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트렌드, 내일의 쓰레기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어느 날 쇼핑백을 들고 온 애인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투야? 플렉스는 또 뭐고?”
래퍼들이 유행시킨 '플렉스(FLEX)'와 '~해버렸지 뭐야' 라는 말은 어느새 10대에서 20대, 30대까지 점령하고 말았다.
FLEX(플렉스)
사치는 자신이 가진 것에 상응하는 효과를 연출하는 데 반해, 플렉스는 자신이 가진 것과 무관하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초과하여 연출한다는 것이다. 즉 사치가 실재하는 것과의 긴밀한 영향 아래 놓인 연출이라면, 플렉스는 오로지 연출만이 존재할 뿐이며 연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점에서 사치보다 더욱 사치스럽다.
위의 소개는 너무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기만족을 위한 과소비다.
너무 비정하게 말했나 싶지만 한 설문에 따르면 성인남녀 절반 이상(52.1%)이 플렉스 소비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중 절반 이상(52.6%)이 그 이유를 자기만족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외의 응답도 즐기는 것, 스트레스 해소 등 자기를 위한.
하긴, 자기만족이 뭐가 나쁘겠는가!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세상이나 사회까지 생각하는 건 나에겐 너무 무거운 짐이란 말이지. 진짜 문제는 내가 이 플렉스로 진짜 만족할런지, 그리고 나 혼자 만족하면 끝인 것인지에 있다. 분명한 건 플렉스는 내 지갑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자기만족’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끊임없는 생산, 그 와중에 우리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제품들, 선택을 받았으나 곧 버려지는 것들까지 생각하면 플렉스는 내 손에 잡히는 물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내뿜는 소비행태다.
아니, 내가 번 돈으로 내 살 것 사겠다는데 왜 이리 골치 아픈거야…
하필이면 플렉스하기 가장 편하고 쉬운 아이템이 바로 옷이다. 바로 입을 수 있고, 자랑할 수도 있으니까. 비싸려면 한없이 비싸지만 또 저렴하면서도 내 취향을 충족시키는 옷은 언제나 있다. SPA라고도 불리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덕이다. 이들은 매주 평균 40~60벌, 연간 약 3천여 종의 옷을 내놓는다
지갑사정이 넉넉치 않은 우리에게 가성비 플렉스를 허락해주는 고마운 브랜드인데다가, 다품종 소량생산의 빠른 상품 회전을 통해 소비자의 욕구와 트렌드를 바로바로 반영한다. 하지만 고마움도 잠시, 한철 입고 버릴 수밖에 없는 디자인과 품질 때문에 결국 우린 다시 쇼핑의 쳇바퀴로 되돌아간다.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옷을 사고 쉽게 버리는 것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마약 같은 존재랄까.
이상하다. 플렉스했다면 만족감이든 제품이든 둘 중 하나는 남아야 하는데 왜 나는 다시 빈손으로 매장에 들어가는 것인가?
우리는 기분이 안좋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옷을 산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여행을 위해서도 사고 선물도 옷으로 주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소위 말하는 플렉스를 했다고 하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의 옷장을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과연 필요한 물건을 산 것인가?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 순간을 즐기고자 과하게 지갑을 열어 제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빠르게 플렉스 해서 우리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나 싶다.
MAGAZINE ZERO: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통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ZERO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매주 일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