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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Sep 20. 2020

초록 박스의 비밀

해외에서 한국어가 적힌 옷이 발견되는 이유


우리 집 앞에는 오랫동안 초록 박스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

그 이름은 의류 수거함. 또는 헌옷수거함이라고 불린다. 어릴 때부터 입을 수 없는 옷을 이 박스에 버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버렸던 옷, 어디로 갔을까. 태워졌으려나, 아니면 수선되어서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갔을까? 최근에 중고제품을 많이 사기 시작했는데, 내가 산 옷, 가방, 신발들도 다른 나라의 의류수거함에서 오게 된 걸까? 매일 지나갈 때마다, 자물쇠가 채워진 이 헌옷수거함은 누가 관리하는지 궁금했다. 얼마 전 망원 시장 앞에서는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 수거함을 봤는데, 그건 또 다른 수거함일까?

오늘은 우리 집 앞에도 있고 당신 집 앞에도 있는 그 초록 박스의 비밀을 캐보고 싶다.





초록색 수거함은 1998년 IMF사태 때 헌옷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지원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럼 나라가 운영하는 수거함일까 생각이 들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기부가 아닌 개인 사업을 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다. 의류는 재활용쓰레기 중 가장 고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업자가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1kg당 최대 600원, 폐지 고철은 kg당 200원 수준) 이 상자는, 불우이웃 돕기를 위한 것이 아닌 의류 수거업체의 소유물이었다. 간혹 의류 수거함 밑에 쓰여있던  00장애인회 등의 문구는 돈을 지불하고 산 명의이지 기증했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쓰면서도 충격이다!)


민간 아파트의 경우 재활용 업체와 자체 협약을 통해 재활용쓰레기 처리를 진행한다. 재활용 수거업체가 아파트에 돈을 지불하고 쓰레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이 돈은 잡수익으로 처리되어 아파트 단지 운영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2016년 3월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를 살펴보니 전국 의류수거함 10만 5천개 중 72%는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지자체 허가 없이 무단 설치하거나 무단 운영중이라고 한다. 이는 미관을 해치는 디자인이나 주변을 관리하지 않아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곤 했다.


불법 점거되는 헌옷수거함이 많아짐에 따라 지자체가 관리를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새로운, 깔끔한 형태의 의류수거함이 등장한다. (망원 시장 앞에서 내가 본 파란색 수거함도 새로 리뉴얼 된 수거함인듯!) 세금을 부여하고 개인 사업자를 배제했다. 장애인 단체와 보훈 단체 등만 의류수거함을 설치할 수 있다. 현행법령상 중고의류는 지자체 내지는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폐기물 처리업자만 수거할 수 있다. 의류수거함 운영을 해왔던 장애인 협회, 특수임무유공자회 등과 협약을 맺고 불법 설치되었던 관내 의류수거함을 철거했다. 지자체에서 공개입찰 방식으로 수거단체를 선정해 관리한다고. 이렇게 수거된 옷들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지로 수출된다. 해외에서 한국어 옷이 종종 발견되는 이유이다. 수거함에 담긴 옷들은 고물상, 헌옷수출업체, 걸레공장에 판매하기도 하고 상태가 좋은 옷들은 구제가게에 팔아 금전적인 이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낮은 시민의식으로 의류수거함들이 쓰레기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반폐기물을 투척하거나 썩은 옷, 음식물쓰레기, 동물 사체 등 많이도 나온다고 한다.



의류 수거함에는 옷만 버리자 제발 REAH



서울시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2020년 2월 기준으로 서울시내에 15,800여개의 의류수거함이 있다. 수거 후 수출위주로 처리되고 있다고 한다. 협약 공동주택 아파트의 헌옷수거함과 단독주택지역 헌옷수거함은 계약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전했다. 자치구 별로 업체들이 달라서 단독주택지역 중 협약서를 받은 곳은 보통 일반적인 사기업 같은 것이 아닌 장애인 협회에서 계약을 한다고 한다.



헌옷으로 뭔가 해볼 순 없을까?


옷으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옷캔이라는 단체의 슬로건이다. 옷캔을 옷 기부를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는데 버려지던 옷의 재사용을 통해 해외난민, 재난국가, 소외계층에 지원하고 있으며 국내 가정학대 피해아동, 쪽방촌, 다문화가정 등에 나눔하고 있다. 2009년에 설립되었는데 2015년, 2016년, 2017년 환경부에서 자원선순환 활동으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2018년 12월 기준) 의류를 해외에 지원하는, 의류 관련 전문화된 구호단체로 16개 국가에 비영리단체 또는 기업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옷 기부를 통해 1365 봉사시간도 인증할 수 있다고 하니, 봉사시간이 필요한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이 참여하기 좋을 것 같다.






초록 박스는 참 많은 주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라, 개인, 지금은 지자체. 해외로 수출되기도 하고 구제 가게에 팔리기도 한다고 하니 우리 집 앞 수거함이 어디에서 수거하고 어떤 곳으로 가는지 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잘 케어해서 중고마켓에 올라오는 옷은 좋아보이고, 헌옷수거함은 정말 버릴 수 밖에 없는 것만 모이는 상자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나저나, 이제 가을 옷을 꺼내 입을 때가 되었으니 옷장정리도 필요하고 맞지 않는 옷과 정말 버려야할 옷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오랜만에 헌옷수거함을 이용할 때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MAGAZINE ZERO: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통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ZERO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매거진 제로는 GS칼텍스와 기후변화센터의 클리마투스 공모전에 수상한 EOTD팀의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일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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