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끝에 꺼낸 새로운 한 걸음
그동안의 흘러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는 ‘포기’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수년간의 공시 생활, 어머니의 부재를 잊으려 버텨낸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꾹꾹 눌러 담아 온 감정들까지 —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실패’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내 공시생의 생활을 끝맺을 수 있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럴듯한 핑곗거리 하나를 찾아냈다.
어학연수. 중학교와 고등학교, 총 6년간 배워온 영어. 그리고 공시생으로 살아오며 몇 년간 반복해 온 영어 공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내게 남아 있는 지식이 아닌, 그저 흐릿한 기억의 덩어리로만 남아 있었다. “영어가 부족하니까 외국에 가야겠다.”는 그 말은 진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사실 누구보다 나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영어를 배우기 위한 결심이 아니라, 이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한 핑계였다는 것을. 그 핑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더 이상 가족에게 손을 내밀 수 없었다.
공시 준비라는 명목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받아온 지원, 그 무게가 내 양심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도피를 가장한 출발’의 자금을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하기로 했다. 8개월 동안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하루를 갈아 넣어 어학연수 3개월 과정과 편도 비행기 티켓을 마련하고 남은 돈은 겨우 백만 원 남짓. 몇 주 버티기에도 빠듯한 금액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더 오래 머무를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아니 더 큰돈을 모으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의 공시 생활은 이미 내게서 ‘꽃다운 나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앗아갔다. 나는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어디든 좋았다. 단지 이 생활로부터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돌아온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떠나야만 길이 열린다고 믿었고, 나는 그 믿음에 배수의 진을 쳤다. 뚜렷한 계획도,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했지만, 사실은 무거운 마음 하나를 꼭 쥔 채였다. 그 순간의 나는 누가 봐도 패배주의에 빠진 루저의 모습이었다. 도망치는 사람, 실패한 사람, 무책임하게 삶을 흘려보낸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어머니의 죽음,
끝나지 않는 시험, 점점 무너져가던 자존감과 정체성의 혼란. 그 모든 시간의 끝에서 나는 마침내 처음으로 내 삶을 내 손으로 끊어내는 선택을 했다. 어쩌면 그것은 도망이었고, 어쩌면 그것은 시작이었다. 피지라는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나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나를 시작하려 발을 딛기 시작했다. 루저라는 낙인이 붙더라도, 거기서 만큼은 조금 자유롭고, 조금 나다운 모습을 되찾길 바라며.
나는 떠났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문장을 다시 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