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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Sep 14. 2020

저 혹시... 당근이세요?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중고와 마주친 적이 있다.


최근에 번개로운 평화장터에서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사기 전까지 절대 나을 수 없다는 아이패드 병에 걸린 게 그 이유이다. 누군가 아이패드는 중고 쇼핑이 최고다!라고 귀띔해줬기에 귀가 얇은 나는 몇 날 며칠을 당근마켓, 번개장터에서 눈에 불을 켜고 내가 원하는 제품을 찾았다. 그리고 이 글도 그 아이패드로 쓰고 있다.



요즘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는 중고거래. 과연 중고제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의 첫 중고 제품 만남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에 옷가게를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옷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패피가 되진 않았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날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날 보며 넌 어른같이 입는구나-라고 했으니 그 시절 내 패션에 엄마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엄마 가게에서 내게 오게 된 옷이나 친척이 입었는데 그 옷을 입을 나이 때가 지났다며 우리 집에 찾아오는 옷들도 많았다. 나는 장녀인지라 물려받을 옷이 없을 줄 알았는데, 누군가 입었던 옷이 그렇게 자주 내 손에 들려졌었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내 패션 철학이 생기고 나서는 누가 입던 옷은 절대 입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


그랬던 나는 중고만 골라서 디피해 둔 중고샵 마니아가 된다. 지금은 시간을 내서라도 중고의류를 파는 옷가게에 간다. 실제로 사람들은 최근 중고 상품에 꽤나 열광하고 있는데 그 시작은 아마 중고나라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평화나라는 중고롭습니다.

 중고나라


중고 거래가 자리 잡기 전부터 사람들은 중고나라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고가의 전자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요량으로 사용되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정말 없는 게 없다. 국민포털 네이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중고나라의 높은 접근성과 거래 편의성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만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기행위나 거래를 진지하게 하지 않는, 에피소드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중고나라 측도 이 문제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듯이 안전거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고 있으나 이미 사기행위가 만연한 곳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아쉬움이 있다.





중고거래에서 사기를 당하고 싶지는 않고, 중고거래가 쏠쏠하긴 한데. 그런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당근마켓과 번개장터가 아닐까?

두 거래 플랫폼은 비슷한 듯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혹시... 당근이세요?

당근마켓


당근마켓은 주황색 컬러감과 이름 때문인지 그 당근이 진짜 야채 당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풀네임은 당신 근처의 따뜻한 중고 직거래 어플이다. 사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정말 당근일 줄 알았지. 당근마켓은 중고나라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으나 입소문을 타면서 직거래만 선호하는 이용자들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지금 추세로는 중고나라보다 핫한 것 같은데 최근에 당근마켓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쇼핑 어플 카테고리에서 쿠팡에 이은 2위를 달성했다고!) 길 가다가 당근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가만히 서 있다가 “혹시... 당근이세요?”라는 말도 들었다고.


아닌데요...


한 인터뷰에서 당근마켓 측은 동네 이웃 간의 연결을 도와 따뜻하고 활발한 교류가 있는 지역사회를 꿈꾼다고 밝힌 적이 있다. 중고 직거래뿐만 아니라 구인, 구직, 클래스, 모임, 동네 생활 정보, 동네 Q&A 등을 포함하는 지역 기반 서비스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팀원은 총 50명, 앱 다운로드가 무려 1,900만, 월간 유니크 사용자 수 840만 명이 하루에 평균 20분을 사용하는 무려 480억 원의 투자를 받은, 이젠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중고시장을 이끌고 있다. 당근마켓은 본인이 현재 있는 위치를 파악해 그 중심으로 직거래를 유도한다. 지역주민이라서 그런지 사기행위 비율이 낮고 ‘동네 생활’ 카테고리 이용자가 늘면서 지역 주민들끼리 맛집 공유, 육아, 자녀 진로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주요 이용 연령층은 30대~40대라고 한다(여성 60.4%, 남성 39.6%)





찌릿찌릿 번장입니다

번개장터


번개장터는 개인적으로 가장 안전한 거래가 가능해 보이는 어플이라고 생각한다. 앱 자체의 채팅 기능인 번개 톡, 번개페이를 통해 소통할 수 있고 안전 결제가 가능하다. 최근 당근마켓에 밀리는 추세이지만 1,50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했고 매월 45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만만치 않은 어플이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중고거래 컨시어지 서비스 ‘셀잇’이었다. 직접 번개장터 측에서 제품 사진을 찍어 올려 판매하다 보니 믿음이 갔던 것 같다. 게다가 번개페이라는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스러운(?) 기능이 있는데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현금만으로 제품 구매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번개페이로 할부 결제가 가능하니 어떤 면에서는 유용한 것 같다. 당근마켓과 같이 구인구직, 재능, 원룸 공유 등 제품이 아닌 다양한 서비스도 거래가 가능하고 매물 카테고리 별 실시간 인기 제품도 확인이 가능하다.



번개장터는 중고거래를 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사용자가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중고거래에 입문하고자 하거나 조금 더 새로운 거래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번개장터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추천한다. 어플이나 웹사이트를 통해서 원격으로 구매하는 것이 처음인 나는 정말 이것저것 다 따지고 번개장터에서 구매했는데, 판매자가 빨리 보내줘서 그런지 구매한 지 20시간이 되지 않아서 내게 물건이 도착했다. 택배를 회사로 받았던 나는 동료들과 함께 번개장터가 빨라서 번개가 아닌가 하는 토론을 하기도 했다.



중고?? 노노, 빈티지!

빈티지 마켓


사실 의류를 구매하기에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가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착용감도 잘 판단이 안 서고, 아무래도 옷장에 걸어둔 사진이거나 바닥 혹은 침대에 펼쳐진 사진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이들에게는 빈티지 마켓이라는 해답이 있다.

빈티지 마켓은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온라인, 최근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빈티지 마켓을 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스마트 스토어도 있다! 이런 루트로 옷을 둘러보다 보면, 일반 중고 거래보다 더욱 디피를 잘해놓고 일단 한번 세탁을 한 의류이기 때문에 조금 더 믿고 구매할 수 있는 것 같다. 중고거래라는 이름보다 빈티지 마켓 구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런 문화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오프라인에서 빈티지 샵을 운영하던 분들이 계정을 만들어 하나하나 게시글에 제품을 올리면서 더욱 쉽고 빠르게 빈티지 제품을 접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다.




온라인에서 빈티지 제품이 핫해지고 복고 유행에 패션은 돌고 돈다는 것이 자꾸 판명 나고 나니 오프라인까지 빈티지 제품을 물색(?)하러 가는 이들이 많은데 나도 그중 하나다. 보통 들어갈 때, 지갑이 두둑하고 옷을 사러 온 목적으로 갔다면, 오늘 보석하나 건지리라, 는 마음가짐으로 옷을 둘러보게 되고 지갑 사정이야 어떻든 그냥 둘러보러 들어갔다가 몇만 원씩 긁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 사실 고백하자면 며칠 전에도 멀쩡한 중저가 브랜드 가방과 겨울까지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두께감 있는 스트리트 브랜드 후드 집업, 어디서 온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안착해버린 로퍼까지 다 해서 6만 원대로 구매하고 나왔다. 아직 멀쩡한 옷이고 가방이고 신발인데, 원래 가격이었으면 10만 원은 훌쩍 넘을 제품들이었다....라고 빈티지 예찬을 하는 내 옷장은 반절이 빈티지 제품으로 차있다. 중고라고 너무 과소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야 친환경적이니까, 하고 위로해본다.





너무나 멀쩡하지만 나에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옷을 누군가에게 판매하는 것은 물론 수고로운 일이다. 치솟는 과자값만큼도 안 되는 돈을 위해서 하려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땅에 묻히거나 태워지는 것보단 누군가에게 입혀지는 게 내 마음도 훨씬 편할 것 같다. 나 역시,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 따라가겠다고 괜히 다리 벌리다 가랑이 찢어지는 것보다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 중고제품들을 한 번씩 뒤져보는 것이 더 좋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요즘은 위의 여러 방법을 통해 중고를 사고팔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도 하고 사기만 조심한다면, 꽤 괜찮은 ‘인생 옷’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겠다.



물론 중고라는 것이 자칫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새 상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위험요소가 많은 것 같아요.”_유세이버스 활동가 인터뷰 중


“남이 길들여놓은 옷을 사기보다 새로 사서 길들이는 경우가 많은 듯 해요.”_유세이버스 활동가 인터뷰 중



나 역시 어릴 적 동묘시장에 놀러 가겠다고 엄마에게 선언했을 때, “누가 입었는지 알 수도 없는 그런 옷을 왜 사!”라며 호통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극강으로 싸게 옷을 구매할 수 있어 나름의 트렌드가 되었지만, 아직 이런 인식이 즐비하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어차피 입을 옷, 어차피 내가 입지 않는 옷, 지구에게 조금이나마 친절하려면 우리 모두 중고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새것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으면 중고도 꽤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새 옷 구매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덜함과 동시에 판매자, 구매자 모두 다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_유세이버스 활동가 이정은 인터뷰 중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오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우리는 옷을 결코 쉽게 다룰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중고와 마주친 적이 있다. 오빠의 옷, 사촌언니의 옷, 선배가 물려준 교복 등등 이미 우린 가까이에서 중고를 경험했다. 훨씬 경제적이고 나름 괜찮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저, 새것이 덜 불편할 뿐.



새것 예찬론자인 당신, 중고 역시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MAGAZINE ZERO:

과잉생산과 과잉 소비를 통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ZERO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매거진 제로는 GS칼텍스와 기후변화센터의 클리마투스 공모전에 수상한 EOTD팀의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일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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