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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예원 May 03. 2021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About Time

패션 전시의 의미, 컨셉과 디테일


    패션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어렵다는 건 패션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선보이며 깨달았다. 그때 나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를 디자인했는데, 주인공의 성격과 배경 등을 고려하여 만든 디자인임에도 패션은 비주얼의 성격이 강한 예술인지라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고 내 의도가 보는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야만 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익숙한 그림 전시와 달리 마네킹 위에 입혀진 옷 몇 벌만을 전시하자니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서로 다른 작품들이 있는 전시관을 통일성 있게 장식하는 일로도 꽤나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패션 전시를 볼 기회가 몇 번 더 있어 파리의 이브 생로랑 뮤지엄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전시를 가보았는데, 이브 생로랑 뮤지엄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업적을 기리는 성격이 강했고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전시는 말 그대로 역사적인 꾸뛰르 드레스를 전시해둔 곳이라 둘 다 아름답고 전시를 다 보고 나서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조금 더 통일된, 스토리가 있는 패션 전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1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만큼 박물관의 코스튬 인스티튜트에게도 2020년은 중요한 해였는데 그들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의 패션 행사 Met Gala가 취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올해 초에 계획되어 있던 특별 전시 About Time: Fashion and Duration 마저 뉴욕의 셧다운으로 인해 연기되어야 했다. 150주년의 Met Gala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지라 기대를 많이 했기에 취소되었다는 뉴스를 봤을 때 많이 실망을 했었다. 대신에 About Time 전시회가 공개된 10월 29일 당일에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올해 제일의 폭우를 뚫고 다녀왔다. 이런 최고의 전시가 집에서 30분 거리에 열린다니, 뉴욕에 살다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박물관 안의 American Wing Cafe에 가서 케이크를 먹으면서 책을 읽다가 2층에 전시된 그림을 조금 보고 특별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루이비통과 잡지가 Condé Nast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는 1870년부터 지금까지 150년간의 패션의 역사를 다룬 전시인데, 시간을 직선의 흐름으로 보지 않고 겹치고 포개어 다른 시간에 만들어진 의상들 간의 공통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패션 전시와 다르다. 카탈로그에 따르면 “A vision of time freed from the confine of chronology’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시간을 비교하는 컨셉 자체가 새롭다기보다는 그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이 전시를 보는 사람에게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는 것 같다. 두 개의 전시관 중 첫 전시관은 온통 검은색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내었으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시관 자체가 원형으로 시계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금색 원형 테 안에서 시계 추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전시관 전체에 분침과 초침이 그려져 있었다. 의상은 비교 대상인 드레스가 두 개씩 분침 사이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면 1930년에 Mariano Fotunyy Madrazo라는 스페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Delphos라는 드레스와 그와 마찬가지로 주름으로 이루어진 1994년 Issey Miyake의 Flying Saucer 드레스가 두 분침 사이에 있었다. 통일감을 부여하고 실루엣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전시 작품은 모두 검은색 드레스였는데, 매칭된 두 꾸뛰르 드레스 간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봤다. 가령 드레스에 귀걸이나 목걸이 등 수십 개의 주얼리가 달린 다른 시간대의 두 드레스나, 가브리엘 샤넬이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와 “Little Black Dress” 가 적혀 있는 오프 화이트 드레스, 얇은 금색 테로 둘러진 드레스 등 후대 디자이너들이 이전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어쩌면 우연의 일치로 만들어진 매칭들이 전시관을 가득 메웠다. 일반적으로 패션 전시를 가면 한 작품의 색이나 실루엣 같은 것을 보고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 정도를 판단하게 되는데 이 전시는 두 작품을 비교함으로써 공통점을 찾는다는 목적을 주어 눈이 바쁘고 지루할 틈이 없게 한다는 게 내가 발견한 이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였다.


    패션 전시는 패션을 비주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내 생각과 달리 About Time은 청각적인 요소들로도 전시의 컨셉을 강화시켰다. 전시관에서 들리는 소리는 세 가지였는데, 바로 나레이션, 시계 추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 그리고 웅장하면서 약간 슬픈듯한 옛날 느낌의 클래식 음악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어두운 조명과 함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시계 추 소리는 이 전시의 컨셉인 시간을 관람 시간 내내 인지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나레이션은 이 전시의 영감이 된 작가 Virginia Woolf의 Orlando: A Biography (1928)의 시간에 관한 한 문장의 반복이었다. 세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데다 나레이션이 음악과 시계 추 소리에 잠기는 느낌이었어서 잘 듣지 못했는데, 궁금해서 집에 와서 찾아보니 바로 이 문장이었다. “An hour, once it lodges in the queer element of the human spirit, may be stretched to fifty or a hundred times its clock length; on the other hand, an hour may be accurately represented on the timeplace of the mind by one second.” 시간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이 말은 전시관에서 다른 요소들만큼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시간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전시 컨셉을 견고히 하는 디테일이었다.


    전시관의 디스플레이 또한 배울 점이 많았다. 가장자리를 따라 원 모양으로 작품을 끝까지 보고 뒤를 돈 다음에야 인지할 수 있었던 첫 전시관의 시계 추와 분침 구조뿐만 아니라 두 번째 전시관에 입장했을 때에 보인 세련됨과 창의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검은색이었던 첫 전시관과 달리 천장과 모든 벽면이 거울로 되어 있었고 굉장히 밝았는데, 처음에는 천장에 규칙적으로 보이는 검고 세련된 것들이 조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거울에 반사된 드레스들이었다. 전부 같은 색을 띠고 있으니 비추어진 모습이 통일감 있고 세련되어 이런 효과를 위해 작품을 전부 검은색으로 통일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분침과 초침으로 이루어져 있고 분침들 사이에 비교 대상인 두 작품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지만 작품을 놓은 곳이 흰색이라 전체적으로 블랙 앤 화이트를 띠고 있었고 그건 천장 거울에도 마찬가지였다. 거울, 흰색, 그리고 검은색의 합작은 마치 굉장히 고급스러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또는 부드러운 호일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시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전시보다 아름다웠다. 패션 전시에 완벽히 어울리는 디자인이라 후에 무언가를 기획할 때 꼭 활용해보고 싶은 방법이다.


    피날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답게 색다르고, 아름답고, 현대 사회의 움직임을 잘 반영했다. Viktor & Rolf 2020년 봄/여름 오뜨 꾸뛰르 컬렉션 작품으로 검은색으로 통일시킨 전시 가운데 유일하게 흰색 작품이었다. 자세히 보면 하나의 천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여러 스와치를 이어붙여서 만든 드레스이고 허공에 떠서 천사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마네킹의 머리 위에는 직물 공장에서 쓰일 법 한 톱니바퀴 모양을 한 종이 수십 개가 솟아 있었다. 바닥에는 옷을 구성하는 것과 비슷한 스와치들이 백조의 깃털처럼 쌓여 있고 빔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옷 뒤로는 서로 다른 스와치들이 흩날리는 영상을 만들었다. 이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제인 지속 가능성, 패스트패션에 대한 반발, 서로 다른 스와치들의 합작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성과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후에 찾아보니 큐레이터가 BLM 운동이 터진 후 추가한 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깊은 의미와 비하인드스토리를 사랑하는 나는 패션의 아름다움과 그가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메시지까지 경험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검은 통로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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