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대한 생각들

by 블랑슈

1.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웃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호르헤 수도사는 그 책이 절대로 공개되면 안 된다고 여겨서 책을 파괴하고자 관련된 자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는 그렇게 웃음이 위험하다고 여겼다. 웃음은 진짜로 중요한 것들로부터 인간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웃음은 오히려 어리석은 자들에 대한 무기이며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반박하지만 호르헤의 냉소(冷笑)에 부딪히고 결국 희극을 다루는 <시학>은 파괴되고 만다. 웃음, 가장 천박하면서도 가장 심오하다.



2. 웃음이란 참 흥미롭다. 만약 웃음의 “반대”를 울음이라 한다면 (물론 분노일 수도 있고 무표정일수도 있지만), 그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감정의 심오함은 대부분의 경우 울음이 웃음보다 깊을 것이다. 흔히 웃음은 “얕고” 울음은 “깊다”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1%의 웃음은 그 어떠한 울음보다도 슬플 것이라고 생각한다. 1%의 웃음은 그 어떠한 분노보다도 무서울 것이며 1%의 웃음은 그 어떠한 무표정보다도 더욱 차가울 것이다. “미친”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웃는 것이다. 마치 <더 글로리>의 “멋지다 연진아, 브라보”처럼. "울음"과 "웃음"의 어원은 같다고 한다. 그냥 소리 내는 것, 혹은 노래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 "욷"과 연관이 있다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노래가 웃음 안에 모든 감정이 다 포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3. 웃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정말 순수한 기쁨의 웃음도 있다.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흘러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미소. 혹은 (동어반복적이지만) 웃겨서 웃는 경우. 친구가 정말 재미있는 농담을 했을 때 등등. 귀여운 것을 보아도 웃는다. 친구가 뚝딱거릴 때 웃지 않는가. (비웃음과는 다르다) 또 절묘한 예술을 보았을 때도 놀라움에 웃는다. 또는 디폴트로 깔고 가는 웃음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교수님을 뵈었을 때 어색하게 허허 안녕하세요 하는 경우가 그렇다. 어이없을 때도 웃는다. 비꼴 때도 웃는다. 화가 나거나 답답해도 웃는다 (어쩌면 답답함을 초월한 것일지도). 자조할 때에도 웃는다. 묵상을 할 때처럼 누군가의 말을 곱씹거나 심오한 생각을 할 때에도 웃는다. 웃음만큼 versatile한 감정표현이 또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 때나 웃으면 좋지 못하다. TPO를 가려야 한다. 같은 웃음이 어색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 수도 있고 상대방을 모욕할 수도 있다.



4. 원래 내가 웃음이 많은 편인줄은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하길래 돌아보니 맞는 것 같다. 나의 “선한 웃음”을 첫인상으로 꼽은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실제 내 성격은 선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하여튼 첫인상이 그랬다는 거는 내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의 디폴트 표정은 웃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옆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어준다. 나는 그리고 많은 감정을 웃음에 담아내는 것 같다. 위에서 설명한 웃음이 나타내는 다양한 감정의 예시들은 전부 내가 경험해 본 것들이다. 친구들과 연극 연습을 하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화를 내는 캐릭터인데 웃고 있었다. 내 딴에서는 화날 때 기가 차서 비웃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해보였겠다.



5. 웃는 것이 피곤할 때도 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기빨린다"고 하는 것은 계속 짓고 있어야 하는 웃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 때 편한 이유는 필요 없는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어서일 수도 있다. 웃음은 우는 것보다 많은 안면 근육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더 피로하다고. 하지만 동시에 웃음은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효과도 있다. 피곤하고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날에, 갑자기 날아온 카톡, 무지성 농담에 생각 없이 박장대소하다 보면 살아난 자신을 발견한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서 호수 위를 날듯이 걷는 만화 캐릭터처럼, 우울함에 빠질 틈도 없이 웃음으로 시간을 채운다고나 할까? 아, 그러나 단순한 회피는 아니다. 웃고 나면 세상을 보는 안경이 회색에서 컬러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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