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이로 살아간다는 것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웠다.
나는 갑자기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유난을 떨었던 시기였다.
그 해 여름. 선생님은 비장하게 전공을 갈아치우겠다고 선언하는 날 보며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경찰시험을 보는게 어떻겠냐며, 훨씬 잘 어울린다고 그 뜨거운 라멘을 후루룩 소리내며 잘도 드셨다. 나는 갑자기 무슨 경찰이냐며 한번 째려보곤 좋아라 하던 냉모밀을 후루룩, 먹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11월, 한 통의 전화로 영영 사라졌다.
젊은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처음 담임이 된 고3, 그 반엔 내가 있었다. 학교에 온갖 일은 다 맡아서 하면서 그 많은 아이들을 다 챙겼다. 본디 선생은 저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온 종일 소리치고 FM에 선도부에... 아직 요령없고 열정만 가득한 초짜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알았다. 내 인생에 단 한 명의 은사를 고르자면 분명 이 사람일 것이라고.
감히 내가 고를 수 있다면,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내겐 누구보다 세심했고 무뚝뚝해도 다정했고 세상에서 제일 똑똑해보이는 선생님이었으니까.
선생님이 처음 대학에 보낸 학생이 나였다. 그 치맛바람 세다는 동네에 살면서 입시학원도 안다니던 나라서, 학교에 쳐박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선생님도 나도 알아서, 내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됐다.
장례식에 가선 눈물 한방울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급하게 마신 술 탓인지 된통 취해버린 밤 중에 옷을 갈아입다가 울컥, 쏟아졌다. 너무 엉엉 운 탓에 아버지가 호통을 치셨다. 그마저도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 동생이 그 날 집이 떠나가도록 운거 기억은 나냐고 넌지시 말했다. 눈은 뜰수도 없게 부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계속 내게 물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랬을까, 어디 아팠니? 무슨 일이 있던거야? 나야말로 누군가 붙잡고 묻고 싶었다. 왜 그랬던 거냐고.
공부가 잘 될리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던 이가 죽었는데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세상은 조용했고 그대로 굴러갔다. 그 사실이 너무 피부에 와닿아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들이 다 너무 바보같아보였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창문 너머를 봐도 똑같았다. 그러다 문득, 눈이 나리는 걸 보니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7층이었고, 첫 발작이었다.
이후로도 몇번 지속됐다. 겁이 나 병원을 알아두었지만 가진 않았다. 죽을 용기도 없었지만 병원에 갈 용기도 없었나보다.
엄청난 위로가 필요하진 않았다. 그냥 함께 사는 강아지가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봐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더 살아볼까 싶었다.
버스 창가에서 문득 느껴지는 햇살 하나가 그 날을 살아가게도 했다.
그게 너무 따뜻하니까, 부는 바람이 너무 세심해서, 누군가 꼭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뛰었다. 되도록 웃었다.
혹시 모르잖아. 정말 날 지켜보고 있을지. 날 보고 '저거, 저거, 또 저렇게 앞뒤 안재고 뛰고보지. 넘어질라고' 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나 싶었다.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게된다.
선생님의 부재는 나를 더 열심히 살아가게 했다. 힘들지 않은건 아니었다. 힘들었다. 그렇지만 멈춰있을 순 없었다. 차라리 바빠서 잊어버리는 편이 나랑 어울렸다. 선생님 말대로 편입준비는 그만 뒀다. 복학을 했고 일을 만들었다. 시간표에 수업을 꽉꽉 채우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또 봄이 온다.
아직 나는 살아있고 선생님은 내 곁에 없지만 이렇게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생각이 난다. 내가 남아있다는 생각을 꾸준하게 하게된다. 이렇게 남아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있다. 햇살 하나에 바람 한 줌에 살아있는 것을 깨달으며 남아있다.
남아서 살아있는 것인지, 살아서 남아있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