개의 일을 조금씩 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작업을 할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작업만 하는 걸 보면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2. 어느새 한 달이 좀 안돼가는 무급 인턴과 런던 마라탕 집 추천
- POT POT MALATANG
시간이 어느새 빠르게 흘러 무급 인턴을 시작한 지도 한 달이 조금 안됐다.
사장님이랑도 조금 더 가까워지고, 라텍스 원단을 다루는 것도 조금은 익숙해진 이번 달. 조선여자로서는 파격적인 무대의상 공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곁에서 조금이나마 보고 배우고 디자인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침에 회사 가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추운 날일수록!)
유독 갑작스럽게 추워서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던 이번 주의 런던.
밝고 솔직한 언니분과, 귀여우신 동생분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런던 중심가에서 보냈다. 가고 싶었던 마라탕 집이 있어서 다 같이 가봤는데 생각보다 비쌌고 조금은 독서실 같은 분위기라 당황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맛있고 또 스트레스 풀리는 맛이라 종종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너무 맛있었다. 23파운드의 가격도 다 용인이 될 만큼. 주기적으로 생각날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하. 돈은 언제 아낀담!
그래도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고민들을 나누면서 얼큰한 국물을 먹으니 행복이 별게 없었다.
행복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요가 수업을 째고 시켜본 DELIVEROO
- JOE & JUICE -
영국식 배민인 DELIVEROO에서 처음으로 시켜본 나의 샌드위치.
사실 점심에 식욕 조절 실패로 속이 안 좋아서 저녁 정도는 가볍게 건너뛸 수 있을 배 상태였는데, 계속 아른거리길래 정신 건강을 위해 시켰다. (그냥 점심에 돈 아낀다고 안 먹지 말고 이거 먹을걸) 19년도 때 비싸서 이 앱을 통해 기숙사 친구들과 피자를 딱 한 번 시켜 먹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지 궁금해서 시켜본 저녁식사였다. 나의 샌드위치 사랑은 24년에도 계속된다. 너무 맛있어.
앱에 적립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네이버 검색을 해보다가 이 조 앤 주스가 한국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이 맛이 그리우면 가볼 곳이 생겼구나. 현재 최애 샌드위치 집이라서 굉장히 즐거워졌다. 집 근처에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자 다행인 점이다. 아마 집 근처면 맨날 방앗간에 참새처럼 갔을거다.
그래도 오늘 오후를 기점으로 뭔가 마음이 다시 차분해짐을 느꼈다. 그래, 조급할 게 무엇이 있나. 내가 빠르게 노를 젓는다고 해서 유속이 느리면 그것은 소용이 없을 일일 것이고, 너무 유속이 빠르면 노를 저어 볼 시간도 없이 휩쓸릴 것이다. 그냥 나는 물살에 맞춰서 노를 저으면 된다. 알고 있으면서도, 늘 바보처럼 조급해지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러지 않도록,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내디딜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편한 게 역시 늘 최고다.
우리 모두,
두발 뻗고 맘 편하게 잘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밤들이 많기를.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