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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Aug 09. 2020

나의 보라색 안경

나에게 패션이란 무엇일까?

때는 다섯 살, 안경을 쓰게 되었다. 비디오를 많이 봐서였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일까.


시력이 안 좋아져 안과에서 검사를 하고 안경원에 가 안경을 고르던 순간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초등학생 때까지 나는 안경이 마냥 멋지다고 느껴졌다.

맹맹한 또래들의 얼굴 사이에 멋지게 색안경을 쓰고 있는 나라니. 생각만 해도 너무 쿨한 걸?


시간이 흘러 주관이 생기고, 아버지는 내게 안경테를 골라보라고 했다.

당시의 나는 티비에서 한참 방영하던 <꼬마 마법사 레미>의 보라색 캐릭터를 좋아했다. 묘하게 신비로우면서, 쿨 해 보였다. 비밀이 많아 보이는 보라색! 좋았어 난 보라색이다.

안경사와 아버지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수많은 뿔테 안경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보라색을 내뿜는 뿔테 안경을 손에 쥐었다.

여담이지만 도수를 맞춘 안경알을 끼우고, 귀에 걸쳤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내 딸이 나를 닮아 안경을 쓰다니, 그것도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린 나는 그 마음도 모르고 마냥 헤실거렸다.


그 안경이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엄마 아버지가 골라주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집어 든 것이고 무엇보다 내 선택을 부모님이 존중해서 구매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꽤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내가 고른 첫 패션 아이템, 보라색 안경과 그렇게 만났다.





패션: fashion, 특정한 시기에 널리 유행하는 의복이나 차림새 등의 양식



우리는 의식주 속에서 살아간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실 의식주 와이파이 데이터 핸드폰... 뭐 이것저것 없으면 못 살아, 싶은 물건들이 많이 나왔지만 의식주는 정말 정말 필요하다. 뭐, 벗고 살 순 없지 않은가.



근데 우린 옷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우리는 요즘 플렉스(FLEX) 나 욜로(YOLO)라는 단어 속에 살아간다. 심지어 힙(Hip)하다는 단어까지

생각해보면 전부 소비와 관련 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옷과 신발을 사며 플렉스 해야 하고

내일은 신경 안 쓰고 욜로 하며 멋진 옷을 사들고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로 여행을 못 가면 호캉스라도 간다. 그때도 옷을 산다. 일단 사진은 남겨야 되니까.

그렇게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힙한 장소에서 힙한 옷을 입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처음엔 내 보라색 안경처럼 이건 나만의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사지만 금세 질려버린다. 나도 그 안경을 고를 때엔 평생 신비로울 거라고 다짐했던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 보라색에 질려서 다른 안경을 사게 되었다. 그냥 그 뿔테로 써도 됐었을 텐데. 헤질 때까지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꾸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바꾼 안경만 해도 열개 가까이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만 이렇게 싫증이 심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작년보다 옷 구입 벌 수가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비슷하다거나 많아졌다고 대답한 사람이 67%에 달한다. (2019년 전국 패션 섬유학과 대학(원) 생 전문 학원생 2021명 대상으로 진행된 심층 설문조사(출처: 국제섬유 신문 뉴스))


심지어 3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옷 구입 평균 지출 비용이 100~200만 원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내 통장 내역도 살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동년도에 진행된 20대 소비지출 패턴 및 성향조사에서는

계획에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의류를 발견하고 바로 구입한 적이 있다는 답변이 42.3%로 59.6%를 차지한 음식 및 디저트의 바로 뒤를 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 역시 매 시즌 옷을 산다. 기분이 안 좋으면 쇼핑을 하러 가고 여행 가기 전에 사고 중요한 날이라고 사고 길가다 마음에 들면 사고. 그런데도 왜 옷은 사도 사도 없는 것일까?


옷장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REAH



이렇게 많은데, 오늘 지금 입을 옷은 없다니.



이런 나의 마음과 나와 다르지 않을 여느 청춘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국내 패션 시장의 규모는 43조를 육박한다.

인스타그램 속에 #패션 이라고 검색하면 2천4백만 건이 넘는 게시글이 나온다.

좀 더 있어 보인다는 #fashion 과 #ootd 는 8만 2천2백 건과 3만 천 2백 건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션에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매년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옷이 만들어지고 또 팔리는데 그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 서울에 사는 나는 도저히 알 턱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마법 같은 과학이 내 눈앞에 뿅 하고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무심코 사는 옷들, 다 어디에서 오는지 뭘로 만들어지는지, 내가 버리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보라색 안경은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이리저리 떠돌다가 지구 반대편쯤에 있으려나. 아니면 진즉에 재활용되어서 다른 물건이 되었을까? 잘게 부서져서 흩어졌을까?




MAGAZINE ZERO: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통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ZERO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매주 일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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