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guchi Museum
익숙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년에 파리에 갔을 때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산다니 부럽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오히려 그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 보니 그저 당연한 것일 뿐 전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단순함보다는 화려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던 나에게 여백의 미라는 개념은 모순적으로 보였고, 그렇게 내 관심은 비행기로 열두 시간 거리인 유럽을 향하게 되었다.
익숙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큰 힘이다. 지구 반대편에 일 년가량 살면서 집이라고 부르는 도시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었고, 그 둘은 너무 다르기에 각각의 매력을, 발전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한국의, 그리고 한중일의 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고 즐기는 법을 배웠는데, 가령 깔끔한 자기를 보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동아시아 갤러리에 간다든가 첼시에 있는 한국 갤러리들을 찾아다니는 것 등이다. 이제는 내가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균형 있게 느낄 수 있음을 확인한 곳은 오늘 소개할 공간인 노구치 뮤지엄이다.
퀸즈를 가는 건 두 번째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꽤나 높은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마치 롤러코스터 높은 곳의 평지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노구치 뮤지엄은 뉴욕에서 유일하게 예술가 한 명을 위해 세워진 뮤지엄이라고 한다. 노구치는 일본과 미국의 혼혈이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언론은 그의 일본 정체성을 많이 강조한다는 걸 느꼈다. 그만큼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 작가의 작품들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일본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뮤지엄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넓은 정원이었다.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바닥 위 석상, 아직 잎을 다 잃지 않은 큰 은행나무와 오랜만에 보는 소나무, 잠시 쉴 수 있는 벤치까지. 올해 공원 그리고 정원만큼 많이 간 곳도 없지만 잔디가 아닌 작은 돌들이, 구부정한 소나무가, 벤치 앞 낮은 테이블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조용함이 평온한 안정감을 주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유후인의 한 료칸에서 게타를 신고 걷던 돌길의 정원이 떠올랐다. 문득 든 생각인데, 이 뮤지엄 정원에서 따뜻한 차와 양갱을 팔면 또 다른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내부의 바닥은 회색 돌 또는 마루로, 천장은 한옥의 것과 비슷하게 나무로 되어 있어서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그 외에도 작품을 올려두는 받침대를 조각한 나무로 만들거나 벽을 깔끔한 흰색으로 맞추는 등 일종의 통일감을 주려는 노력이 보였다. 장식품, 벽 자체가 튀어나와 예술인 작품, 돌로 된 작품과 추상적인 작품 등 많은 게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작품명은 단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종이로 된 동그란 등이었다. 집에 두고 싶은 조명이 항상 샹들리에였던 내가 처음으로 식탁 천장에 둥근 종이 등을 다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빛이 내 눈에 바로 보이는 게 아니라 불투명하고 두께 있는 종이를 뚫고 은은하게 밝혀주는 게 독특하기도 하고 지구 같기도 해서 마음에 든다. 기프트샵에 내려가보니 이런 종이 등이 크기와 모양별로 수십 개가 진열되어 있었다. 작가는 사망하였지만 그의 종이 등은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사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예뻐서 자꾸 생각이 난다.
뮤지엄을 관람하는 두어 시간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이게 바로 여백의 미일까? 나에게는 당연하고 단순하기만 했던 동아시아의 건축물에서, 예술 작품에서, 정원에서 이제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안다. 아마도 뉴욕에서 아시아를 체험하기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보다 더 좋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든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중국식 집과 정원을,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과 노구치 뮤지엄에서는 일본식 정원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건축 양식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은 아직 없는듯하다. 파릇파릇한 식물들과 함께 있는 한옥만큼 예쁜 게 또 없는데, 우리의 문화도 많이 알려져서 뉴욕 어딘가에 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