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선물하기

by 블랑슈

통통 튀는 글이 있고 묵직한 글이 있으며 능청스런 글이 있고 순진한 글이 있다. 조밀한 짜임새에 감탄하는 글이 있고 흐름의 기세에 이끌리는 글이 있다. 빠르게 찔러 놀라게 하는 글이 있고, 꼭꼭 밟아 울게 하는 글이 있다. 그리고 읽어볼 때마다 흐뭇해지는 아름다운 글이 있다. 가히 선물할 만하다.

우리 가족은 생일 때마다 손 편지를 써 읽어주는 전통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가족들의 생일이 포진되어 있으므로 일 년에 적어도 네 번 카드를 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한 일고여덟 살 때부터 쓴 아무 말부터 시작해서 스무 살이 되어 쓴 편지까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글 씀에서 마음 씀을 느끼기 때문이다. 글을 받을 때에는 그가 나를 위해 고민하며 썼을 시간을 받으며, 보낼 때에는 그를 생각하며 세밀히 조각한 시간을 보낸다.

여러 종류의 글을 쓴다. 용도에 따라 들이는 정성이 달라지고 들이는 정성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그저 채워야 해서 꾸역꾸역 막 써넣는 글이 있고, 신나서 내 생각을 일필휘지로 내달리는 글이 있으며, 차분히 계획해 다듬어 올리는 글이 있고, 예술작품을 만드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여러 번 신경 써서 고쳐 쓰는 글이 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보장되지만, 내가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들은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에 담겨 있다. 다른 글은 다시 안 읽어봐도 편지는 종종 다시 읽어본다.

작사가 아이유는 곡을 선물한 경험에 대해 말하면서,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흘러나와 곡까지 닿는 것이기에 할 말이 많고 명확해 수월하고 즐기는 작업이라고 했다. 곡을 쓰는 내내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함께한 좋은 기억을 상기하다 보면 참 행복하다고. 글도 그러하다. 그를 위하는 마음이 클수록 글을 선물하는 과정이 즐겁고 수월하다. 그래서 다른 글이 잘 안 풀릴 때 선물하는 글을 쓰면 운동 전 스트레칭을 하듯 생기가 돌듯 활기차게 작업할 수 있다.

물론 편지쓰기가 항상 쉽지는 않다. 할 말이 넘치는 사람에게만 쓰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는 동생의 돌잔치에 가서 덕담 한 마디를 적어야 했다. 한 살배기 아기와 어떤 친분도 없던 나는 “너를 잘 몰라서 사실 할 말은 없지만...”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적었더랬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엄마는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글은 그저 쉽게 떠오르는 말을 적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써야 한다고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셨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는 글을 쓰며 터득한 것이지만,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세밀히 관찰하고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항상 쓸 거리가 있다. (편지쓰기도 일종의 기술(craft)이다) 함께했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고마웠던 점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도 하며, 그가 꿈꾸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축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쓰다 보면 마음이 동해 더 정성스레 쓰게 된다. 진심에서 글이 나오기도 하지만 글로 인해 진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글을 쓸 때, 특히나 선물하는 글을 쓸 때 매번 주의하고자 하는 점을 명시하며 마무리하겠다. 진솔함이 없는 글은 다 티가 난다. 받는 사람이 모른다 해도 쓰는 사람은 안다. 자칫하면 화려한 꾸밈 속에서 싸구려 선물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한 단어 한 단어에 의미와 생각을 담아 쓰려고 한다. 원래 허세를 싫어하는 성격이고, 어쩌면 일종의 장인의 자부심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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