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대해

Beauty of Form

by 블랑슈

소설은 단순히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예술이다. 무엇이 소설을 예술로 만드는가? 글이란 기본적으로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Beauty of Content와 Beauty of Form이 있다. 물론 소설에서 사람들이 주로 기억하는 것은 내용(어떠한 캐릭터가 등장했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등)이지만, 오늘은 소설의 詩적인 면, 즉 Beauty of Form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흔히 시의 3요소는 주제(theme), 운율(rhythm), 그리고 심상 (image)라 한다. 마치 음악의 3 요소가 선율(melody-theme), 박자(rhythm), 그리고 화음(harmony)인 것과 대응된다. 물론 이렇게 예술을 요소로 분해하는 것은 단순한 접근법이고, 또 딱 맞게 categorized 되지 않기는 하지만, 크게 보자면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소설 또한 시와 같이 언어-예술이다. 소설 안에서 예술이라 느껴지는 부분은 세 가지로 나누자면 흐름(flow-theme), 대칭성(symmetry-rhythm), 그리고 상징 (allusion-image)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부분을 볼 때 예술가의 희열을 느낀다. 사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뮤지컬 등 “이야기”가 예술화될 때 전부 드러난다고 본다. 전개, 대칭성, 그리고 상징은 “이야기”라는 것의 본질만 남긴 것이다. 여기에 덧입혀지는데, 소설이 어떠한 언어로 쓰였는지에 따라 언어유희, 말투 등이 추가될 것이며, 영화로 드러난다면 배경음악, 조명, 색감 등의 요소가 예술성을 더욱 드러내고, 뮤지컬로 나타나면 음악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flow, symmetry, allusion라는 요소는 빠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글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내용이다. 한번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flow라고 해놓은 것은 전개 방식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논설문에서는 첫째, 둘째, 셋째 등의 정형화된 방식으로 글의 구조를 짠다. 소설에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보통은 들고 가는 이야기줄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지라 여러 캐릭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점프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라 해도 사건이 발생한 순으로 주르륵 전개할 수도 있지만, 뒤에서부터 전개할 수도 있고, 특정 캐릭터를 따라가면서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연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전개에 따라서 아무리 Content가 같아도 독자가 받아들이는 인상은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특히나 글의 전개를 통해 숨어 있는 예술적 포인트를 드러나게 할 수 있는데, 특히나 대칭성이 그렇다. 논설문인 경우에는 거의 전개가 대칭성이 드러나는 방식의 전부라고 보아도 될 정도다. 첫째, 둘째, 셋째, 각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이 대칭적이라면 통일성 있고 깔끔하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소가 바로 symmetry이다. 음악에서 반복적인 리듬이 전체적인 그림을 잡게 도와주면서 통일감을 주듯이, 글/소설에서도 대칭성은 매우 중요하다. 시에서 수미쌍관의 형태가 있듯이 소설에서도 같은 문장으로 처음과 끝을 맺어주는 것이 만족감을 준다. 대표적인 예가 Richard Adams의 Watership Down이다. 첫 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The primroses were over… " (마지막 프림로즈 꽃들이 지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 …the first primroses were beginning to bloom." (첫 프림로즈 꽃이 피고 있었다)


“대칭”은 언제나 기준선이 있다. 방금 든 예시에서 기준은 소설 안에서의 물리적 위치다. 예를 들기 쉽기 때문에 가져온 것이지만, 가장 단순한 수준의 대칭성에 속한다. 캐릭터 사이의 대칭성 같은 경우는 찾기 더 어렵지만 보통 소설 안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대칭성을 정말 잘 활용한 책이 <A Song of Ice and Fire>이다. 북쪽과 남쪽, 얼음과 불이라는 기본적인 대칭성이 해당하는 캐릭터의 성격과 삶의 궤적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 북쪽을 대표하는 자는 Jon Snow이다. 극심한 추위 속에서 일하는 The Night’s Watch의 대장이 된다. 북쪽 사람답게 “책임감” 이 가장 큰 동기로 작용하며, “가족 사랑”이 또 하나의 큰 동기다. (이 둘이 충돌할 때가 문제지만). 남쪽을 대표하는 자는 Daenerys Targaryen이다. 극심한 더위의 사막을 뚫고 한 부족의 여왕이 되었다. 남쪽 사람답게 “권리”를 먼저 주장하며, 가족을 다 잃어 남겨진 유일한 “가족”이 애완-용 (dragon)이다. 그리고 대칭적인 캐릭터가 그렇듯 서로 사랑에 빠지고,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결론적으로는 서로를 파멸시키는 관계가 된다. 절묘하지 않은가!


대칭적인 대사 또는 행동을 통해 작가는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시 <ASOIAF> (정확히는 드라마판 한정)을 보자면, Arya Stark가 처음으로 검술을 배울 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다:


“There is only one god, and his name is Death. There is only one thing we say to the god of Death: Not today.” (세상에는 죽음의 신 하나밖에 없지. 그에게 우리가 하는 말은 딱 하나야: 오늘은 안돼.”)


6년이 지나고 Arya Stark가 최고의 전사가 되어 돌아왔다. White Walkers와 결전을 준비하는 날 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다시 묻는다. “What do we say to the god of Death?”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Not today.” 같은 대사로 앞뒤를 묶어주는데, 그 6년간 얼마나 차이가 커졌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캐릭터가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가! 대칭성이 적절한 곳에 들어가고, 그러한 대칭성을 발견할 때 나는 소설 안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가장 美를 느낄 때는 상징을 읽어낼 때다. 소설이 가장 시에 가까울 때가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상징은 비유와는 다르다. 대놓고 “A는 마치 B와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멋없지 않은가. Allegory도 마찬가지로 너무 단순한 우화 같은 멋없음이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상징이란 주로 Allusion을 의미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보일 듯 말듯하는 것. 소설 내부적 상징도 있고, 소설 외부적 상징도 있다. 예를 들어 “하트”가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소설 외부적인 (사실 상징이라 할 수도 없이 너무 cliché 하지만) 상징이다. 하지만 초콜릿 상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Forrest Gump>를 본 사람과 못 본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다. 이를 소설 내부적인 상징이라 한다. 소설 내부적 상징은 필연적으로 대칭성과 결부되는데, 한 번만 나와서는 아무도 상징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상징이 여러 번 나와야 상징이 소설 안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Tolkien은 상징과 Allusion의 대가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징은 빛과 어둠의 대조다. (이렇게 대조로 사용되는 경우는 상징과 대칭의 경계가 모호하다) 악의 화신인 Morgoth는 빛을 두려워해 빛의 근원이 되는 두 나무를 뽑아버렸다. 항상 동굴과 깊은 요새 속에 숨어 산다. 반면에 착한 신들은 계속 빛을 만들어낸다. 프로도가 악의 소굴 한가운데로 들어갈 때도 가장 도움을 주었던 것이 Galadriel이 준 light-phial이었다.


또한 Tolkien의 세계관 안에서는 기계/인위성이 악과 연결되어 있다. Saruman은 악해지면서 공장 비스름한 시스템을 돌려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Sauron은 장인으로 위장해 엘프들의 환심을 사서 절대반지를 만들어냈다. 엘프 종족들 중에서도 가장 “악”에 가까운 Noldor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창조한 작품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일부가 타락한다. 이와 반대로 자연은 언제나 선한 편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예술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징은 신화와의 연결이다. Tolkien은 이미 Middle-earth가 수천 년 전 어땠는지 신화가 나와 있다. 이를 고려하면 새로운 상징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수천 년 전 신화 속 Beren과 Luthien의 결혼은 지금 현재 Aragorn과 Arwen의 결혼에 대한 상징이 된다. 고대의 예언이 현재에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설 내부의 상징이 이렇게까지 깊이를 가지게 된 것은 전부 Tolkien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적당히 마무리하겠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형식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대해 적어보았다. 흐름(구조), 대칭성, 그리고 상징. 빠져들만한 이야기에 이러한 미적 요소가 덧붙여질 때 글/소설/이야기가 예술이 된다. 솔직히 나는 미술품이나 조각상, 음악도 좋지만, 좋은 소설/이야기를 읽었을 때 느끼는 감동(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대체할 만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적는다)만큼의 느낌을 거기서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게 짜인 tapestry처럼… 글의 form 또한 예술작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쓰기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