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에 대해

귀납적 방법론

by 블랑슈

항상 인용만 되고 아무도 (적어도 나는) 읽는 것 같지는 않은 그 책, 바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다. 이 책에서 쿤은 (그가 의미한 바에서 많이 벗어나 쓰이고 있는) 단어 “패러다임” (paradigm)을 제시한다. 쿤이 처음 의미했던 의미로서의 단어 “패러다임”이란 다음과 같다: “기호적 일반화, 모형, 가치, 범례로 구성된 전문분야 행렬, 좁은 의미로써는 그중 범례”.


범례(exemplar)이란 범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예시를 의미하는 단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An exemplar is a person, a place, an object, or some other entity that serves as a predominant example of a given concept.” 쿤의 경우에는 과학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범례란 해당 개념에 대해 잘 성립된 과학 문제와 그 해답을 의미한다. 빙글빙글 돌면서 온갖 복잡한 단어를 썼지만, 결국은 “기출문제”다.


왜 패러다임이 기출문제에 의해 정의된다고 말한 것일까? 뭔가 패러다임은 사고의 거대한 틀로써, 사소한 예시 문제로 정의되면 안 될 것만 같은 단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고의 거대한 틀을 형성하는 것은 결국 예시들의 집합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쿤뿐만이 아니었다. 빌헬름 딜타이라는 독일 철학자는 “세계관”에 대해서 말하면서 (마치 쿤의 패러다임처럼 남용되는 단어인 동시에 매우 중요한 단어다) “삶의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정서”라고 표현했다. 세계관 또한 삶이 던지는 예시문제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다.


시험 준비를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연역적인 시험 준비로써, "개념"을 숙지하고 수업 시간에 어떠한 내용이 나왔는지 정리하면서 이론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험 준비를 해본 사람이면 알 터, 이러한 종류의 시험 준비는 반밖에 안된다. 나머지 반, 혹은 더 중요한 반은 귀납적 시험 준비다. 이미 나왔던 예시문제, 즉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이다. 기출문제는 이미 문제 내용과 해설이 나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기출을 풀면서 더욱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연역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는 거대 패러다임/세계관도 자세히 살펴보면 귀납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혹은 딥러닝 용어를 써보자면, training 되는 과정 속에 있다. 매일 만나는 사람, 겪는 일들이 세상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다만 쿤의 “과학혁명”처럼, 모든 예시에 의해 미시적으로 변하기보다는, 쌓이는 증거에 의해 어느 순간 패러다임/세계관이 비가역적이자 불연속적으로 바뀌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보다 더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삶이라는 시험에 대한 예시/기출문제는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나의 기존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다. 나의 이야기를 스스로 읽으면서 배워가고 (autoregression), 다른 사람의 경험을 어느 정도 참고해 내 삶의 결정을 내린다. 사실 결정을 내릴 때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연역적 규칙 (ex. "합리성", "이익" 등의 척도)을 사용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규칙을 생성하는 것 자체가 결국은 다 경험/예시를 통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즉 사람의 인생은 이웃한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이야기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에 (k-nearest neighbours),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예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은 내가 누군가에게 예시가 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예시를 보고 습득하는 쪽에 가까웠다. (최근에 생일이었던 선배에게 "당신은 나의 예시입니다"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쓴 것이 기억난다) 지금도 한참 습득하는 시간이지만, 요즘은 또한 누군가에게 내가 예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초에 기간이 짧은지라 나의 기출문제 목록은 길지도 않고 정확도도 낮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누군가에게는 희망 또는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전에 아빠랑 한 이야기다. 사람은 어려움 속에 있을 때 그저 옆에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고. 내 인생 속에서, 그 상황이었을 때는 도대체 왜? 싶었던 "실패" (라고 하기에도 무안한 수준이겠지만) 들이 지금 와서는 나이테의 옹이처럼 남은 흔적이 되고 다른 이에게 말해줄 수 있는 중요한 부분(attention)이 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자산이 되는구나, 하며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경각심도 생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형성한 세계관을 의식하게 됨이다. 혼자서 생각하다 말 때는 딱히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삶을 들려주면서 담아낸 세계관은 나를 심판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 내가 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선언을 하는 것과 같다. 삶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이보다 웃긴 일이 있을 리가. 전에 어떤 수업을 듣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기출문제를 받아서 그대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을 받아보니 웬걸, C가 뜨는 것 아니겠는가. 알고 보니 원작자가 기출문제에 오답을 적었던 것...


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오답 기출문제는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인드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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