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에서 티가 나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조급함이 생길 때에는 선생(先生)님을 찾아가는 버릇이 있다. 먼저 나보다 인생을 살아 교직에 있는 사람. 내가 교단에 설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경우가 많다. 고등학생 때는 그래서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는데. 그 두 은사님께서 지금은 모두 이 생에 안 계신다. 그게 퍽 마음이 아프다. 내 진로 고민을 함께 해줄 수 있는 멋진 어른이 없다는 것은, 꽤 헛헛함을 가져온다. 그래서 문득 지도교수님과 학교에서 학회 일을 했을 때에 학회장이셨던 멋진 교수님이 생각이 났다.
두 분과 모두 좋은 대화를 나눴지만 특히나 학회장이었던 교수님과의 대화가 인상 깊었는데,
내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인생 살면서 뭐가 제일 중요한지, 지금 퇴사하고 쉬려고 하는데, 지금 내가 무소속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였다. 이 고민을 들으시고는 "무슨 그런 고민을 지금 해! 앞으로 하게 될 고민이 얼마나 많은데 고민하지 마!" 라며 나를 우선 안심시켜주셨다. 내가 더 비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되새겨주셨고, 다만 사람에게는 힘들 때에도 힘들지 않을 때에도 기회라는 것이 찾아오는데,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준비가 어떤 준비 일지는 내가 찾아야 할 숙제인 듯하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학생일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학생이었을 때로 돌아가라. 내가 봤던 너는 뭐든지 다 흡수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눈을 하고 있었어. 근데 지금은 조금 피로해 보인다. 아마 네가 하고 있던 일들이 너를 많이 힘들게 했었나 보다. 쉬기로 결심했으니, 쉬면서 재충전하면서, 너의 눈빛을 그때로 돌려놓도록 해.
나는 이 말에 퍽 놀랐다. 내 눈빛을 기억하고 계셨다니. 나의 에티튜드를 기억하고 계셨다니. 그제야 흐릿하게 뜨고 있던 내 눈이 신경 쓰였다. 고개와 어깨는 축 쳐져서 눈에 힘이 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속상하셨을 것이다. 나는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정말 교수님 말대로, 쉼이 필요하구나. 그게 티가 나는구나 싶었다.
박준 시인의 <낙서>라는 시에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뭐 이럴 때에 쓰는 말은 아니겠다마는, 인생을 절기로 본다면 내 눈빛 역시 그때가 제철이었을까. 지금은 다만, 조금 비수기이기 때문에 제철을 살짝 빗겨 나서 내가 이리 마음이 흔들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제철은 1년을 지나, 아니면 몇 개월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데. 내 철도 다시 돌아오겠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