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 All>

이지은 저

by 블랑슈

참 IU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한 편의 시.


세상에게서 도망쳐: 가난한 상상력을 넘어서

아포칼립스 같은 세상, 정체 모를 큐브가 나머지 사람들을 다 삼켜버린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두 생존자. 현재를 살기에도 버거운 우리에게 상상력이란 과분한 사치로 여겨진다. 서로와 자신을 향해 던진 날카로움, 쓰레기만 남은 피폐한 삶 속에서, 그저 한숨 쉬며 버티기만 해도 잘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세상에 갇혀 있을지라도 화자는 세상/필연에 의해 삶의 태도까지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답답한 세상 너머를 “믿음의 눈으로” 보는 주인공들, 회색빛 잔해만 남은 이곳을 화사하게 빛내는 건 이들의 폴라로이드 사랑이다. 현실을 뛰어넘는 실제가 있음을 알기에, 여유롭게 날카로움과 각박함을 오롯이 받아내며, 그들의 상상력은 부유하다.


함께 저물어줄래: 길을 잃더라도 나란히라면

처음 이 시를 들었을 때 놀란 점은 사랑을 노래하는데 유독 부정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넓고 평탄한 길을 가는 대신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떠오르는 대신 저물고, 기뻐하는 대신 슬퍼지고, 강하게 올라서는 대신 산산히 부서진다. 힘없고 가난하며 쫓기는 신세다.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 요한계시록‬ ‭2‬:‭9‬


그럼에도 화자는 “함께”이다. 길을 잃더라도 나란히, 저물더라도 함께, 부서지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포옹 안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오랜 외로움에 맞서 이들은 그 반대말을 가졌다. 비록 외로운 세상에서 “함께”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처와 길잃음과 부서짐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실수더라도, 아무렴 어때, 나란히 길을 잃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걸. 모든 걸 가졌더라도 혼자라면, 그러나 다 잃었더라도 그와 함께라면.


결국, 그럼에도: Love Wins All

결국 주인공들 앞에 큐브가 나타났다. 마지막까지 저항하지만 결국 소멸되고 만다. 결국, 결국에는 세상이 이긴 것인가.


그런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감옥에서 확신한 바울,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죽기 직전에 당당하게 선언한 예수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일의 결국은 무덤이 아니라 부활이었으며, 홀로 살고자 한 이들이 아니라 함께 죽은 이었으며, 뺏어도 뺏어도 외로운 세상이 아니라 내어줘도 내어줘도 서로인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희망적이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사랑을 끊지 못했다. 결국, 그럼에도, 사랑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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