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는 건 무엇일까
글쓰기는 해킹이다,라는 글을 보았다. 정말로 그렇다. 생각은 생각을 변화시킨다.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은 언어, 즉 말과 글인데, 말과 달리 글은 쉽게 재생산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조종이고 다른 하나는 동기부여이다. 잘 쓴 글은 생각을, 감정을,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글쓰기를 잘하는 법은 무엇일까? “글쓰기를 잘한다”라는 말은 세 가지 정도의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문장 수준의 글쓰기, 즉 단어의 조합에 관한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다.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묘사하기에 그럴 수도 있고, 문장의 적절한 분절 때문에, 혹은 구조일 수도 있다. 내용과는 어떻게 보면 관련이 없다. 예를 들어 스티븐 킹의 유명한 “To write is human, to edit is divine”이라는 문장을 보자. 앞과 뒤의 대칭 구조는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Writing is human..”처럼 쓴 것이 아니라 “To write is human..”과 같이 썼기 때문에 문장의 리듬이 살고 더 생동감 있다. 또한 비유 자체를 보라! 두 활동을 인간과 신의 차이에 빗대다니, 얼마나 창의적인 대비인가. 사실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Write/Edit 이 아니라 다른 두 가지 활동이었어도 문장적 아름다움은 그대로 산다.
두 번째는 문단 수준의 글쓰기, 혹은 글의 구조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단순한 논설문을 쓸 때는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서론, 근거 1/2/3, 그리고 결론 순으로 쓴다. 사실은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세 가지의 뒷받침 논거를 만드는 것은 꽤나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진짜 빛나는 글들은 이런 서론-근거 셋-결론 순서를 벗어나거나, 이 순서 안에서 더욱 정교한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가진다. 대칭 (ex. 수미쌍관), 반복 (ex. 시의 운율), 상징/비유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글을 따로 써야 할 정도로 할 수 있는 말이 너무 많다. 하지만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대략적으로는 알리라 생각한다.
세 번째는 글 수준의 글쓰기, 즉 글 전체에서 담고 싶어 하는 콘텐츠에 대한 것이다. 글에 어떠한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가? 점점 글쓰기의 기술에서 벗어나 글쓰기의 철학으로 넘어가고 있다. 왜 쓰는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아무리 구조를 잘 짜고 단어가 보석같이 빛나더라도 글의 수준은 작가의 수준에 의해 제한되며, 그렇기에 글은 작가의 영혼을 끌어 쓴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작가의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분류하고 정리해 주장에 함축해 내는 것 자체가 창조다. 그런데 요즘 내가 이 수준에서 막히는 듯하다… in이 있어야 out도 있는 법인데...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에 반쯤 농으로 “난 어떤 주제든지 논설문을 쓰라 하면 뒷받침 근거 세 개 정도는 쉽게 마련할 수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콘텐츠가 없는 글쓰기다. 단어와 구조의 수준으로 “잘” 썼을 수는 있어도 나만의 생각이 없지 않은가? 나만의 철학, 나만의 콘텐츠가 없다. 교양 글쓰기 수업에는 그렇게 해서 과제를 낼 수 있어도, 진짜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는 어떤 콘텐츠가 들어가야 할까? 사람은 수사로 인해 해킹당하지 않는다. 논리 정연한 짜임새가 있고 수려한 문장이 있어도 콘텐츠가 없는 글은 빈 강정, 영향을 줄 수가 없다. 결국 나의 콘텐츠는 나다. 나의 삶, 나의 경험, 나의 생각.
다시금 종종 멈추고,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이 모음집의 제목처럼, 상상 (常想, 항상 생각) 할 필요를 느낀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