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희 Aug 10. 2020

어느 보통의 여행

첫번째 결산,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버우어젤


“여행지에서 최고의 하루는 언제였어?”


사실 이 질문을 받으면 당신도 그렇겠지만 정말 하루를 꼽기 힘들다.



그래도 하루를 꼽아보자면,

2020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날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작년 초겨울, 하던 프로젝트가 끝나자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큰고모의 집으로 갔다.

어릴 때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눈물을 꾹 참고 갔던 독일. 열심히 모아둔 돈을 다 털어 왕복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는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독일에 다시 갈 수 있다, 는 마음 하나로.


필름 카메라로 찍은 그 집의 일상, 내가 사랑했던 햇살과 사람들.

독일에서 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큰고모가 너는 여기까지 와서 왜 돌아다니지 않느냐고 한소리 했으니 말 다했다.

그렇지만 난 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즐기는 그곳의 생활이 좋았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는 큰고모네 가족. 큰 고모부와 인턴을 하고 있는 큰 사촌동생이 출근을 하고 작은 사촌동생은 공부를 하고 큰고모가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지면, 그 옆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일.

짧게 글을 쓰고, 곧 오스트리아로 가서 보낼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고, 다시 글을 쓰다 책을 읽고.

고모와 점심에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함께 밥을 해 먹고, 과외를 하는 사촌동생을 배려해 조용히 방에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 일. 좋아하는 친구가 골라주는 음악을 듣는 일.

사실 정말 볼 것도 없는 프랑크푸르트 그 동네에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 다니며 나름의 예쁨을 찾아가는 일.

챙겨 온 코트와 노란 니트가 마음에 들어 내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나지만 사촌동생에게 부탁해 한 장 남겨두는 일.

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며 야채를 굽고, 고기를 구워 와인을 한잔 곁들이는 저녁

한국 예능을 보며 깔깔대는 소파 위의 어느 평범한 가족, 그 사이에 함께 웃고 있는 나.



생각해보면 그냥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근데 난 그게 그렇게 좋았다. 걱정할 거리가 없고, 길을 나서면 내가 모르는 사람들.

그런 보통의 하루가 제일 좋았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그전까지 그런 하루를 보낼 여유 조차 없었기 때문이리라.

정말 잘 쉬고 온지라, 그리고 어떤 여유를 부려야 하는지 깨닫고 와서 지금은 일상에서 조금씩 여유라는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가끔 그 햇살과 길거리가 생각난다.


내가 사랑하는 어느 보통날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네 비혼주의를 응원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